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의문]


본시 우리모두가 참나, 청정한 마음을 바탕으로 법신, 보신, 화신을 이루고 있는 것인데 왜 뿌리는 법신에 두고 있으되 보신, 화신은 청정하지 못한 것일까?

욕계나 색계의 이원성을 띈 세상을 보자면 사람을 현혹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고승들의 법문에 이세상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이마타 부처가 아닌것이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뿌리를 청정한 참나에 두었으니 그 열매가 부처님과 다를바가 없다는 이해를 해왔다. 하지만 왜 우리는 참나로부터 생겨난 세상이 청정함보다는 욕망과  닮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8정도다 보살심이다 우리는 욕계에서 청정한 것들을 변별하고 따르기에 여념이 없다.  내 스스로가 색에 심취하여 그렇게 바라보는 것일수도 있겠다.

어떤 날은 이세상이라는 것이 대자연의 심오한 계획되로 선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고, 현재가 최선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 과도기적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보살행을 하고 그것을 통해 결국 하나인 다른 지체들이 욕망의 고통을 끊고 바른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노력하게 된다. 어떤 날은 원래는 하나인 다른 지체들로 부터 나를 보호하거나, 그런 지체들을 어떤 방편으로도 제도하기 힘들어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때면 문득 청정한 바탕을 한 열매들이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육신받음에, 살아 있슴에, 수행할수 있슴에 감사하지만 우주의 디자인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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