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데 저의 몸이 길죽한 깡통처럼 느껴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이 새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 깡통에 나 있는 작은 구멍들 사이로 전기(작은 번개)를 만들어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깡통안의 존재는 빛의 형태였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완벽한 존재였지만 (죽음도 초월한) 제가 전기로 들어오는 신호가 전부라 생각해 스스로 깡통안에 가두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꿈은 말이나 시각으로 할수 없은 형이 상학적인 형태 였는데 꿈을 꾸고 나서 아래와 같은 깨달음이 있었서 적어 보았습니다.
이 인간의 근원은 이미 만물의 근원인 우주의 뿌리와 같으며 그 근원은 이미 온전하고 시간과 공간과 오온과 존재라는 자체를 이미 초월한 것이다.
진화할 것도 발전할 것도 해탈할 것도 죽음을 맞이할 것도 없이 이미 완벽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멸되지도 태어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것으로 부터 열린 하나의 창일 (오온으로 색칠된) 뿐이기 때문에 창이 닫힌다, 죽는다, 고장난다 해서 그 안의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온으로 느껴지는 매우 제한적인 세상과 느낌을 통해 불안과 고통과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고통에 넣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반대인 사랑을 나누기를 주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그것에는 어떤 의미도 심지어 사랑을 나눈다는 것 또한 그것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써, 우주를 닮은 하나의 프랙탈로써 그 근원과 닮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것이 무위자연이 아닌가 한다. 어떤 표방함, 규정함이 없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오온을 넘어서 있기에 어떤 표현도 수련도 생각도 그것을 표현 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표현 되어짐에 따른 제약과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다만 인간으로서 해야 할 것은 그것을 육신의 몸을 통해 진정 아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며 오직 할 것이다. 다른 어떤 목적과 수련은 본질에서 멀어지게 할뿐이다.
금강경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가진 우리와 같은 뿌리를 가질수 밖에 없는 존재들에 의해서 이것이 설명된 것이다.
이것은 나무의 뿌리와 가지의 관계와 같아서 나누어진 것이라 하여 서로 다른 존재라 말해 질수 없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며 순수한 것 이지만 알려는 사람이 오온의 마음과 생각으로 스스로의 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떠한 최상의 글로 읽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이 것의 마음에 들어가 규정함이 없지 않고 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 때문에 무의식이나 명상에 의존해 그것에 가깝께 스스로 느껴야 왜곡 없이 이해 할수 있다.
이 글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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