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9일
어떠하다라고 명시하게 되는 글로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인 일이다 하지만 그 글이 그 단계를 거치는 이에게 큰 디딤돌이 될수 있기에 세존께서도 많은 말씀을 남기신 것이 아닌가 한다.
1. 남을 위하고 사랑하는 보리심 혹은 크리스차니즘은 인간 진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선방에서 도를 구하는 많은 이들의 목표가 신통력을 얻고자 함이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을 탐하는 구도자는 오히려 그런 능력이 더 얻어지지 않고 보리심이라는 좋은 근기를 타고난 수행자는 원하는 이와는 달리 신통력을 얻는다고 한다.
사랑이 쿤달리니 에너지나 유전적으로 인간에게내제된 인간의 지성을 높이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일전에 소개한 영화, sphere를 보면 왜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인간 진화의 핵심 열쇠로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할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긍정적 부정적 사고를 모두 가지고 두가지는 양극을 가진 현상계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자 생존의 기본 도구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긍적적 사고보다는 위협, 사고, 걱정, 근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만약 영화 sphere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것 처럼 인간의 의식이 물질, 현실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현인류의 사고 능력이나 수준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유토피아와 같은 긍정적인 세상이 될지 헉슬리가 말한 디스토피아가 될지 충분히 예상이 된다.
영화 sphere에서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현실화 되는 능력을 포기하게 된다. 생존이라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공포에 질려버린 자신들이 가져올 현실이라는 것이 무시무시해서 오히려 현재 본인들의 수준에서는 본인의 의식과 의식의 현실화의 격리가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 창조주가 인류를 이렇게 설계 했는지 설명이 된다. 성경에서는 창조주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고 만약 우리가 만약 창조주와 같은 창조의 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핵폭탄 처럼 나쁜 의도로도 그런 힘들이 악용될수 있고 그것은 곧 인류의 멸망을 가져오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은 서로 돕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봉인이 되어져 있어야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다.
누군가 어떻게 1번을 그렇게 확신할수 있으냐 라고 반문한다면 너무나 쉽게 설명이 됩니다. 일전에 올린 세포와 관련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http://beliveman.blogspot.com/2014/02/blog-post_18.html
작은 세포와 인간 전체의식은 똑 같이 반응을 합니다. (화엄경:다즉일 일즉다, 반야심경:공즉시색 색즉시공) 세포는 영양소가 공급 되었을때에는 성장과 발전을 하고 독성 물질이 공급되면 보호의 상태를 유지하지만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인간도 침입과 외부적 불안 요소가 있을 때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피가 근육으로 흘러 들어 가고, 뇌 내부적으로는 운동을 관장하는 간뇌로 피가 몰리게 됩니다. 그 순간 인간의 지능이나 지성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 소화를 시키는 내장에 공급된 피는 근육으로 가고 심한 경우에는 설사를 통해 소화되던 음식을 drain out 해 버립니다. 하지만 안정적이고 사랑받고 좋은 환경에 있는 인간의 피는 영양소를 흡수하는 장기로 보내지고 더 높은 지성의 일을 할수 있는 전두엽으로 피가 보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 스스로가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자원을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이용하는 대신, 남들과 싸우기 위한 무기(ARM)에 투자하는 현실은 높은 지성으로의 발달보다는 오히려 생존의 상태에 인간을 몰아 넣게 됩니다. 세상에 전쟁이 없고 서로 평화롭게 산다면 많은 군수물자에 들어가는 자원들이 인간을 풍요롭게 그리고 지성을 발전시키는데 이용될 것입니다. 마슬로우의 욕구 다단계설도 이건 비슷한 내용을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5단계로 1.생존, 2, 식욕, 3, 성욕, 4,사회적욕구 5. 문화예술 창조 종교의 순으로 엔돌핀이 많이 나오며 5번째 창조 종교의 영역은 엔돌핀이 이론적으로 무한히 나올수 있다고 합니다. 내뇌혁명의 저자는 5번째 방향으로 인간이 진화할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능력, 쿤달리니의 발현, 의식의 발전은 사랑과 창조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더 좋은 차, 집, 연봉, 권력, 물질 등을 얻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를 생존의 모드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을때 (끊임없이 욕망이 커지므로 모두를 얻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복권이라도 당첨된다면) 당신은 다음 단계의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욕구로부터 해방된다면 지금당장 의식의 발전이라는 최상위의 욕구를 여러분은 지금 당장 실현할수 있습니다. 이미 현대사회를 사는 여러분은 생존으로 부터 자유롭습니다.
2. 인간의 삶은 단순한 물리적 성취만으로 평가되기에는 영혼이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행복하게 인간을 두지 않는다.
금전적 물질적 성공이나 풍요는 영혼의 욕구를 채울수 없고 결국 사람들이 종교라는 것을 찾게 만든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영혼의 발전을 시킬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생존이라는 욕구가 채워졌을 때에도 이것이 결핍된다면 행복감을 추구할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1,2 번을 종합하면 인간은 결국 남을 돕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밖에 진화할수 밖에 없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 세존께서 다른 지체를 아끼고 사랑하라는 크리스차니즘이나 대승의 법을 설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법화경에서 1승법을 설하기 위해 3승을 방편으로 말씀하셨다는 방편품이 이리도 유용하게 쓰일지 몰랐다.
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8A%B9
http://blog.daum.net/dis834/2321
3. 이러한 보리심,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높은 신이나 존재가 나의 마음을 강제하여 이끌수 없으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스스로 보리심을 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부분에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수 있다. 상위의 영들이 도움을 줄수는 있겠지만 결국 본인스스로의 청정한 참나, 법신, 비로자나의 빛을 보신, 화신, 육신의 단계까지 이끌어 내는 것은 본인스스로 결정하고 힘써야 할 부분이다. 세존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왜 스스로를 의지해서 도의 길을 가야하는지를 설명하셨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영적발전을 하고 싶은 자연스럽고도 성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많은 종교 단체들이 돈을 벌고 있고 그 과정에는 사람들은 영적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의식발전을 막고 싶은 세력에 의해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는 스포츠, 섹스, 연예인, 각종 사건사고, 물질과 향락 모두 이런 영적 발전의 길에 도사리는 함정이다. 내면의 자아와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의식의 발전을 할수 있는, 창조적인 일들을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4. 이런 의식의 발전은 때로는 겉으로는 들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 구도자들 또한 물질화의 세상에 살지만 모든 물질의 원인이 되는 사고와 영의 영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의식의 발전은 더 뛰어난 제품과 사고들을 할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생존과 발전에도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변에 의식의 발전을 도모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세속적인 집단의식으로부터 독립된 영적으로 훌륭한 집단의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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