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과 야쓰시로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닮은 꼴 ‘묘켄’

“내려주시오.”
갑자기 차를 멈추게 했던 것은 한반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찰의 외양과 단청까지 꼭 닮은 건물이 눈앞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바로 야쯔시로 신사였다.(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야쯔시로에 도착한 포운 이종기 선생의 첫 발을 이끈 것은 위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과 닮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현지에서 마주하는 가락국-야쯔시로의 연관 근거는 이종기 선생의 탐사에 새로운 콘텐츠를 풍부하게 추가하게 된다. 그 핵심에는 ‘묘켄(妙見)’이라는 신적 존재가 놓여있다.

묘켄(妙見)이란 “묘하게 본다”는 뜻의 한자인 그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여신이다. 야쯔시로에서 가장 유서 깊고 규모가 큰 신사인 야쯔시로 신사에서 모시는 주신이어서 야쯔시로 신사를 묘켄구(妙見宮)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묘켄 신앙은 야쯔시로 뿐 아니라 규슈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 보통 ‘묘견보살’이라고 해서 불교 신앙과 엮어 일본 전통 신앙의 사원인 신사뿐 아니라 불교 사찰에서도 받들어지고 있다. 묘견보살 신앙은 인도 불교의 보살 신앙에 중국 도교의 북극성‧북두칠성 신앙이 합쳐져서, 3세기경에 형성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야쯔시로의 묘켄 신앙은 일본 다른 지역의 묘켄보살 신앙과는 뚜렷하게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묘켄보살도 미륵보살, 관음보살 등 불교의 다른 보살들과 마찬가지로 자비와 신통력에 넘치는, 하지만 뭔가 막연하고 추상적인 존재로 숭앙된다. 반면, 야쯔시로의 묘켄은 마치 실제로 살아있던 인물인 것처럼 그 생애에 대한 디테일이 지역 구석구석에서 전해지고 있다.
직접 탐사했던 이종기 선생이 그곳 토박이들과 대화에서 들었던 묘켄 관련 구전 내용을 요약해보자.
묘켄은 원래 그곳 사람이 아니라 구사(龜蛇), 즉 거북뱀을 타고 바다로부터 왔다.
보좌하는 남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높은 곳에 올라 방향을 보고 터를 잡아 묘켄궁을 세우고, 그곳을 중심으로 8개의 성을 지었다. (이 성들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묘켄궁 인근에 사당을 세우고 북극성과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는 신,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天御中主神)를 모셨다. 이곳은 현재 레이후샤(靈符社)라고 불리며, 포운 선생이 탐사했던 당시엔 ‘황국 최초의 신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묘켄은 야쯔시로에서 70~80년 동안 머물다가 사망했는데 큰 무덤이 지어졌다.

이종기 선생은 이 구전에서, 일본 최초 고대국가인 야마다이국(邪馬台国)의 건립자로 숭앙되고 있는 ‘히미코(卑弥呼)’와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히미코, 혹은 비미호는 중국의 정통역사서 중 하나인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물인데, 부족사회 단계였던 일본에 최초로 중앙중심적 고대국가를 설립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삼국지에서 비미호에 대한 기술 중 이 글과 관련되는 것만 추려보자.
원래 왜국에서는 남자가 왕이었는데, 내란이 5~6년 계속된 후 비미호라는 여자를 왕으로 세웠다. 귀신의 도를 섬기며 능히 사람들을 미혹했다. 이미 나이가 많았지만 남편이 없고, 동생이 나라의 통치를 보좌했다.
비미호는 재사, 오월 등을 대방군에 파견, 구노국(狗奴国)과의 전쟁을 보고 했다. (서기 247년)
비미호가 죽어 무덤이 만들어졌다.
두 자료를 비교해보면, 묘켄과 히미코(비미호)는 확실히 공통된 부분이 있다. 우선 신통력이 있는 여성이었다는 점, 독신이었으며 보좌하는 남자 하나가 있었다는 점이 일치한다. 또한 사후에 특별히 기록될 만큼 유난한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점도 공통된다.
존속기간도 일치한다. 고려조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 20년(173년)에 왜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해는 진수의 삼국지에서 비미호와 관련된 연도 중 가장 늦은 때인 247년과는 74년 차이가 나니까, 비미호의 재위기간은 적어도 74년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묘켄이 야쯔시로에 머물렀다는 70~80년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중국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비미호에 대해서 일본 사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야마다이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부터, 비미호는 누구인지, 또 무덤의 위치는 어딘지 등등 다양한 논점에서 많은 학설이 난무하고 있다. 야마다이국 위치에 대해선 규슈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딘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주장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고대사에서 상당히 인정 받는 학자가 비미호가 조선, 즉 한반도 국가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1960년, 당시 도쿄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였던 역사학자 이노우에 미쯔사다(井上光貞)는 ‘일본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비미호는 무녀였다. (일본 황실의 조상인) 진구왕후도… 무녀였다. 비미호는 조선과 관계하는 여성이었다”고 적고 있다고 포운 선생은 말한다.
이노우에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썼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 위치의 학자가 아무근거 없이 한 말은 분명 아닐 테다. 그리고 인접국가 구노국과 전쟁이 터지자, 한반도의 대방군에 연락했다는 것을 봐도 비미호가 원래 그곳 토박이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일본에서 ‘도래인(渡來人)’, 즉 바다를 건너 온 사람이라고 하면 중국보다는 한국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그들의 과거 집단 경험에 한반도에서 건너 온 사람의 파워가 크게 작용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묘켄도 거북뱀을 타고 바다로 건너왔다는데, 한반도에서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에서 보이는 비미호와 야쯔시로 지역 묘켄의 공통점은 적어도 여섯 가지다. 첫째, 한반도 국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 신통력을 발휘하는 카리스마 리더였다. 셋째, 독신 여성으로서 한 남자의 보좌를 받았다. 넷째, 규슈 지역에서 왕궁을 건설하는 등 큰 권력으로 군림했다. 다섯째, 그렇게 살던 기간이 70년에서 80년 정도 된다. 여섯째, 죽고 나서는 상당한 규모의 무덤에 묻혔다.
남아 있는 구전이 그리 많지 않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이 정도 공통점이 발견된다면 두 이야기는 같은 소재의 다른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 묘켄과 비미호는 동일 인물이라고 하는 이종기 선생의 추론에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야마다이국은 야쯔시로에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종기 선생은 여기 덧붙여, 그 묘켄/비미호는 가락국의 왕녀였다고 주장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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