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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적 개념을 적용한 불교해석(4) --- 금강승 불교 수행체계2
明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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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5 18:39:26 (*.33.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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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적 수행과 영적 법맥의 의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전개되는 것이 금강승 수행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조야한 물질적 육체 대신에, 차크라와 나디와 프라나 빈두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미세한 체에 의지해서 실천되는 금강승의 요가적 수행은, 요가적 호흡법과 금강승 특유의 관상법이 결합되어서 매우 심오한 수행체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금강승 수행자는 자신의 몸을 하나의 소우주적 만달라로 심상화하면서, 미세한 몸을 구성하는 차크라, 나디, 프라나, 빈두를 심상화하면서, 특정 만트라와 호흡을 결합시키는 가운데 특정한 관상법을 실천합니다. 물론, 그런 직접적인 요가적 수행에 앞서 그 행법이 속해 있는 탄트라 의궤에 의거한 일정한 종교적 의식을 행합니다. 금강승 체계마다 나름의 독특한 관상법과 의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본존불에게 귀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 본존불을 인간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스승에 대한 귀의를 포함하고, 스승은 본존불과 동일시됨으로써, 수행자는 특정 법맥의 한 일원으로서 실질적으로 그 법맥의 본존불과 조사들로부터 가피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특정한 영적 법맥의 인연이 구체화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금강승 체계의 수행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본존불은 부처의 삼보가까야, 즉 보신불로서, 일체의 형상을 넘어서는 근원적인 다르마카야, 즉 법신불이 미세한 영적 차원에 현현한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불은 다시 지상에서 물질적 육체를 하고 있는 스승이라는 현존으로서 나타나는데, 그것을 니르마나카야, 즉 화신불이라고 합니다. 밀교수행에서 스승의 중요성은 최종적으로 수행의 결실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신불은 보다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최종적으로 수행자 자신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수행자가 밀교 수행을 통해서 자신 안에 법신, 보신, 화신을 구현하면서, 만달라로 상징화된 청정한 부처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밀교 수행자의 최종적 수행의 경지는, 환신이라고 불리는 미세한 몸을 성취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귀의해서 관상했던 본존불과의 동일시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본존불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 환신은 법신과 화신을 모두 갖추고 있는 신성한 부처의 몸으로서, 요가 수행자의 변형된 몸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금강승 수행자의 본질적 귀의처는 법신으로서, 일체의 형상을 넘어선 근원적 원리라고 할 수 있는 다르마카야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성이라고 합니다.
DK대사가 가르치는 인간의 영적 완성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인성자아의 성장, (2) 인성자아와 그리스도 의식(영혼)과의 합일, (3) 영혼과 모나드(영)와의 합일이 그것입니다. 굳이, 단계론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영이 있고, 영이 현상계와 관계를 맺을 때 존재하게 된 것이 영혼이고, 그 영혼이 현상계에서 구체적 형상을 취하게 되었을 때 인성자아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영혼-인성자아”는 분리되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고, 인성자아는 영혼의 현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고, 영혼은 영의 현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영”, 즉 모나드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현상계 내에서 윤회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난 뒤에 인성자아는 일정한 단계의 통합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사실, 영적 수행에 적합한 인성자아라고 하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은, 육체/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에 대한 의식적인 통제력과 균형을 상당한 수준에까지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성자아의 발달과 진화는, 멘탈체에 극화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의 단계에 도달한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높은 수준의 지성적 사유능력과 통제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영적 진화에 있어 가장 의미심장하고 심오한 변화의 시점은, 성장한 인성자아가 그 동안 의식적으로 지각되지 않았던 영혼과 의식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할 때입니다. 인성자아가 일정한 단계의 성장에 도달하면, 영혼의 영향력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런 무의식적인 연결이 반복되면서 일정한 때가 되면 의식적인 연결이 시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과의 무의식적인 연결이 어느 정도 반복되면(보통 그런 연결은 여러 생에 걸쳐서 오랫동안 진행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근원적인 구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성자아가 의식적으로 모나드를 지각하는 일은 없습니다. 인성자아는 반드시 영혼과의 온전한 합일을 성취한 다음에야, 다시 말해, 영혼으로서만(!) 살아가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모나드와의 온전한 연결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인성자아가 영혼 안에서 말 그대로 죽을 때만이 모나드에 대한 연결이 의식적으로 성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성자아에게 있어서 모나드는 말 그대로 “무(無)”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성자아와 모나드를 연결하는 유일한 원리로서의 영혼은, 인간의 영적 진화에 있어 비밀 중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승 수행에서 본존불 관상은, 극히 중요한 영혼과의 연결을 의식적으로 성취하려는 의도로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승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 무형의 법신은 그냥 믿음의 차원에서 설정됩니다. 구체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바로 본존불의 형상인데, 본존불의 형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인성자아의 형상에다 법신의 속성을 가미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수행자의 몸과 말과 마음(신/구/의)은 본존불의 몸과 말과 마음으로 동일시됨으로써, 시공간에 제약된 몸과 말과 마음이 아닌,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것이 됩니다. 본존불은 청정한 몸으로서 형상화됩니다. 그것은 곧 영혼과의 의식적 연결을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상승 밀교 관상 명상의 최종적 단계는, 항상 본존불을 법신으로 용해시키는 단계입니다. 그것을 원만차제라고 하는데, 그것은 오랜 무지의 습관에 의해서 자칫 본존불을 실체화시켜서 조야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본존불 관상이 고도로 진행되면, 수행자는 실질적으로 본존불과의 동일시를 경험하고, 본존불은 단순히 관상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으로서 살아있는 존재로서 경험됩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금강승 수행자는 이미 일반적인 수행자의 범주를 넘어서 정묘한 영적 세계에 실질적으로 입문해서 생생한 경험 속에서 영적 법맥을 자각하게 되고, 그의 몸은 청정한 에너지의 몸으로 변형됩니다. 청정한 몸으로 변형되는 단계는 요가적 수행의 매우 높은 단계로서, 법신의 무형상의 원리에서 본존불의 형상화라는 환신의 성취에 이르게 됩니다. 비로소 법신과 본존불과의 의식적 연결이 자각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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