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파 중관사상


중관적 견지에 몰입하여 단공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중관사상 [中觀思想]


불교|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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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중관학파(中觀學派 Mādhyamika)의 철학.


중관학파는 용수(龍樹 Nāgār-juna:150경~250경)로부터 시작되었다. 용수는 주저 〈중론송(中論頌) Mūlamadhyamakakārikā〉에서 석가모니의 연기론(緣起論)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공하다고 한다. 이것은 또한 가명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중도의 뜻이다"(衆因緣生法 我說卽是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용수는 불교의 핵심을 연기로 파악했으며, 이 연기는 관계성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즉 연기는 모든 존재의 존재방식을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존재도 자성(自性)이 없으며, 이것이 용수가 말하는 공(空 Sūnyatā)의 의미이다. 공한 존재는 고정불변한 실체(實體)가 없고, 모든 언어는 고정적인 대상을 가지므로 공한 세계는 언어적인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가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실체를 전제하여 성립하는 모든 언어가 세계를 올바로 드러내지 못하는데도 모든 이론들은 이러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때문에 용수는 이러한 이론들을 희론(戱論)이라 칭하며 비판했다. 용수가 다른 이론들을 비판하는 데 사용한 방법은 귀류법(歸謬法)이다. 이것은 어떤 이론의 전제조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논리를 전개시켜 나가다 보면 결국 모순되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론을 내부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이다. 용수는 이처럼 자신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무입장에서 다른 이론들의 내부모순을 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용수 이후 중관파는 무입장의 입장을 내세워 다른 이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적극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로 나뉘었으며, 귀류논증파가 정통의 지위를 이어갔다. 중관철학은 중국에서 삼론종(三論宗)의 성립을 가져왔다. 고구려 승려인 승랑(僧朗)의 학설을 이어받아 삼론종을 확립한 길장(吉藏:549~623)은 중관철학의 성격을 '잘못된 것을 타파하여 올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破邪顯正)으로 규정했으며,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의 이론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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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파(中觀派) 또는 중관학파(中觀學派, 산스크리트어: मध्यमिक madhyamika 마드야미카)는 용수(龍樹: 150?~250?)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인도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중관파는 유식유가행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이대 조류를 이루었다. 중국 불교의 삼론종은 인도 불교의 중관파에 대한 중국측 명칭에 해당한다.[1]

역사

사상편집

중관파의 중심사상은 이다.[2] 유부(有部)의 법유(法有), 즉 모든 개개의 존재에는 그 자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실체적인 자성(自性)이 있다고 하는 입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그러한 자성이 없는, 즉 무자성(無自性) · (空)이기 때문에 현상이 성립되며 또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만일 법유의 입장에 서 있는 본질과 같은 것을 실체시(實體視)한다면 현상계의 성립과 변화는 설명할 수 없다고 중관파는 주장하였다.[2]

이리하여 무자성(無自性)이고 인 현상계의 개개 존재는 다른 존재와는 상의상대(相依相待) 위에서 성립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용수는 이것을 연기(緣起)라 불렀으며 과 연기는 곧 제법실상(諸法實相: 현상계의 개개 만물의 실제 모습)인 중도(中道)라고 주장하였다.[2] 용수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저서인 《중론송(中論頌)》에 아래와 같이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諸法有定性。則無因果等諸事。如偈說。

 眾因緣生法  我說即是無
 亦為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

眾因緣生法。我說即是空。何以故。
眾緣具足和合而物生。是物屬眾因緣故無自性。
無自性故空。空亦復空。但為引導眾生故。
以假名說。離有無二邊故名為中道。

是法無性故不得言有。亦無空故不得言無。
若法有性相。則不待眾緣而有。
若不待眾緣則無法。是故無有不空法。

각각의 법이 고정된 성품(定性)을 지니고 있다면 곧 원인과 결과 등의 모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법(法: 존재)이다.
 나는 이것을 공하다(無)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가명(假名)이라고도 말하며,
 중도(中道)의 이치라고도 말한다.
 단 하나의 법(法: 존재)도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이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 법(法: 존재)을 공하다(空)고 나는 말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여러 인과 연이 다 갖추어져서 화합하면 비로소 사물이 생겨난다. 따라서 사물은 인과 연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사물 자체에는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하다. 그런데 이 공함도 또한 다시 공한데, (이렇게 공함도 다시 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물이 공하다고 말한 것은) 단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서 가명(假名)으로 (공하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과 공함도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에 의해) "있음(有)"과 "없음(無)"의 양 극단(二邊)을 벗어나기에 중도(中道)라 이름한다.

법(法: 존재)은 고정된 성품(性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있음(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법(法: 존재)은 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없음(無)"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떤 법(法: 존재)이 고정된 성품(性相 · 성상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법은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연기의 법칙에 어긋난다).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연기의 법칙에 어긋나므로 생겨날 수 없고, 따라서) 그 법(法: 존재)은 없는 것(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에 의해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다음을 대전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하지 않은 법(즉, 연기하지 않는 존재 또는 고정된 성품을 가진 존재)이란 존재할 수 없다.

《중론(中論)》 4권 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 대정신수대장경. CBETA. T30n1564_p0033b10(00) - T30n1564_p0033b22(04)

용수는 과 연기를 무아(無我)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연기와 무아는, 《중론송(中論頌)》의 불생불멸(不生不滅) · 불상부단(不常不斷)의8불(八不)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여러 개념의 어느 한 편에만 집착하지 않는 입장에 선다 하여 중도(中道)라고도 불리며, 중관파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2]

중관파는 후일 의 입장을 파악하는 방법의 상위(相違)에 따라 불호(佛護·Buddhapālita: 470-550)의 계통을 이어받은 프라상기카(Prasaṅgika)와, 이를 비판한 청변(淸辨·Bhavyaviveka: c. 500–c. 578) 계통의 스바탄트리카(Svātantrika)의 두 파로 나뉘었다.[2] 불호는 은 입장이 없는 입장에 있으며 타(他)를 파석(破析)함으로써만 표출(表出)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청변은 이란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라 했다.[2]

프라상기카는 필과성공파(必過性空派)[2] ·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6] · 구연파(具緣派)[5] 등으로한역되어 불렸고, 스바탄트리카는 자재논증파(自在論證派)[2] ·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6] · 의자기파(依自起派)[5] 등으로 한역되어 불렸는데, 이 명칭들은 두 파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불호의 계통에서는 월칭(月称·Candrakīrti: 600~c. 650[8]· 적천(寂天·Śāntideva: c. 650~760[8]) 등이 나오고, 청변의 계통에서는 관서(觀誓·Avalokitavrata: 7세기)가 나와 각기 용수의 《중론송》에 독자적인 주석을 가하였고, 후일의 대승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2]

주석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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