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트라 수행의 특징


탄트라 수행의 특징- 신체 구성요소의 활용 -
원명(델리대학 철학박사, http://osel.pe.kr, 2010.11.29)

 목차
  I. 서언        
 II. 본존요가(本尊瑜伽)
      1.  수트라(Sutra)와 탄트라(Tantra)의 구분 지표(指標)
      2.  지혜(智慧)와 방편(方便)의 합일
III. 변화(變化)의 매개체(媒介體)
     1. 기맥(氣脈)과 맥륜(脈輪)
     2. 기(氣)
          1) 기의 융해의 증후(證候)
     3. 백색명점(白色明點)과 적색명점(赤色明點)
     4. 뚬모(內熱)
IV. 결어


I 서언
   티벳불교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두 가지의 길(道)을 설하고 있다. 바라밀승(波羅蜜乘)과 금강승(金剛乘)이 그것이다. 여기서 ‘길(道)’ 이라는 것은 수행자를 불과(佛果)의 상태로 이끄는 내적인 길 또는 영적인 깨달음을 말한다. 두 가지 길 모두다 석가모니 붓다에 의해 설해진 것으로서 바라밀승은 수트라(sutra) 가르침에서, 금강승은 탄트라(tantra)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첫 번째 길의 연마는 두 번째 길을 수행하기위한 초석으로 금강승의 길은 수행자를 최종목적지까지 직접 실어다 주는 수레(乘)와 같고, 바라밀승의 길은 그 수레(乘)가 나아가는 길과 같다. 따라서 금강승의 가르침을 따르기에 앞서 바라밀승의 가르침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바라밀승의 수행은 '보편적인 길'라 불리는데, 탄트라의 행법을 통한 수행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이 ‘보편적인 길’의 수행을 실천해야 하고 이 수행에 진척이 있어야 탄트라의 방법을 채택할 수 있다. 그리고 금강승의 길이 바라밀승의 길보다 더 수승한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수행자의 마음에 상위 탄트라의 수련에 대한 영적인 갈망이 없이 탄트라를 수행하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금강승에서는 여러 가지 유형의 탄트라 수행법이 있는데 대부분의 행법들이 수행자의 신(身), 구(口), 의(意)를 붓다의 신, 구, 의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성취하기 위한 행법(行法)을 ‘본존요가(本尊瑜伽)’라고 하며 이것이 바라밀승과 금강승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주된 특징이 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본존요가의 성격과 특징을 ‘II. 본존요가(本尊瑜伽, Devatabhisamaya)’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수트라와 탄트라의 차이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금강승 수행의 특징인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수행자의 몸이 어떠한 기능을 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III. 변화(變化)의 매개체(媒介體)’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존요가(本尊瑜伽, Devatabhisamaya)
   금강승의 기본적 탄트라 행법은 자신을 깨달음을 성취한 존(尊)으로 관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존(尊)들이 거주하는 만다라로 관(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법을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세속적인 몸을 본존불(本尊佛)의 몸으로 변화 시키고 의식의 흐름 속에 존의 본성을 키워 나간다. 또한 탄트라의 실천은 수행자의 사대(四大), 오온(五蘊) 등을 불과(佛果)의 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음(中陰), 죽음, 환생(還生)의 상태를 붓다의 몸과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다양한 행법들이 있다. 이처럼 금강승에서 탄트라 경전을 의지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켜 불과에 이르고자 실천하는 요가행법을 ‘본존요가(本尊瑜伽, Devatabhisamaya)’라 한다. 
   광범위한 의미로 요가는 ‘합일(合一)’을 뜻한다. 따라서 본존요가란 존(尊)과의 결합을 실현하는 명상법을 의미한다. 수행자는 자신을 명상의 대상이 되는 존과 동일시하는 기술이 늘어감에 따라 그 존이 갖춘  깨달음의 본성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존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그 존의 본성에 가까워지고 일체감을 가지게 됨에 따라 스스로가 그 존이 가진 성품을 모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금강승의 수행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색이 있다. 첫 째, 자신을 실제의 존으로 여기는 신성한 긍지를 기르는 것(佛慢)과, 둘 째, 그 존의 모습을 뚜렷하게 관(觀)하여 그려내는 것이다. 신성한 긍지를 지니는 것은 수행자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서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보호하고, 존의 뚜렷한 모습을 관하는 것을 통해 수행자를 세속적 모습으로부터 보호한다.


  본존요가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감각기관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존(尊)으로 관(觀)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형상이 보이던 간에 그것을 존의 현현(顯現)이라 여기고 어떠한 소리가 들려도 존의 만트라(mantra)로 여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행자는 세속적인 외관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이러한 마음자세의 변화를 통해 존으로서의 자신감을 기른다. 나아가 수행자의 마음은 존의 마음과 하나가 되며 이러한 체험들은 깨달음의 마음으로 변화된다.

  1. 수트라(Sutra)와 탄트라(Tantra)의 구분 지표(指標) 
   대승(mahayana)불교라 일컬어지는 북방불교는 바라밀승(波羅蜜乘, paramita- yana)과 금강승(金剛乘, vajrayana) 두 승(乘)으로 구분될 수 있다. 바라밀승은 수트라(sutra)의 경전들에 나타난 사상들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다. 특히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에 나타난 ‘보살의 6바라밀 행’을 예로 들 수 있다. 바라밀승 대부분의 수행법들이 금강승의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탄트라에서는 바라밀승의 가르침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그것을 보완해 왜 자신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계발하기위해 수트라(sutra)와 탄트라(tantra)의 공통된 가르침인 ‘삼종요도(三種要道)’를 1차적인 수행법으로 가르치고, 수트라에서는 설해지지 않은 탄트라 문헌에 나타난 수행법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양자의 가르침과 행법들은 모두 붓다의 가르침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구분을 명확히 지을 수 없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菩提心)에 있어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수행자 모두 다 다른 모든 유정(有情)의 존재들을 구제하기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며, 수행의 성과로서 불과(佛果)을 이루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갖는다. 공성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도 양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금강승의 ‘중도(中道)’에 대한 견해는 바라밀승서 설하는 용수(龍樹, nagarjuna)의 중관사상(中觀思想)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에 관하여 쫑카파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의 존재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하는 의도(菩提心),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양자는 차이가 없다”고 확고히 말하고 있다. 게다가 양자 모두 개인적인 해탈만을 성취하는 것과 같은 남방불교의 가르침에 대립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 같은 적극적인 행의 필요성을 가르친다.
 

   혹자는 탄트라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이루는 길에 있어 욕망을 방편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설해졌고, 바라밀승은 인욕(忍辱)하고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수행자들의 수행을 위해 설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옳지 않다. 반야승과 금강승 모두 욕망을 여의는 길과 욕망을 저버리지 않고 수행해 나가는 길을 모두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라밀승과 금강승은 많은 점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양자를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차이는 바로 금강승에서 수행되는 ‘본존요가’라는 탄트라의 행법 때문이라 하겠다.
   수행자가 원만한 불과(佛果)를 이루었다고 할 때는 붓다의 법신(法身, dharmakaya)과 색신(色身, rupakaya)을 성취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수행자가 불과를 성취 하고자 한다면 붓다의 법신과 색신 이 두 몸을 모두 이루어야 불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불과를 이루기 위해서 성취해야 할 붓다의 몸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그 방법도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곧 지혜(智慧)와 방편(方便)의 수행이다. 일반적으로 지혜 수행에 관한 가르침은 붓다의 법신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고, 방편 수행은 붓다의 색신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법신은 수행자의 지혜가 완성된 최절정의 상태이고, 색신은 대자비심이 구체화된 형태로 현현(顯現)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법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법신과의 유사성을 계발 할 수 있는 지혜의 행을 닦아야 하고, 색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색신의 모습과 유사한 것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수행을 실천해야 하겠다.

   여기서, 바라밀승과 금강승 둘 다 붓다의 법신을 성취하는 수행법을 설하고 있다. 육바라밀 중 선정(禪定), 지혜(智慧) 바라밀이 그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색신의 모습에 대한 명상을 통해 색신을 성취하는 법은 바라밀승에서 찾아볼 수 없음으로 금강승에서 설하는 붓다의 색신 성취 방법인 ‘본존요가(本尊瑜伽)’가 바라밀승과 금강승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지표라 하겠다.

    이어서 금강승의 다음 특징으로 ‘지혜와 방편의 합일’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붓다의 두 가지 몸인 법신이나 색신은 그 어느 쪽도 단독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신과 색신 성취는 모두 지혜와 방편의 자량(資糧)의 완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지혜와 방편의 자량은 법신과 색신 성취의 상호원인으로 작용하고, 법신과 색신의 성취는 지혜의 자량과 방편의 자량이 수행자의 한 의식 속에서 합쳐질 때에 비로소 성취된다. 그러나 바라밀승의 가르침에는 이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수행자의 한 의식 속에서 합일 시킬 수 있는 수행법이 없다고 금강승에서 주장한다. 오직 금강승의 본존요가의 수행만이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각각 동시에 구족하게 하고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하나의 의식 속에서 합일 시킬 수 있다고 한다. 아래에는 이러한 금강승의 주장을 간략히 서술해 보고자 한다.


 2. 지혜(智慧)와 방편(方便)의 합일   앞서 서술했듯이 불과를 성취한다는 것은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한 의식 속에서 합일시켜 법신과 색신의 몸을 성취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지혜(智慧)’는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은 자성(自性) 없다는 사실, 즉 ‘공성’을 깨닫는 의식을 뜻하고, ‘방편(方便)’은 다른 유정의 존재들을 이롭게 하려는 동기와 행위들을 의미한다. 바라밀승서는 육바라밀 중 보시, 지계, 인욕을 수련을 통해 방편의 자량을 쌓고, 한편 선정과 지혜를 통해 지혜의 자량을 쌓는다. 정진은 지혜와 방편에 공통되는 자량이다. 이렇듯 바라밀승의 수행자는 육바라밀의 수련을 통해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쌓아 나간다.
 

   반면 금강승에서는 육바라밀의 실천뿐만 아니라 본존요가 수행을 병행한다. 본존요가를 수행함으로써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동시에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법신이나 색신 그 어느 쪽도 따로따로 단독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의 자량이 붓다의 법신을, 그리고 방편의 자량이 붓다의 색신을 실현해 내는 인(因)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최종적으로 법신이나 색신이 성취되는 시기는 지혜와 방편의 자량이 수행자의 한 의식 속에서 결합 될 때 이다. 따라서 불과를 성취하기 위해서 지혜나 방편 어느 한쪽만을 수행하는 것은 결코 적절치 않고, 또한 반드시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하나의 의식 속에 합쳐질 수 있는 수행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지혜와 방편을 따로따로 수행한다. 그래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이 공에 대하여 명상할 때에는 보시 등의 다른 수행을 할 수 없고, 보시 등을 하고 있을 때에는 공에 대한 명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지혜와 방편의 자량을 동시에 연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라밀승의 철학적 교의체계는 지혜와 방편을 합일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지혜는 보시 등 이전에 행했던 힘의 영향을 받고 방편은 공에 대한 명상을 했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마음이 공성과 계합한 연후에 ‘모든 법이 공하다’는 관조력을 잃지 않고 보시, 지계, 인욕을 닦아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보리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성을 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이다.
    그러나 금강승에서는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결합이란 양자가 완전히 혼합된 하나의 의식이 아니라 단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각각의 독립된 두 의식일 뿐이라 주장한다. 또한 ‘지혜와 방편의 불가분성’은 지혜와 방편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실체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 안에 포함된 지혜와 방편을 뜻하는 것이라 역설한다. 따라서 금강승에 의하면 지혜와 방편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요소가 하나의 의식에서 합쳐지는데 이 합일은 본존요가의 수행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다. 
   바라밀승의 수행자가 공에 대한 개념적 또는 추론적 인식을 얻게 되면 오직 공만이 나타나고 대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본존요가는 공성에 대한 명상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존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존의 거주지로(만다라), 자신의 도반들을 신성한 존재들로, 자신의 행동들이 존의 신성한 행동으로 관함으로써 금강승의 수행자가 공을 깨닫게 되면 관하던 현상이 공하다는 지각이 일어남과 함께 그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성의 범주 내에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이 동시에 존재하고 공을 깨닫기 위해 사용된 미묘(微妙) 의식은 붓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III. 변화(變化)의 매개체(媒介體)
   금강승에서는 욕망의 활용을 대단히 강조할 뿐만 아니라 불과(佛果)를 이루는데 매개체가 되는 수행자의 신체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금강승에 의하면 무상요가(無上兪伽)탄트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대(四大)와 기맥(氣脈, nadi), 그리고 명점(明點, bindu)으로 구성된 몸을 갖고 태어난 인간 이어야만 한다. 금강승의 수행법은 수행자를 불과의 상태로 변화시키는데 있어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것을 갖추지 못한 몸을 지닌 다른 생명체들은 무상요가탄트라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무상요가딴뜨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일상생활의 거친 수준으로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수준으로도 존재한다. 다양한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일상적인 신체적 형태는 병과 쇠퇴와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금강신(金剛身)이라 불리는 미세한 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소멸되는 물질적인 거친 수행자의 몸이 일반적인 신체기관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금강신의 몸은 기(氣)와 명점(明點)이 흐르는 수천 개의 기맥(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맥들은 지복(至福) 원천이며 무상요가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탄트라 수행의 목적은 미세신(微細身)의 구성요소를 정화하여 붓다의 세 가지 몸(法身, 報身, 化身)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다. 기본적인 수행은 집착과 번뇌로 인해 숨겨져 온 인간의 몸과 붓다의 몸 간의 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몸을 중개해주는 연결고리가 기맥(氣脈, nadi), 기(氣, vayu) 그리고 명점(明點, bindu)이다. 이 세 가지의 주된 구성요소와 붓다의 세 가지 몸의 상호연관성은 다음과 같다. 미세신(微細身)은 기맥에 의존하고 기맥은 기에, 기맥 안을 흐르는 기는 마음에 의존한다. 명점 안에 있는 마음의 정수는 몸 전체에 분포해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기를 지탱하고, 기가 기맥을, 기맥이 몸을 지탱한다. 여기에서 기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것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에 마음이 올라타고 제어 없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호흡과 관상, 만뜨라를 통해 기맥, 기, 명점을 다루는 탄트라 행법은 기를 제어하고 이 요소들을 불과를 얻는데 활용한다.
 

  1. 기맥(氣脈)과 맥륜(脈輪, cakra)
   기맥(氣脈)이란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수행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개념들을 떠오르게 하는 기가 지나다니는 마치 혈관과 같은 미세한 통로이다. 탄트라의 생리학에 의하면 수많은 기맥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72,000개라고 하나 또한 셀 수 없이 많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마 중앙부에서 정수리를 거쳐 척추를 타고 내려와 성기 끝에 나란히 이르는 ‘세 가지 주요 기맥’들은 탄트라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기맥으로 여겨진다. 다른 모든 기맥들이 이 세 가지 주요 기맥에서 갈라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주요 기맥이란 중맥(中脈), 우맥(右脈), 좌맥(左脈)이다.
   기맥들은 항상 일정한 방식으로 설명되는 정확한 체계라기보다는 미세한 몸의 비유형성(非有形性) 대한 척도이다. 미세신과 연관된 기맥과 맥륜(脈輪, cakra)들은 특정 탄트라의 체계에 따라 그 설명이 매우 다양하다. 기맥과 맥륜은 물질적인 신체에서와 같이 지적해 낼 수 있는 고형의 실체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이 신체의 어느 부분에 정확히 해당하는가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이러한 증명의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고 중요하면서도 보편적인 설명이 있다. 이 설명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긴 하나, 어쨌든, 이것은 수행자 스스로가 직접 찾아내야 하며 자신의 명상능력과 자신이 따르고 있는 특정 탄트라의 수행에 의거하여 그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제시되는 기맥과 맥륜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인 것이라 하겠다.
1) 중맥(中脈): 중맥은 마치 우산대와 같은 것으로서 각 맥륜의 중심를 관통한다. 색깔은 옅은 푸른색이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속성이 있다. 열대 나무처럼 수직으로 곧추 서있으며 안쪽은 피처럼 매끄러운 붉은색이다. 초의 불꽃처럼 아주 분명하고 투명하다. 그리고 연꽃잎 마냥 부드럽고 유연성이 있다. 중맥은 신체를 좌우로 양분하여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데 몸의 앞쪽보다는 등 쪽에 좀 더 가깝다. 척추의 앞쪽에 인접하여 제법 굵은 명맥(命脈)이 있고 이것의 앞면에 중맥이 있다. 중맥은 척수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해당한다.

   앞서 말했듯이 중앙기맥은 양쪽 눈썹 사이의 한 점에서 시작하여 아치 모양으로 정수리를 거쳐 올라갔다가 성기 끝까지 일직선으로 내리뻗는다. 기를 이 기맥으로 거둬들임으로써 좌우 기맥의 기에 관련된 부정적인 활동들을 포기하게끔 된다. 그래서 중앙기맥을 ‘두 가지의 단념(二種斷念)의 맥’이라고도 한다. 중앙기맥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은 ‘마음의 맥(意脈)’과 ‘라후(Rahu)’이다.
2) 우맥(右脈): 우맥은 오른 쪽 콧구멍 끝에 있는 중앙기맥에서 갈라져 나와 중앙기맥의 오른쪽으로 약 1인치 정도 떨어져 중앙기맥과 나란히 뻗어나간다. 우맥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오면 약간 왼쪽으로 구부러져 항문 끝에서 그친다. 여기에서 대변을 참거나 내보내는 등의 작용을 한다. 우맥의 색은 붉은색이다. 우맥을 통해 흐르는 기는 주관적인 마음의 측면에서 전개된 개념들을 일으키므로 ‘주관소유(主觀所有)의 맥’이라고 불린다. 또는 ‘태양맥(太陽脈)’, ‘언어맥(口脈’)이라고도 한다.
3) 좌맥(左脈): 좌맥은 오른 쪽 콧구멍 끝에 있는 중앙기맥에서 갈라져 나와 중앙기맥의 왼쪽에서 나란히 뻗어나간다. 좌기맥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오면 약간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성기 끝에서 그친다. 여기에서 정액, 피, 소변을 참거나 내보내는 작용을 한다. 좌기맥의 색은 흰색이다.  좌맥을 통해 흐르는 기는 대상의 측면에서 전개된 개념들을 일으키므로 ‘객관소유(客觀所有)의 맥’이라고 불린다. 또는 ‘월맥(月脈)’, ‘신맥(身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탄트라에서 말하는 우맥은 자비와 방편에, 좌맥은 공과 지혜에 각각 해당한다. 그리고 중맥은 양자의 합일인 보리심에 해당한다. 또한 이 세 가지 기맥은 붓다의 세 가지 몸, 즉 화신, 보신, 법신과 동일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맥륜(脈輪, cakra)이란 좌맥과 우맥이 중맥에서 교차하는 곳에 형성된 원형의 중추를 말한다. 중맥의 특정 위치 부근에서 좌맥과 우맥이 중맥을 고리모양으로 감싸서 이른바 ‘기맥의 매듭’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매듭 부위에서 뻗어나온 기맥의 가지들이 맥륜을 형성한다. 매듭이 생기는 위치는 네 군데인데 아래로부터 배꼽, 가슴, 목, 정수리 부분이다. 가슴 부분을 제외하고 각각의 위치마다 좌맥과 우맥의 홑겹의 코일(coil)이 만나 두 겹의 매듭을 만든다. 
   좌맥과 우맥이 중맥을 따라 오르다 어느 위치에 이르면 중맥의 앞을 교차하여 중맥을 감싸는 형식으로 매듭을 형성한다. 그런 뒤 다음 단계의 위치로 계속 상향한다. 가슴 부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다만 여기서는 기맥들의 측면이 각각 겹쳐져서 세 개의 코일이 생겨 여섯 겹의 매듭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매듭들은 중맥 내의 미세한 기의 흐름을 막아 중맥이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작용을 방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탄트라에서는 이 중맥의 정화작용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맥륜의 매듭을 풀어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행법을 가르친다.

   맥륜의 개수와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껠상갸초는 마하무드라에 있어서 여섯 개의 주요 맥륜이 있다고 밝히고 있고, 달라이라마 존자는 비밀집회 딴뜨라에 여섯 개의 맥륜이 설명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다스굽타에 의하면 헤바즈라 딴뜨라에 언급된 맥륜은 네 개로서 정수리, 목, 심장, 배꼽에 위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로 탄트라 문헌에서는 앞의 네 가지의 맥륜을 주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1) 마하수카 맥륜(mahasukha-cakra): 정수리에 위치한 대락(大樂, mah?sukha) 맥륜은 정수리 두개골 밑 부분과 뇌의 윗부분 사이에 위치한다. 너비는 1/8인치 정도이고 흰색, 초록, 빨강, 검정의 다양한 색이며 중심은 삼각형 모양이다. 이 지점에서 좌맥과 우맥이 매듭을 지으면서 중앙기맥을 조인다. 이 기맥들이 4개로, 8개로의 형식으로 가지를 뻗어 나와서 종국에는 대락의 중추에서 뻗어 나온 총 32개의 분지기맥(分枝氣脈)을 형성한다. 생김새에 있어서 이 맥륜은 높이 펼쳐진 우산을 닮았다. 희열(喜悅)의 토대가 되는 백보리심(白菩提心)이 주로 이 맥륜에 머물고 있어 이 중추를 '마하수카(大樂, mahasukha)'라고 한다.
2) 삼보가 맥륜(sambhoga-cakra): 이 맥륜은 목의 후골(喉骨)에 위치한다. 색깔은 붉은색이며 모양은 원형이다.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맥륜은 좌맥과 우맥이 만든 매듭으로 인해 조여지고, 뒤집어진 우산모양으로 뻗어 나온 16개의 분지기맥을 형성한다. 이곳에서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 6미를 느끼기 때문에 삼보가(遊戱, sambhoga) 맥륜이라 한다.
3) 다르마 맥륜(dharma-cakra): 이 맥륜은 흉부의 가슴에 위치한다. 색깔은 흰색이며 중추는 삼각형 모양이다. 이 맥륜의 중추에서는 좌맥과 우맥이 조여 세 개의 매듭을 만든다. 이 중추는 오른쪽이 올라간 우산 모양으로 뻗어 나온 8개의 부차기맥을 형성한다. 이 맥륜이 다르마(法, dharma) 맥륜이라 불리는 이유는 다르마(dharma) 수행의 가장 주된 수단 마음이 가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로부터 유전된 ‘불괴명점(不壞明点)’이 여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4) 니르마나 맥륜(nirmana-cakra): 이 맥륜은 배꼽에서 손가락 네 개 만큼의 폭 아래에 있다. 정수리에 있는 맥륜처럼 이 맥륜도 여러 가지 색깔이다. 중추는 원형이며 뒤집혀진 우산 모양으로 뻗어 나온 64개의 분지기맥 있다. 대락(大樂)이 발산되어 나오는 기본원리는 내적인 열기의 불꽃이며 이것은 주로  배꼽 아래 부위에 머무르기 때문에 이 맥락을 니르마나(發散, nirmana)라 부른다.
   다르마 맥륜(dharma-cakra)은  각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이 맥륜의 8개의 분지기맥은 신체의 앞면 쪽인 기본 방향과 중간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들 8개의 부차기맥 각각으로부터 세 기맥들이 갈라져서 전부 합하여 24개의 기맥을 만든다. 이들 24개의 기맥 각각이 다시 세 개의 지맥으로 갈라져서 72개의 기맥을 만드는데 이 72개 기맥은 이를 관통하는 주요요소들(기, 백색명점, 적색명점)로써 분류된다. 72개의 기맥 각각은 또다시 1,000개로 갈라져서 총합 72,000개의 기맥을 이룬다.

   무상요가 탄트라를 수행하는 사람은 이러한 기맥들의 배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기와 기맥 등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에 대해 명상함으로써 다양한 기를 중앙기맥으로 유입시키고 아울러 다르마 맥륜의  불멸명점에 까지 기를 유입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가 중맥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탄트라를 수행을 한다 하여도 대락(大樂)과 공(空)의 합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2. 기(氣)

   바라밀승에서는 윤회와 고통의 근원이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집착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것을 주로 설한다. 그러나 금강승에서는 윤회의 근원이 단지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신체의 좌맥과 우맥, 그리고 다른 72,000개의 기맥 안에 흐르는 부정한 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기들이 부정하기 때문에 기에 의지하는 여러 마음도 부정하게 되는 것 이다. 그래서 이러한 기가 모든 기맥 내에 흐르고 있는 한 이원적인 개념을 계속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기가 명상을 통해 중맥에 유입(流入), 재류(在留), 융해(融解)되면 이것이 부정적인 기의 작용을 정지시킨다. 부정한 기가 정지함으로써 그에 의존하는 부정한 마음도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밀교수행자는 기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기의 유형과 그 기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기의 유형을 분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오종근본기(五種根本氣)'와 '오종분기(五種分氣)'로 구별된다. 아래에서는 오종근본기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겠다.
1) 쁘라나(prana, the life-supporting wind, 持命風): 이 기(氣)는 가슴에 머물며 생명과 신체를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피, 정액 등 신체의 액체를 증진시킨다. 그래서 수기(水氣)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들숨과 날숨 등을 관장하며 색깔은 흰색이다.
2) 아빠나(apana, the downward-clearing wind, 下行風): 이 기는 성기 부근에 위치한다. 있다. 이것은 소변과 대변은 물론, 필요할 경우 백보리심(白菩提心), 홍보리심(紅菩提心)을 내려 보내고 방출하거나 유지,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뼈, 이, 손톱, 발톱의 발육을 담당한다. 따라서 지기(地氣)라고 하며 흙 요소와 관련되어 있음으로 해서 노란 색을 띈다.
3) 우다나(udana, the upward-moving wind, 上行風): 이 기는 목에 위치한다. 이 기의 작용으로 인해 음식물을 삼키고 마시는 일은 물론이고 음성에 관한 모든 활동이 일어난다. 화기(火氣)라 알려져 있으며 신체의 열을 증진시킨다. 불 요소와 연관되므로 색깔은 붉은색이다.
4) 사마나(samana, the fire-accompanying wind, 等住風): 이 기는 배꼽 아래에 위치한다. 여기서 말하는 ‘불((火)'이란 위장의 열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기는 소화 작용을 담당한다. 우리가 먹고 마신 음식물의 영양분과 찌꺼기를 분리하여 영양분을 신체 각 부분으로 보내 몸을 지탱하게 하고 찌꺼기들을 배설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한다. 기맥 내에 흐르는 풍(風)의 요소를 증진시키므로 풍기(風氣)라고 하며 색깔은 짙은 초록색이다.
5) 비야나(vyana, the pervasive wind, 遍行風):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이 기는 몸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 신체의 다양한 물리적 움직임과 동작들 즉, 걷기, 앞으로 숙이기, 뒤로 구부리기 등은 모두 이 기의 작용이다. 이 기는 체내공간의 규모를 증가시키므로 공기(空氣)라 하며 색깔은 푸른색이다.


     가) 기의 융해의 증후(證候)
   신체의 특정 부분들에 집중하여 명상을 함으로써 기가 중앙기맥에 들어가 머무르고 융해된다. 기가 융해되 되면 그 기에 의지하고 있는 마음의 작용도 또한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거친 기가 융해 되면 거기에 따라 거친 형태의 마음 작용도 멈추고 미묘한 기와 마음만 남게 된다. 기가 중앙기맥에 유입(流入) 되었음을 알려주는 첫 번째 신호는 양쪽 콧구멍을 통해 고르게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신호로는 들숨과 날숨의 압력이 정확히 균등해진다. 기가 중앙기맥 내에 머물러 있을 때의 현상은 호흡이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완전히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과 관련된 복부의 움직임이 멈춘다. 기가 중앙기맥 내에 머물러 있게 되면 더 수행자는 더 이상 탁한 공기에 생명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호흡은 사망 시에만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잠자는 동안 호흡은 훨씬 더 깊어지지만 절대로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상요가 탄트라의 원만차제를 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의식불명에 빠지는 일 없이 호흡이 완전히 정지하게 할 수 있다.
   기가 중맥 내에 융해 되었을 때의 증후(證候)에 관하여 살펴보면, 중맥에서 융해되는 기는 7종이 있는데 이들 각각은 융해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내는 일정한 신호가 있다. 일곱 개의 기는 1) 지(地), 2) 수(水), 3) 화(火) 4) 풍(風), 5) 현명(顯明)의 마음을 동반한 기, 6) 현명증휘(顯明增輝)의 마음을 동반한 기, 7) 현명근득(顯明近得)의 마음을 동반한 기(氣) 이다. 이 일곱 개의 기 중에서 앞의 네 개는 거친 수준의 기이고 나머지 세 개는 미묘한 단계의 기이다. 이 일곱 종류의 기가 점차 융해되면 중맥에서 각 융해에 부합하는 8개의 현상이 차례차례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다.
1) 신기루 현상: 이 현상은 지기(地氣)가 중맥 내에서 융해될 때 나타난다. 이 증후는 마치 여름에 햇볕이 사막에 내리쬘 때 물이 가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비록 신기루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5색 빛을 발 한다. 이 현상이 감지되는 데에는 지기(地氣)의 융해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융해가 미미할 경우는 기색이 어렴풋하고 적어서 알아채기가 힘들다. 융해가 거의 다 되었을 때에는 증상이 분명해지고, 융해가 끝나면 더욱 생생해져서 이것을 지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기(地氣)의 융해가 끝나고 ‘신기루현상’을 인식하고 나면 그 다음의 기가 용해되고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2) 연기(煙氣)현상: 수기(水氣)가 중맥 안에서 융해 될 때 나타난다. 이것은 굴뚝이나 불꽃에서 나는 소용돌이치는 연기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방안에 향을 피워 놓았을 때의 몽롱한 안개와 같은 연기라 할 수 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수기(水氣)의 융해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수준으로 이 현상이 감지된다.
3) 반딧불 현상: 이 현상은 화기(火氣)가 중앙기맥 내에서 융해될 때 나타나는데 마치 공중에 튀는 불똥과 비슷하다. 불붙은 땔나무를 쳤을 때 불똥이 이리저리 튀는 것을 생각 하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이 현상 또한 화기(火氣)의 용해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수준으로 감지된다.
4) 촛불 현상: 이 현상은 거친 개념적 사고를 동반한 풍기(風氣)가 중맥에서 용해 될 때 나타난다. 이것은 마치 외풍이 없는 방안에 켜진 촛불 또는 등잔의 불꽃처럼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선 불꽃과 같다. 풍기가 거친 개념적 사고의 분별의식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풍기가 중앙기맥에서 융해되면 분별의식의 작용이 소멸된다. 이 현상 역시 세 가지 수준으로 감지된다.
5) 현명(顯明)의 백색현상: 이 현상은 풍기(風氣)의 융해가 완결되었을 때 나타난다. 이것은 오직 달빛만으로 가득 찬 가을 하늘이나 하얀 빈 공간에 비할 수 있다. 촛불현상 이후로는 모든 거친 개념적인 의식의 작용이 멈춘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氣)가 소멸되어 더 이상 그 의식을 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명의 백색현상의 초기 단계부터는 팔십자성(八十自性)의 분별의 마음들이 융해되기 시작해서 거친 마음의의 작용이 소멸되고 미묘한 의식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거친 의식이 소멸된 현명의 백색현상에서의 의식을 ‘현명(顯明)의 마음’이라 부른다. 현명(顯明)의 마음은 개념과 상(像)에 얽매이지 않고 하얀 빛으로 충만한 미묘한 마음이지만 여전히 소량의 이원성을 지니고 있다.
6) 현명증휘(顯明增輝)의 적색증가 현상: ‘현명(顯明)의 마음’을 동반한 기가 융해될 때 ‘현명증휘의 적색증가 현상’이 나타난다. 이 ‘현명증휘’의 마음은 ‘현명’의 마음’ 보다 좀 더 미묘하다. 현명증휘의 마음이 일어날 때의 증후는 붉은 오렌지 빛의 햇빛으로 가득한 맑은 가을하늘과 같은 현상이다.
7) 현명근득(顯明近得)의 흑색현상: ‘현명증휘’의 마음과 이를 동반한 기가 함께 용해될 때 ‘현명근득의 흑색현상’이 일어난다. 이때의 마음은 현명증휘의 마음보다 한층 더 미묘하며 마치 가을하늘에 티끌 한 점 없고 밤이 시작될 무렵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 것과 같다. 현명근득의 마음에는 두 가지 수준이 있다. 처음은 여전히 대상에 대한 미세한 감각 즉, 집중된 의식이 미세하게 남아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집중된 마음이 전혀 없다. 말하자면 현명근득의 흑색현상의 첫 단계에서는 암흑의 현상을 경험하지만 나중에는 압도적인 무의식 즉,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8) 정광명(淨光明): ‘현명근득’의 마음을 동반한 미세한 기가 융해 될 때 ‘정광명’의 마음이 나타난다. 이 정광명의 마음은 거친 이원성의 현상을 조금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광명이라 불리는, 아주 투명하고 공허한 여명과 같은 현상이다. 햇빛 그리고 어둠이 없는 가을 새벽하늘의 자연스런 색깔이다. 일반적으로 다르마 맥륜의 중추의 불괴명점(不壞明点)에 위치한 가장 미세한 마음과 기는 작용하지 못하다가 정광명의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활성화되고 현현(顯現)한다. 정광명의 마음은 모든 마음의 근원이기 때문에 근본마음이라 불린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모든 마음은 후천적 또는 외래적으로 생긴 것일 뿐이다. 우리의 전생에서 내생 각각에 걸쳐 기원이 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 바로 이 정광명의 마음이다.
   다른 그 어떤 마음도 정광명의 마음보다 더 미세해질 수 없다. 앞에서부터 네 가지의 현상들의 단계(신기루 현상, 연기현상, 반딧불 현상, 촛불현상)에서 거친 기가 용해되고 나머지 세 단계(현명의 백색현상, 현명증휘의 적색증가 현상, 현명근득의 흑색현상)에서는 미묘한 기가 용해된다. 이처럼 거친 기와 미묘한 기가 전 단계에서 이미 융해되었기 때문에 다음 단계인 정광명에서는 극 미묘한 마음과 그를 수반하는 기가 드러나고 활성화 된다. 이 정광명의 마음과 기는 불괴명점에 존재하고 가장 미세하고 근본적인 것이므로 더 이상  융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정광명의 마음은 붓다의 법신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위의 현상들은 중앙기맥에 기가 용해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탄트라 수행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죽음의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임종의 과정에서 기는 저절로 중앙기맥으로 흘러들고 모여들어 용해된다. 그로 인해 백색현상, 적색증가 현상, 근득의 흑색현상과 같은 미세한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지만 일반 사람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무상요가 탄트라 수행에서는 관상을 통해 죽음의 과정을 모방하여, 제어되지 않는 일상적인 죽음과 중음(中陰), 환생(還生) 과정을 정화한 다음 이것을 불과의 상태로 변화시킨다. 수행자가 정광명에서 깨어날 땐 현명근득의 흑색현상의 마음을 제일 처음 경험하고, 계속해서 현명증위의 적색증가, 현명의 백색현상, 촛불현상 등 8 가지 현상들을 역순으로 경험하게 된다. 
  융해(融解)라는 의미에 있어서 예를 들어 지(地)요소가 수(水)에 융해된다고 할 때 이것이 마치 하나가 다른 하나로 녹아드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전자는 후자의 성질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식의 토대로써 활동하는 지(地) 요소와 그것이 지탱하는 마음이 활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지(地) 요소로서의 작용력을 상실함으로써 수(水)의 기운과 작용력이 좀 더 명백하게, 확실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용해’라는 용어는 둘 중 선행하는 기와 마음의 작용이 멈추고 뒤에 오는 기의 효력과 작용이 더욱 뚜렷해지는 것을 뜻한다.


  3. 백색명점(白色明點)과 적색명점(赤色明點)
   '명점(明點)' 이라는 용어는 범어의 ‘빈두(bindu)’를 번역한 것으로서 신체에 있는 두 가지 형태의 백색과 적색의 방울(明點)을 가리킨다. 백색명점은 '백보리심(白菩提心, white bodhicitta)'이라 하는데 아버지가 본래 가진 백색명점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액의 순수한 본질이다. '홍보리심(紅菩提心, red bodhicitta)'이라 알려져 있는 적색명점은 어머니의 본연 적색명점에서 기원한 피의 순수한 본질을 말한다. 이 두 명점이 가슴 맥륜에서 결합하여, 백보리심이 위에 오고 적보리심이 아래에 위치하는 ‘불괴명점(不壞明点)’을 이룬다. 불괴명점은 수태될 때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최초의 물질적인 토대이며 신체에 있는 모든 명점들은 이것으로부터 생겨난다. 

   더 나아가 모든 맥륜은 이 명점의 일부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데, 백색명점의 주요 증가 위치는 마하수카 맥륜(mahasukha-cakra, 頂輪), 적색맹점의 주요 증가 위치는 니르마나 맥륜(nirmanaa-cakra, 丹輪)이다. 다르마 맥륜(dharma-cakra, 胸部輪)의 중추에 있는 불괴명점은 백색명점과 적색명점으로 구성되며 양자를 균등하게 증가시킨다. 그러나 백색명점은 기맥의 매듭으로 인해 정수리 짜끄라에, 적색명점은 배꼽 짜끄라에 머물러 있게 된다. 수행자가 명상을 통해 의식적으로 정수리 기맥의 매듭을 풀게되면 명점이 녹아 기맥을 통해 흘러 내리며 4공과 4환희를 일으킨다. 

   다르마 맥륜(dharma-cakra) 중심부에 위치한 ‘불괴명점’은 ‘극도로 미묘한 의식’과 ‘극도로 미세한 기’가 결합된 참깨씨 만한 조그만 명점이다. 명점 안의 아주 미세한 기의 연속성은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고 극 미묘한 마음과 결코 분리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불괴명점(不壞明点)’라 불리는 것이다.
   불괴명점에는 ‘생시불괴명점(生時不壞明點)’과 ‘영구불괴명점(永久不壞明點)’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생시불괴명점’은 아주 작은 크기의 미세한 물질 물(物)이다. 임종의 과정에서 기와 의식이 가슴에 위치한 이 명점으로 몰려들고 기가 용해됨과 함께 사람의 임종 시에 파기된다. ‘영구불괴맹점’은 ‘생시불괴맹점’ 안에 존재하는 아주 미묘한 의식 또는 기이다. 그러므로 기는 생시불괴맹점에서 먼저 융해되고 난 후 다시 영구불괴맹점 안에서 융해된다. 그러나 영구불괴명점 안에서 기의 융해 시 기의 그 연속성은 멈추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이 연속성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왔고, 이생에서 다음 생까지 그리고 불과를 이룬 상태에까지 지속된다.


4. 뚬모(內熱, candali)    탄트라의 수행에서는 기(氣)의 흐름을 제어하는 법을 수학하고 기를 좌, 우 기맥에서 중맥으로 유입시킨다. 그런 다음 기를 특히 니르마나 맥륜(nirmana-cakra)의 중앙기맥을 통해 흐르게 함으로써 열이 증가하는 느낌을 기맥 내에 일으킨다. 중맥 안에서 일어난 이 열은 기맥의 매듭을 풀고 백색명점과 적색명점을 녹게 만든다. 그리하여 명점은 여러 기맥으로 좀 더 수월하게 흐르게 되고 이때 강렬한 희열(喜悅) 초래한다. 일반적으로 이 열 또는 열을 일으키는 방법을 ‘뚬모(gtum mo)’라 한다. 티벳어 ‘gtum mo’란 글자 그대로 ‘용감한 여성’ 또는 ‘사나운 여성’을 일컫는데 ‘Gtum’은 용기, 용맹, 사나움을 뜻하고 ‘Mo’ 는 티벳어 문법에서 여성형을 만드는 수식어구이다. 그래서 인지 간혹 몇몇 책에서는 티벳어 ‘gtum mo’에 해당하는 용어로 ‘흉포한 자’, ‘사나운 여성’ 또는 ‘내부의  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gtum mo’ 수행은 명상을 통하여 자신의 몸, 중맥 안에 희열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내열’이라 의역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이 ‘뚬모(내열)’의 수행은 모든 무상요가 탄트라 수행의 공통 수행이다. 마하무드라(Mahamudra)의 수행 체계에서는 내열요가를 통해 기를 니르마나 짜끄라(단전 부위)로 유입시킨다. 규햐삼마자(秘密集會, Guhyasamaja) 탄트라 에서는 내열이 기의 요가를 통해 일어나지만 이 요가를 다른 체계에서 처럼 ‘뚬모(gtum mo) 요가’라 부르지 않는다. 나로육법(Six Yogas of Naropa)에서는, 여섯 요가 중 첫 번째 요가행이 불과 태양을 수행자 신체의 여러 부위에 관해서 내열을 일으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뚬모’ 수행이다. 나로육법 요가의 으뜸은 몸의 여러 부분에 불과 태양을 관상함으로써 내열을 증가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무상요가탄트라의 원만차제 단계에서 이 ‘뚬모 요가’가 행해진다. 좌 우맥의 기를 중맥에 유입시키고 백색명점과 적색명점을 융해시켜 희열, 지복을 일으키는 것은 이 ‘뚬모 요가’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IV. 결어
   이상으로 바라밀승(波羅蜜乘)과 금강승(金剛乘)의 차이점과 이로 인한 금강승의 수승한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금강승의 특징은 본존요가(本尊瑜伽)를 통한 지혜와 방편의 수행이며,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통해 불과(佛果)를 성취케 하는 것이다. 본존요가는 존의 외형적인 모습, 내적인 성품을 관하는 관법수행과 함께 수행자 신체의 구성요소를 활용한다. 즉 수행자의 신체구성 요소인 기(氣), 기맥(氣脈), 맥륜(脈輪), 명점(明點)을 활용하여 붓다의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을 성취하여 불과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본존요가 수행의 가르침을 수트라(sutra)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밀승의 입장서 볼 때, 탄트라(tantra)의 행법들을 비불교적 요소라 지적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비불교적 요소가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붓다의 경지인 불과를 성취하는데 있어, 방편 즉 성취 방법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불교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탄트라수행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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