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성, 양극, 인과율, 공] 드라마 나인을 보고


가끔은 잠을 자다 일어나면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정리되고 보고 느꼈던 것들의 본질적인 것에 가깝게 다가간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이런 일들이 오늘 하루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혜, 세상의 본질을 알아가는 데에는 수많은 현상을 취합하여 여러가지의 법신의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눈으로 보는 색의 세계 역시도 복잡하지 않은 원리들의 조합으로 복잡한 현상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서 그런 법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지성은 따로 사유하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결론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인간의 속성이 원래 이러하였으나 근자에 와서야 그것을 느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나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불행한 과거를 바꾸기 위해 20년전으로 돌아갈수 있는 향을 발견하고 이용하게 되면서 바뀌게 되는 현재의 모습을 주재로 갈등하는 주인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앙에는 사랑이라는 큰 모티베이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방 벽에는 영화 백투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의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감독이 백투터 퓨쳐를 오마주 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 같습니다. back to the future 처럼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바꾸는 일들과 그로 인해서 바뀌어지는 현재의 모습이 복잡하게 그려집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드라마를 보면서도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드라마의 후반부에는 과거의 남자 주인공이 현재의 남자주인공에게 메제지를 보내거나 수정하거나 물건을 보내거나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동적인 현재의 내가 과거로 갔다 오는 모양이 아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메세지나 물건을 보내며 그것은 과거에 사는 나의 행동에 따라서 동적으로 현실이 바뀌어져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극중에서는 "과거의 인물들이 의지를 가지기 시작했다" 라는 어떻게 모순적인 표현을 나타냅니다. 과거의 인물들은 원래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죠.

이 장면을 보면서 평행 우주론을 떠올렸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공존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구나. 과거의 결과로써 현재 (現在) 가, 현재가 지나가고 나면 과거가 되니 현재의 결과는 과거이자 미래이기 도 합니다. 서로 결과이자 원인이되는 모습입니다. 과거는 반복된 현재의 결과물이며 미래도 현재의 영항을 받으므로 결과물이라는 특이한 모습이 됩니다.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가 됩니다. 인과에서 현재가 모든것의 원인이 됨으로 현자들의 말처럼 현재 이상의 것이 없다 봐야 하는 것일까요?  현실에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일까요? 이런 모습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는 그런 시간적인 사유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시간이 없다면 어떤 사고를 하게 될까요? 머리가 점점더 복잡해 지는 것 같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에서 그려진 주인공의 과거에서 일으키는 일은 과거 주인공 입장에서는 현재의 일이고 그렇다면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가 서로 얽혀 영향을 주는 모습이 됩니다. 과거라는 것이 없는 것이죠. 말 그데로 과거, 현재, 미래가 평행하여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이 됩니다. 오직 과거의 현재, 지금 현재, 미래의 현재 이렇게 3가지의 현재만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과거의 현재에게도 더 오래된 "과거의 현재"와 미래라는 지금의 현재 모두가 존재하겠죠.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 세가지가 모두 연결되어 있슴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의 연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렇게 생각만해도 머리아픈 시간의 개념을 버리고 좀더 쉬운 예제를 살펴 봅시다.

닭이 먼저일까요 알이 먼저 일까요?
닭은 알을 낳고 알은 닭이되고.

가장작은 시작전의 단계인 알, 가장 크고 다른 알을 낳을수 있을 만큼 성숙한 닭. 크기와 시간의 측면에서는 닭과 알은 다른 모든 사물들의 이치 처럼 양극에 위치하고 그것이 순환을 합니다. 하지만 알은 닭의 원인이며 결과입니다. 반대로 닭역시도 알의 인과 원인입니다.

어느것이 먼저일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둘은 서로의 형태를 반복하며 바꾸어 나갑니다.  이 모습은 마치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라는 것은 조금더 사유하기 힘든 차원입니다. 닭과 알은 조금더 단순화된 양극의 차원입니다. 밤 과 낮,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양극을 표현합니다. 세상 모든 것과 더불어 시간의 양극성을 인지할려면 조금더 단순화된 것들의 양극성과 성격을 빌어 적용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위 그림은 자장의 vortex 모형이자 Merkaba 의 모습입니다. 아래는 자석이자 지구의 모습입니다.















지구의 윗부분은 N 극으로 자장이 N극을 나와서 무한히 크게 확대가 되어서 자장의 최대치에 이르면 그때 부터 감소하여 S극으로 빨려 듭니다. Merkaba의 모형처럼 빨려들어간 자장은 크기가 0에 가까울정도로 축소하여 N극과 S극의 접경지역에서 공을 이룹니다. 위치라는 차원에서는 인간에게는 단전이 지구에게는 적도 지방이 공을 이루는 부위 입니다. 손을 씻고 물을 흘려 내리면 N극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물이 반시계방향으로 볼텍스를 만들면서 내려가고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그리고 적도 지방에서는 회오리가 생기지 않고 그냥 내려갑니다.

실험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b69HENUZs8&feature=player_embedded



이원성을 크기라는 차원으로 나누자면
작게 보면 작은 자석에서도 크게 보면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더 크게 보면 은하계라는 별들까지도 자석 볼텍스의 모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원자들이나 가장 작은 단위의 원소들이 자성을 띄기 때문에 큰 단위의 물질들도 똑 같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많이 알려진 fractal 이론입니다. 화엄경에도 다즉일 일즉다 라는 표현으로도 나옵니다.

프랙탈 이론
https://mirror.enha.kr/wiki/%ED%94%84%EB%9E%99%ED%83%88%20%EC%9D%B4%EB%A1%A0






닭과 알의 예처럼 그렇다면 N극과 S극은 어떤 관계일까요? N극이 S극의 원인일까요? 결과 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자성이 없는 공의 지역입니다. 한국의 스님들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의 옷을, 태극기는 양극인 붉은 색과 푸른색을, 선도에서는 호흡을 할때는 의식을 단전에 두려고 합니다. 멀카바는 상승과 하강의 지오메트리가 합일을, 천지인은 하늘과 땅이라는 양극의 합일을, 좌도 밀교에서는 남녀라는 양극의 합일을, 불교에서는 좋음도 나쁨도 없는 마음의 합일을, 인도, 티벳, 선도에서는 좌맥과 우맥의 (이다와 핑갈라)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중맥의  (스슘나) 공을 시도합니다.

이렇듯 청정법신으로 불리는 공에는 자성이 없습니다. 이 지역은 N극도 S극도 아니며 극성과 크기라는 측면에서는 사실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금강경에서 수보리에게 세존께서 여러가지 질문을 할때에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나 청정 법신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이신 즉 성격이 없이 이치 그 자체로써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청정법신에서 파생된 보신인 4방불이나 다른 신들은 당연히 자성이 있습니다. 태장계과 금강계가 다르기는 하지만 밀교에서는 법신을 포함한 5방불 혹은 법신을 제외한 사방불 만트라를 그립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금강계에서는 동쪽을 아촉불 혹은 다보여래 혹은 약사여래불, 서쪽은 극락정토 아미타래불, 남쪽은 보생불, 북쪽은 불공성취불 로 구성이 됩니다.
5방불의 자세한 속성은 아래의 자료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각각의 부처님은 인간의 의지 같은 마음의 속성이나 방위 색등 여러 차원으로 대변됩니다.

http://beliveman.blogspot.com/2014/08/1.html?q=%EC%98%A4%EB%B0%A9%EB%B6%88
http://en.m.wikipedia.org/wiki/Five_Wisdom_Buddhas


경주는 남산을 중심으로 이런 밀교의 5방불을 즉 우주의 모양을 도시로 만들어 낼려고 한 흔적이 있습니다.

http://beliveman.blogspot.com/2014/10/blog-post_87.html?q=%EC%98%A4%EB%B0%A9%EB%B6%88

티벳의 관정식에서는 오방불 을 관하는 것부터 관정식에서 천을 던져 본인에 해당하는 부처님을 찾는 과정까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링크의 두개의 글중 첫 번째 글에 잠시 언급이 있고 아랫쪽 두번째 글에 관정식 관련 오방불 내용이 나옵니다)
http://beliveman.blogspot.com/2014/08/blog-post_23.html


제가 사용하는 Android 전화기를 부팅할 때마다 아래에는 잠시나오는 사방불의 붉은색, 녹색, 파란색, 노란색이 원이 멀카바 모형을 묘사한 듯한 모양으로 움직입니다.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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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즈 또한 비슷한 색과 그것을 위치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4방에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4방부처로 부터 현현된 세상을 창을 통해 보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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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는 두 회사가 너무나도 비슷한 컨셉과 색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어쩌면 같은 사상에 뿌리를 둔 회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5방불의 개념을 접어두고 미래 현재 과거로 돌아가 볼까합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의 속성에 이것을 대입하자면 과거현재 미래 역시도 우리가 항시 접하고 느끼는 현상계의 특징인 양극의 개념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알수 있습니다. 각 개념은 서로를 의지하고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공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임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이글을 예전에 적고 방치만 해둔상태에서 화엄경의 글중에서 아래의 내용을 읽고 감복하여 다시 글을 완성하여 올립니다. 저절로 합장과 귀의가 나오며 의식과 무의식에 나투시어 지혜를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말로 할 수가 없이 말 못할 것이 온갖 곳에 가득 차니 온갖 부처 세계 이루 다 말할 수 없구나. 무한의 티끌 세계마다 무한의 부처 세계 헤아릴 수 없고, 부처의 한 털끝에서도 말할 수 없는 정토가 드러나니. 가지가지 장엄함과 그 이름 말할 수 없고…가지 가지 기묘함과 그 아름다움 말할 수 없구나……. 한 순간 삼매에 들어 억겁에 일어나고, 억겁에 들어 한 순간 일어나며…현재에 들어 과거에 일어나고…. 과거에 들어 미래에 일어난다…’   <화엄경 중에서> 


우리가 격는 세상이란 마치 0과1의 비트로 표현하는 컴퓨터나  천부경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1비트 공간이 1비트 밤과 낮이 1비트 좋고 나쁨 1비트 차갑고 뜨겁고 1비트 하늘과 땅 1비트 이렇게 무수한 비트(양극)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안이비설신의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컴퓨터는 우리 세상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기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d.k. 대사의 글을 마지막으로 링크 합니다.


대립되는 양극의 쌍이라는 미혹 .... D.K.

http://theosophy.or.kr/index.php?mid=DKteachings&page=4&document_srl=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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