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적어 보고 싶었던 글입니다.
어쩌면 너무 길어 질 것 같은 두려움에 시작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기능이나 원리를 설명할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매우 어렵게 받아 들이는 것을 봅니다.
반면에 단순한 감정이나 단순한 사실 들 이상을 생각하거나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어쩌면 고된 사회생활로 인해 뇌가 복잡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가는 길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장애로 작용합니다.
현대의 인간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던 어떤 문화를 가졌던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원리인 다르마는 변치 않고 항상 적용됩니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은 현재의 환경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또한 다르마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은 현대 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에게 현실 사회에서도 큰 이득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래에는 다양한 도형들이 나옵니다. 모두 표현되는 차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지만 모두 한가지 다르마 측 창조원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장 근원이기도 하며 일전에 올려드렸던 다큐 멘터리 Official Movie THRIVE What On Earth Will It Take…: 에서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호적인 외계인들이 들판에 저런 그림들을 계속 그려오는 것을 보면 당하기만 하는 인류가 많이 답답해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창조원리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컷나 봅니다. 어쩌면 이글과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다만 글이라는 형태로 적어서 더 인간적인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많은 판단을 해야하고 그 결과가 생존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관계로 우리는 판단을 항상 신중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물건을 사야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끝이 없습니다. 더 정확한 판단기준을 가질때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 입니다.
저 단순한 기하학적인 자장 모형으로 어떻게 더 정확한 정보를 알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정보들은 소위 말하는 현실에 가까운 정보들로 그 양은 무한에 가까운 정보가 존재합니다. 미국에서는 맞는 이야기나 문화가 한국이나 스리랑카에서는 다르게 통용될수도 있다는이야기 입니다. 누군가가 많은 정보를 공부해서 나는 많이 똑똑하며 그런 정보에 기반해서 판단 할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본인이 공부한 정보라는 것은 무한에 가까운 정보와 비교하자면 항상 0에 가깝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디서나 통용되는 현실의 정보라는 것은 찾기 힘듭니다. 마치 나 (분화된) 와 똑 같은 DNA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 불가능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보마저도 위에서 보이는 자장 vortex 모형과 똑 같은 형태로 존재를 합니다.
자동차 라는 차원을 vortex 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자동차라는 것이 더 상위의 차원으로 이동 (합일) 하게되면 탈것, 물건 등으로 올라가고 종국에는 모든 것 이라는 하나의 정점에 귀결됩니다. 반면에 자동차라는 것이 더 하위의 차원으로 이동(분화) 하게 되면 현대차, BMW, 혼다 같은 브랜드로, 그 하위로는 현대 소나타, 아반때 와 같은 하위로 더 하위로는 붉은색 아반때 고급형 아반때와 같은 가장 구체적인 단계의 정보로 까지 내려옵니다. 이런 모형이 자장 vortex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장은 한없이 분화하는 북극과 그것을 정점으로 끌어모으는 남극이 존재합니다. 남녀라는 극으로 비유하자면 한없이 자신의 DNA의 퍼트릴려는 (분화) 북극의 남자와 많은 DNA를 자신으로 합일 시키려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양측모두 다양한 이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군가 "어떤 나라에는 현대차가 있을거야" 라고 한다면 "어떤 나라에는 자동차가 있을거야 " 라고 말한 것 보다 더 틀리기 쉽습니다. 더 상위의 합일된 정보가 더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장의 모형처럼 근원의 합일 점에서 계속 분화를 함으로 수없는 분화를 한 시점에서 어떻다 말하는 것은 당연히 분화된 다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때 이야기 할때 그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다른 행동을 취한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배척하며 때로는 전쟁을 일으키고 죽이려고 합니다. 거기에 이용되는 정보라는 것은 글의 초미에 말씀드렸던 단순한 감정과 기분, 본인이 알고 있는 0%에 가까운 지식이 이용됩니다. 거기에 자신이 잘나야 한다는 에고가 개입되면 진실을 아는 것은 이제 관심사가 아니며 동물이 가진 경쟁의식에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고는 본인의 생각이 맞기를 그리고 본인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하학적인 자장 모양을 그려주는 외계인이 에고에 가득차서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원에 (합일) 가까운 내용일수록 에고의 개입이 불가능 합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대부분 틀린 경우가 많고 자신의 외부 (자연) 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르마에 기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무시하면 좋고 (호불호)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존중하면 좋습니다. 외부라는 것이 에고로 가득찬 인간들의 문화나 법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의 섭리나 원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큰 그림으로 보자면 인간들의 에고나 문화마져도 자연의 법칙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대화에 있어서 에고를 개입시키지 않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대화에서 "나" (분화된 개채) 라는 것을 제외시키고 어떤 원리나 더 합일된 상위의 개념으로 대화를 이동시키면 더 진실한 결론에 도달될 뿐만 아니라 동물적인 호전성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지금 내 기분이 이래, 내 생각이 이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가 누군지알아, 나는 이런게 좋아 이런류들의 말들은 대화의 본질을 흐리고 사람들을 계속 무지와 혼돈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에고가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말들입니다. 보통 합일된 것들은 원리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기하학적 무늬나 원리들은 인간, 문화, 사회를 뛰어 넘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작용을 보고 작용의 원리를 찾는 버릇을 들이게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합일되며 그 합일된 하나로 부터 분화되어 나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남과 나를 하나로 인식하게 되고 우주의 근원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공부나 의식의 작용을 이용한 것이 일전에 말씀 드렸던 갸나 요가입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년도 더 이전에 작곡된 음악이 어떻게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감정을 전달할수 있는 것일까?
음악이 컴퓨터로 표현될때는 매우 적은 데이타로도 표시가 가능합니다. 혹은 악보의 양은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시각이나 영화로 표현될때 그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말은 음악은 더욱 합일된 근원에 가까운 표현 방식 즉 분화가 적게된 표현 방식이라는 의미 입니다.
음악으로 색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 분화된 개념을 더 합일된 표현양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그 근원이 합일된 것에서 나온 관계로 합일 된 것은 (자동차) 는 분화된 것 (현대차, 혼다) 을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은 사실 우리의 현실속에서 딱히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나타낸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표현들에 있어서는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전달도 불가능합니다.
더 합일된 형태인 음악은 500년이 지나서도 현대의 인간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본인에게 맞게 해석되고 분화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개개인에 의해서 다른 구체성을 띄거나, 다른 분화된 매체에 비해서 더 포괄적으로 이해될수 있습니다.
꿈의세상 , 공의 세상 즉 합일된 세상이 더 적은 표현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지금 현실과 똑 같은 모형의 축소판인 관계로 근원적으로는 같으며 표면적으로는 더 함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같습니다.
분화가 시작되는 0지점인 난자에서 더 많이 분화된 인간이였다면, 더 적게 분화된 개, 고양이 처럼 더 넓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년해로를 약속한 인간보다 반려견과 인간의 관계가 더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낮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론이나 디자인의 대가에 이르면 좀더 구체성보다는 합일된 형태의 이론이나 디자인을 내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현의 방식도 더 포괄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여드린 Vortex 처럼 이런 구체성이라는 것은 결국 매우 작은 자장의 또다른 분화된 형태로 인간에게 그렇게 보여지는 것 같지만 사실 크고 작음의 차이일뿐 똑 같은 Vortex의 표현과 다름 없습니다. 결국은 분화=합일 같다는 말입니다. 올려드린 [다큐] Zero Point : Volume II - The Structure of Infinity 에서 프랙탈 이론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분화와 합일도 결국 자장의 중앙지점에 맞닿아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들어놓은 법과 규범으로 사람들을 일률화 할려는 노력과 그 틀을 깨고 무한한 창작을 할려는 예술가들이 그 반대의 위치에서 서로 상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올려드린 과거 현재 미래의 순환구조, 닭과 알의 순환 구조, 우연과 필연, 운명과 자유의지, 남자와 여자 모든 양극에 똑 같이 나타납니다.
[ 이원성, 양극, 인과율, 공] 드라마 나인을 보고
http://beliveman.blogspot.com/2015/02/blog-post.html
그렇다면 다 똑같으니 다 의미 없느냐 그것또한 아닙니다. 연결되어 양극을 순환하는 법칙이 있으며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일전에 올려드린 단공에 빠지기 마시기를 바랍니다.
http://beliveman.blogspot.com/2016/01/blog-post.html
무슨 말을 해도 결국 Vortex 모형의 귀결되다 보니 결국 기존에 했던말의 반복이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예제를 들다보면 세상 모든것이 그 원리에 해당되다 보니 한없이 글이 분화되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지금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많은 것들이 극도로 분화된 형태의 것임을 생각하기시 바랍니다. 어떤 것을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면 구체성에 빠지지 마시고 합일된 근원에서 부터 생각을 파생시키신다면 좀더 자연의 법칙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시기가 쉽고 그것은 본인에게 더 득이 될수 있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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