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의 하위 멘탈체 발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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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의 하위 멘탈체 발달에 대해......

明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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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7 12:30:50 (*.162.8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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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멘탈체 기능의 전형적인 특징은 가치 중립적인 면에 찾을 수 있고, 그러다 보니까 하위 멘탈체 기능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하위 멘탈체가 육체적/감정적 욕망의 도구로서 봉사하기 시작했을 때,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그 예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치닫는 경쟁위주의 교육에서부터, 비즈니스 현장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혹은 신약과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현장에서 하위 멘탈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자리매김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부와 현실적 안락함을 얻기 위해서, 보다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사회적으로 높고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쏟아부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제반 노력들에서 혁혁한 공를 세우는 인간의 속성이 바로 하위 멘탈체입니다. 사고하고, 분석하고, 외우고, 정보를 수집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계산을 잘 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한 마디로 말해서 똑똑하고 능력있는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요소들이 바로 하위 멘탈체의 특징들입니다. 학창시절에는 우등생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잘 나가는 유능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 하위 멘탈체가 발달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 열댓 명의 성형외과 의사들의 사진과 함께 성형을 광고하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 모두 삼십대에서 사십대 초반의 준수한 젊은 의사들이었습니다. 그들 의사들은 하나같이 학창시절에 공부 잘 하는 똑똑한 학생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부를 마치고서 이제는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서 각공 마케팅을 활용하면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육체적인 매력을 희망하는 여성들의 몸에 칼을 대고 꿰매는 일입니다. 그 댓가는 많은 돈입니다.

얼마 전에 국내의 한 게임업체 대표가 수조원대의 갑부의 대열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십대 초의 젊은 기업인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것은, 인터넷 게임인데, 인터넷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PC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폭력성, 선정성, 도박성, 감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시청각 장비들과 효과들.....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임들의 특성입니다. 특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주요 고객들인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한층 크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게임을 만든 업체는 엄청난 돈을 벌고, 나아가서 국가의 경제적 부를 증대시켰습니다.

이번에 북핵실험에 관련해서 한 일간지에서 핵폭탄의 파괴력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현대의 핵폭탄 하나가 갖고 있는 파괴력은 서울시 만한 대도시를 한 순간에 죽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이라고 하니, 북한에서 날린 핵폭탄 하나만으로도 서울은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고, 그러면 남한은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과학적 업적과 성취욕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명예와 물질적 안락이라는 목표 때문에,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의 종용과 국가적-민족적 경쟁의 분위기에서 그런 물건들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의 폐해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짊어져야 할 힘겨운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리하고 세상사에 밝은 사람들은 전국을 돌면서 부동산 거래를 통해서 짧은 시간 동안 거액의 부를 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물가상승과 주택문제와 환경문제는 모든 이들, 특히 많이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통스런 짐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합법적으로 얻은 물질적 만족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이유에서만이라도 그것은 도덕적 범죄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갚아야 할 카르마를 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예들은 모두 하위 멘탈체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경우들입니다. 당연히 하위 멘탈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보니까,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이든 현재이든, 인간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작업들은 앞에서 열거한 부정적 노력들에 못지않은 힘을 갖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문제는, 가치중립적인 하위 멘탈체의 기능을 어떤 목적을 위해 활용하느냐입니다. 영적 진화의 초기에, 특히 멘탈체가 활성화되는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기존에 익숙했던 노선을 따라 멘탈체가 기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과거에 몰두했던 성향들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감정적 욕망 충족과 관련해서 멘탈체의 기능이 활용되는 것인데, 그것을 신지학에서는 카마-마나스(Kama-Manas)라고 합니다. 보편성을 띤 그룹 차원의 목표들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만족을 지향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마나스가 강조되는 시기에 인간의 삶은 물질적으로 극대화되는 상태가 되고, 말 그대로 물질계의 한계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영적 진화의 맥락에서 보면, 하위 멘탈체의 기능이 극대화되는 시점을 분수령으로 해서 상위 멘탈체의 기능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는데, 상위 멘탈체의 기능은 개인성보다는 보편성을, 물질적 만족보다는 정신적 만족과 소위 영적 발견을 지향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육체적-물질적 세계에서 가시적이지 않은 정신적-영적 세계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많은 영적 탐색자들에게서 보여지는 현실세계에 대한 초연함과 관조성은 그런 데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대다수는 아직도 아스트랄체에 극성화되어 있어서, 멘탈체의 기능도 욕망 충족의 도구로서 봉사하기에 바쁜 상황입니다. 물질적-감정적 욕망을 위해 하위 멘탈체가 극도로 활용될 때, 인간은 현실세계에서 많은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그대로 그가 속해 있는 가족과 사회, 국가 모두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물질적 만족을 극대화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 기업이나 국가경영의 대표들 역시 그것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부처께서는 그런 세상을 불타고 있는 세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세상이 욕망의 불속에서 타고 있고, 인간들은 그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무관하다고 말씀하셨고, 그저 거쳐가는 다리와 같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다리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을 어리석다 하셨습니다.

오컬트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악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의 영적 진화에 역행하거나 지연시키는 모든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물질적 욕망과 육체적 욕망충족을 목표로 하는 모든 행위가 악일 수 밖에 없고, 그런 악한 행위들은 그대로 악한 카르마가 되어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이 반드시 치러야 할 카르마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카르마를 갚아야 하는 당위성은 어떤 초월적 실재에 의해서 지시되거나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력의 법칙과 친화력의 법칙에 의해서, 동질적 성향을 갖고 있는 행위자에게 그와 동질적인 성향들이 끌릴 수 밖에 없다는 원리 때문에, 고스란히 그 사람의 몫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모든 행위들이 자신과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냉정한 사실이 카르마 법칙의 엄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판단함으로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뜻이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적 인과응보 사상은 말 그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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