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영혼의 힐러, 맥도날드 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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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Highlands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나는 일찍이 7살 때부터 많은 심령 체험들을 했고,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물질계만큼이나 분명했다. 그 세계는 단 한 개의 베일에 의해 우리 세계와 분리돼 있을 뿐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할 뿐, 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나의 심령체험들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곤 했다. 그러나 두 분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의 말이 너무 척척 들어맞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 학교에 갔을 때 몇 권의 책이 어찌어찌해서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은 고대 요가에 대한 책들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깜짝 놀랄 만큼 나는 그 내용을 분명하게 알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책들도 내게 말해주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건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실 그 책들은 내게 관념만을 주었다. 그러나 관념은 사물 그 자체는 아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었다.

생명이라는 단어 또는 생명에 대한 관념은 생명이 아니다. 신이라는 단어는 신이 아니다. 모든 설교가와 교사들은 당신에게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에게 그것에 대한 관념만을 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상이한 관념들이 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는 종교, 그룹, 국가 속에 그토록 많은 분리와 투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마스터 예수의 얼굴을 본 것은 7살 무렵이었다. 그것은 책이나 모조품에서 보았던 그림의 반영이 아니라 생명으로 약동하는 살아있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당신이나 나처럼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 사건이 내게 미친 영향은 너무도 컸다. 부모님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우유에 술과 달걀을 섞고는 세게 휘저어 먹였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음식이었다. 의사는 내 심장이 제 위치에서 2인치 밀려났다고 말했다.

이 침대 생활은 눈물이 날 정도로 지겨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 뛰어 놀아라!"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죽음이라는 건 없으며 물질계 외에도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확신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의사는 내가 바로 그 순간부터 백 퍼센트 완벽하게 건강해지자 놀라워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는 아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중간에서 멈추었다가 발끝으로 사뿐하게 땅에 내려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로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요가 책에서 그런 현상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요기(역주: Yogi 요가수행자)가 어떻게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지 읽었다. 나는 정확한 방법은 몰랐지만 유사한 것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겁 없이 많은 기행들을 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무척 걱정하였다. 부모님은 내가 여느 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에 대해 걱정하셨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겨울밤은 내게 있어 큰 기쁨이었다. 고풍스런 우리 집에서 나는 커다란 통나무 불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재킷을 의자 뒤에 걸쳐 놓고 항상 오른 발을 불 앞 난간에 얹고는 했다. 소년 시절 나는 15살 때까지 항상 스코틀랜드의 전통 옷인 편안한 킬트를 입었다. 나는 종종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차림으로 하일랜드에서 열리는 놀이에 참가했다. 벽난로 선반 위에는 나의 선조들이 컬로든무어를 포함, 많은 전쟁에서 가지고 싸웠던 커다란 클레이모어(역주: 옛날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이 쓰던 쌍날의 큰 칼)가 걸려 있었다. 벽난로의 양 측면에는 맥도날드 가문이 로우랜드와 영국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사용한 칼과 총들이 장식돼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맥도날드 가문의 많은 모험담을 들려주는 것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는 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모험담들도 들려주고는 했다. 아버지는 많은 외국 땅들을 여행했었다. 우리는 반복해서 계속 그 이야기들을 듣고는 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싫증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내 안에서 지식욕과 더불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방랑벽을 일깨워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 열정은 더욱 더 강하게 자랐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머나 먼 땅으로 비행하는 날개를 활짝 펴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의학을 공부했지만 나는 그것에 흥미가 없었다. 나는 생명이 유일한 살아있는 힘이라고 알고 있는데, 의학은 어떤 죽은 것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학문적 바탕은 나중에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나의 치유의 사역에 도움이 되었다. 기적적인 치유의 결과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책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요기를 만나 위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바란 목표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인도를 수차례 방문했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배를 타고 페르시아 만에서 바스라로 갔다. 거기서 나는 티그리스 강을 따라 올라가 사막을 건너 유프라테스로 갔다. 나는 아랍인들과 함께 지내며 그림 같은 모스크와 첨탑들이 있는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를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옛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바빌론과 페르시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고대 유적지들을 탐사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는 하일랜드 연대에 들어가 장교로 임관되었고,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생명을 구한 공로로 전공십자훈장과 외국 훈장을 받았다. 목숨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네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 다시 인도, 중국, 일본을 여행했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간 나는 거기서 고대 캄보디아 문명 유적지들을 탐사했다. 이 문명은 존재의 증거로 웅장한 유물들을 남기고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음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는 캐나다를 동에서 서,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였고, 차를 타고 미국을 6천 마일이상 누볐고, 멕시코와 남아메리카를 방문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관통하며 여행한 나는 로데시아에 있는 짐바브웨의 고대 유적지들을 탐사했다. 로데시아에는 4천 년 전에 문명이 존재했던 것으로 일컬어진다. 그곳과 관련하여 라이더 하가드는 <동굴의 여왕> <솔로몬의 동굴> 등의 책을 썼다. 브라질에도 유사한 유적지들이 발견되었다. 내 생각에 이들 유적의 유사성은 공통된 어떤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진다. 장차 우리 고고학자들이 이 고대 문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새로운 조명을 던져줄 것이다.

나는 리빙스턴과 스탠리의 발자취를 따라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 상류의 잠베시 강을 탐사했다. 나는 고대 이집트의 유적을 연구했고 유럽 곳곳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남태평양 섬들도 여행했다. 나는 지구의 구석구석과 7대양을 여행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치유를 하고 가르쳤다. 덕분에 나는 4대륙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내 삶의 가장 큰 모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의 지붕, 금단의 신비로운 땅, 티베트로의 여행이 그것이었다.

나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나는 이미 내 목표를 이루는 희망을 포기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영적 존재가 나타나 내게 아프리카로 갈 것과 거기서 인도로 다시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존재는 내가 거쳐야 할 루트를 꼼꼼히 말해 주었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넘을 수 있도록 직접 나를 인도해 줄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이 나의 기억에 되살아난다. 나는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훗날 티베트에서 막 돌아온 뒤,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첫 번째 강연을 하고 있었다. 약 30분 쯤 강연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사람들이 좌석에 앉은 채였고 문들은 닫혀 있었다. 치숌 부인과 안내원들은 바깥 로비에 서 있었다.

그때였다. 로비에 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말하라. 맡겨진 사역을 하는 걸 보고 내가 무척 기뻐한다고."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다. 나는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체험을 말하곤 했다. 불과 며칠 전에 나는 몬트리올에 사는 한 숙녀로부터 편지를 한 장 받았다. 당시 그녀는 그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하였다. 그녀는 편지에서 그 사건을 언급하였다.)

내가 탄 인찬가 호가 후글리 강을 거슬러 올라가 캘커타에 닿을 때 그 심장이 쿵쾅거리는 흥분감을 당신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남아프리카의 더반에서 이 배에 승선했다.

엄청난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인도 여행이었지만 이번은 뭔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영체로만 보고 육신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기대감에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배가 선창가로 가까이 다가가자 수백 명의 막일꾼들이 지르는 고함소리 때문에 내가 주위 사람과 나누는 얘기 소리가 묻혀버렸다. 나는 서둘러 뭍으로 갔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구걸을 위해 내민 수십 개의 손들에 둘러싸였다. 그러나 수차례 인도에 왔던 터라 나는 그들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얘기할 수도 있었다.

나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낙심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기 아닐까? 나는 의아해졌다. 배에 탔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떠난 후에야 나는 짐을 챙겨 캘커타 지구 맞은편 초링기에 위치한 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나의 오랜 친구인 스와미 요가난다와 스와미 라마나, 그리고 내가 아는 그 밖의 요기들을 방문했다. 나는 그들과 나의 문제를 의논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포기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히말라야를 넘도록 조언해 주었다. 나는 내게 영체로 나타나 말해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북 뱅갈의 실리구리로 가는 열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실리구리는 히말라야 방향으로 가는 열차의 최종 기착지였다.

택시 기사는 천사같이 생긴 시크인이었다. 그는 나를 초짜 여행객으로 여겨 정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그의 장난질을 알아채고는 그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택시가 마침내 기차역에 도착하자 그가 말했다. "5루피입니다, 선생님!" 내가 그에게 2루피를 건넸다. 그래도 그것은 정상적인 요금보다도 더 많은 액수였다. 그리고는 내가 인도어로 말했다. "이런 못된 짓을 해도 신고하지 않은 걸 운 좋게 생각해!"

그때 그의 얼굴 표정이란! 천사 같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한 마디 불평도 못한 채 뭐 씹은 표정을 한 채 횅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날 밤 나는 인도 주둔군에 있을 때 나와 같이 있던 친구인 영국인 대령을 방문했다. 그는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는 위대한 지혜와 지식을 깊이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와 함께 보디협회로 갔다. 보디 협회는 인도의 교수, 의사, 요기 등이 모인 특별한 인도 클럽이었다. 나의 친구인 캘커다 대학의 샤스트라 교수가 고대 산스크리트어에 대해 강연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산스크리트어 권위자로 여겨졌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는 서구의 어떤 문명보다 훨씬 앞서 있던 고대인도 문화의 언어이다.

잠시 후 내가 참석한 걸 알게 되자, 교수의 강연이 끝나고 나서 바로 연단으로 초대받았다. 회원들은 내게 그간의 여행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었다. 클럽에는 스리 오로빈도(그에 대해서는 나의 책 <영적, 정신적 치유>에서 기술하였다.), 스와미 요가난다, 위대한 인도 과학자인 스와미 라마나, 인도의 위대한 시인 타고르, 위대한 간디 등을 포함한 많은 인도의 지도적 지성들이 있었다.

나의 친구인 대령이 내게 말했다. "나는 이곳 인도에 와 있는 우리 영국인들 중 우월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아주 싫어. 그런 태도 때문에 그들은 생명의 보다 높은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불행하게도 무지한 그들은 인도를 떠나면 훨씬 더 우월감에 부풀어 오르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미숙하고 타락한 정신상태만을 보여줄 뿐이지.

세상에서 위대한 것은 겸손이야. 지혜가 열리기 시작하면 사람은 겸손해지게 돼. 그리고 지혜를 얻었을 때 사람은 더욱 겸손해지게 되지. 다음 세대의 성품 안에는 이 위대함의 씨앗이 싹터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영국인은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될 거야."

나는 그의 의견에 동감했다. 올바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틀 후 나는 실리구리행 기차를 타고 캘커타를 떠났다. 당신이 인도에서 기차를 타면 객차 문을 안에서 잠거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객실에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기 때문이다. 객실을 예약해서 그 사실을 공지하는 안내문을 밖에 붙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열차에 탄 인도인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단 그들이 객실로 밀고 들어오면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리구리에 도착했다. 그곳은 북 뱅갈행 기차의 마지막 종점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산악 열차가 내 눈에 띠었다. 그 열차를 타면 히말라야를 향해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열차를 바꿔 타려고 하는데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둘러보니 한 나병 환자가 더럽고 거친 삼베로 칭칭 감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당시에 나병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3피트 이내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나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1루피를 주었다. 그때 한 인도 경찰이 다가오더니 그를 곤봉으로 때렸다. 나는 그에게 항의하며 말했다. "당신은 바로 자기 자신을 때리고 있는 거요. 알겠소?" 놀란 얼굴의 그를 두고 나는 자리를 떴다. 그가 혼자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오늘날 나병자들은 거의 자유로이 다니는 것이 허락되지만, 과거에는 붙들려 나병자촌에 수용되었다. 때문에 많은 나병자들이 몸을 숨겼고, 오히려 병을 퍼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찰무르가 오일과 여타의 새로운 약물들의 혼합물을 투여하여 나병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그 약품은 나병의 근절에 매우 성공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작은 산악 열차의 객실은 내 어깨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작은 엔진에는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모든 객실은 빨간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객실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앉아 있어도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그렇게 작은 엔진에 십여 량이나 되는 열차를 끌고 아주 가파른 경사를 올라갈 힘이 있다는 게 거의 믿기지 않았다.

이걸 통해 나는 우리가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엔진 그 자체에 힘이 없듯이 우리의 육체 그 자체에는 어떤 힘도 없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내 여행의 다음 단계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뺑뺑 원을 그리며 고가교 위아래를 천천히 움직여 산허리 위로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지그재그와 원을 그리며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5천 피트 높이의 길리콜라에서 멈추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렸다.

기차는 저 멀리 네팔의 주도主都 다르질링까지 갔다. 그곳은 거대한 히말라야의 발치에 위치해 있다. 플랫폼에는 키가 4피트도 되지 않는 땅딸한 고산족 여인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 위에 가죽 끈을 두른 채 어깨와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잽싸게 앞으로 다가와 무거운 짐들 아래로 가죽 끈을 넣은 뒤 성냥갑처럼 들어올렸다.

나는 그들의 힘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가만 보니 그것은 요령이었다. 가죽 끈이 이마와 어깨를 거쳐 당겨져, 짐의 무게가 등 뒤에서 받혀졌다. 나는 어떤 여자가 피아노 한 대를 그런 식으로 칼림퐁에서 다르질링까지 약 30마일 거리를 운반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길리콜라에서 만나기로 해 둔 차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는 지그재그를 그리며 산을 올라 마침내 칼림퐁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속의 이 마을은 인도, 시킴 그리고 티베트 사이의 무역로의 출발지였다. 이곳으로부터 좁은 도로와 길을 따라 모든 물품들이 운반되었다. 어떤 길은 폭이 몇 피트 되지 않았다.

칼림퐁에서 나는 인도인, 티베트인, 시킴인, 네팔인, 부탄인 등 온갖 종족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중에는 백인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캘커타의 습한 무더위를 피해 산 공기를 마시며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는 네팔, 시킴, 부탄의 산악 국가들이 가로놓여 있다. 그래서 칼림퐁은 특히 무역로의 출발지로서 다르질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곳이 되었다.

거기서 나는 캐러밴을 모았다. 통역 한 명, 심부름꾼 한 명, 무역로에 출몰하는 모든 산적들의 사정에 밝은 보디가드 한 명. 나는 티베트 조랑말들을 빌렸다. 내 것 한 마리, 통역 것 한 마리, 보디가드 것 한 마리, 인도인 심부름꾼 것 한 마리. 그리고 짐을 나를 노새 두 마리를 빌리고 세 명의 짐꾼을 고용했다.

티베트를 오가는 모든 물품들은 나귀, 노새 그리고 짐꾼들에 의해 운반된다. 물품들은 도로와 철로를 통해 칼림퐁에서 캘커타로 운송되고, 거기서 여타의 목적지들로 다시 운반된다. 다르질링에서 온 차는 산악철로를 통해 실리구리로 옮겨지고, 거기서 철도로 캘커타로 운송되고, 거기서 다시 배로 세계 각지로 운반된다.

칼림퐁에서 나는 나와 동명인 맥도날드씨를 만났다. 그는 히말라얀 호텔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절반은 티베트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한 때 티베트의 야퉁에서 영국 무역상 에이전트로 일했었고 거기서 티베트 여성과 결혼했다.

나는 그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티베트어, 힌두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되도록 티베트어를 많이 배워두었다. 나는 이미 힌두어를 할 수 있어서, 그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티베트 입국 승인이 날 때까지 칼림퐁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 동안, 내가 만나게 될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티베트 저 멀리까지 가야만 할 지 모른다고 여겼다. 나는 그를 캘커타에서도 만나지 못했고, 칼림퐁에 도착해서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가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내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계속 가야만 해."

칼림퐁에서 3일째 되는 어느 날, 나는 머물고 있던 곳에서 나와 마을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라마승복보다 좀 더 짙은 자색 법의를 걸친 사람이 눈에 띠었다. 나는 시선을 그에게서 뗄 수 없었다. 그만큼 그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가 내게 곧장 다가오더니 완벽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네가 왔구나." 나는 뒤로 멈칫 물러났다. 말이 입에서 얼른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곳 칼림퐁에서 그를 만나리라고 미처 예기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착한 날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오른 팔로 내 왼쪽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마치 전기가 충전된 느낌이었다. 그러고 는 그가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너와 함께 있어 왔어. 하지만 넌 그걸 몰랐지." 나는 그의 말뜻이 이해되었다. 그의 말이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울려왔다.

이윽고 그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죽 늘어놓았다. 내가 했던 일, 내가 해야만 했던 일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 - 비록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그가 설명했지만 - 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나의 삶은 펼쳐진 책과 같았다. 내가 그동안 어디 어디에 있었는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나는 철학과 고급 형이상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 동안 계속 떠벌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나도 모른다. 시간관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아주 조용히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나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내가 그의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정도라고. 이윽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누군가 큰 망치로 나를 쳐도 그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아들아, 내일 또 보자. 여행을 떠날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어."

그리고는 그가 완전히 멍해 있는 나를 두고는 몸을 돌려 길을 따라 내려가 버렸다. 정말이지 나는 완전히 멍 해 있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깊이 곱씹어 보았다. 짧은 한 마디 말이 나를 완전히 변화시켜버렸던 것이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내 마음을 이루고 있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살아있는 현재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말, 관념, 이미지들일 뿐이었다. 이 모든 세월동안 나는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인가! 그의 몇 마디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마침내 내가 그토록 찾아왔던 것을 발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그가 아침 일찍 만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왔다. 그가 말했다. "아들아, 너는 진리에 대한 첫 번째 레슨을 받았어.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해. 너는 속박돼 있어. 하지만 너는 이제 자유의 첫 발걸음을 떼었어."

"당신이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오, 아니야." 그가 말했다.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내 말은 아무 소용도 없었을 거야." 그러고는 그가 다시 말했다. "일주일 안으로 너의 여권이 나올 거야. 그러면 그때 여기를 떠나도록 하자. 티스타 강변을 따라 정글을 통과해, 시킴을 거쳐 강톡으로 가자꾸나. 정글 경험도 해보는 것이 좋을 거야. 강톡에서 나툴라령嶺을 거쳐 티베트의 첫 마을인 야퉁으로 들어가자. 차후 일정은 그 때가서 내가 더 안내해 줄게."

"칼림퐁에서 그 주는 커다란 기쁨의 시간이었다.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출발 전까지 나는 그를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게 있어서 명상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명상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명상법을 아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야. 동양의 방식이든, 서양의 방식이든, 어떤 체계를 따르는 것은 명상이 아니야. 만일 네가 하나의 체계를 따른다면 너는 너의 마음을 그 특정한 패턴에 따라 조형하게 돼. 하지만 그것은 네가 피하고 싶어 하는 거지."

내가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가르치는 걸 보면 터무니없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가 말했다. "맞아. 정말 맞는 말이야. 너도 그런 넌센스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사람들 중의 하나야."

나는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맞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했다. "네가 너의 마음을 조건화시킨다면 너는 자유를 얻을 수 없어. 명상은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어야만 해. 자유로운 마음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 너의 마음의 과정을 이해할 때 너는 위대한 자유를 발견할 수 있어. 너는 앞으로 몇 달 후면 그렇게 될 거야."

(몇 달 후라고! 나는 몇 달씩이나 체류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그와 작별하게 된 것은 정말로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몇 개월을 더 히말라야 너머에서 체류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가 말을 멈추고는 나의 상념을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단번에 그가 나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가 미소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떤 체계의 훈련을 통해서는 자유를 얻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너는 전보다 더 구속되기 때문이지. 진정한 명상은 마음을 초월한 것을 발견하는 거야. 특정한 시스템은 마음의 이해력을 방해해.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자기최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자기 최면은 우리를 구속하고 파괴하지."

그러고 나서 내가 나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는 동안 그가 말을 멈추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이제 비로소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그래." 그가 계속 말했다. "자유 속에서만 진정한 창조성이 존재해. 마음속에서 온갖 신조, 형식, 훈련 등이 떨어져나가야만 해. 어떤 종류의 조건화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해. 그랬을 때 너는 타인의 신조나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의 창조성을 통해 창조할 수 있어. 타인의 신조나 관념을 통해서는 너는 모방자밖에 되지 않아.

사고의 전체 과정을 의식하게 되면 너는 네 자신을 알 수 있기 시작해. 너를 자유로 이끄는 것이 바로 그거야. 어떤 신조나 관념을 통해서는 너는 그것을 초월한 것을 결코 알 수 없어. 신조와 관념의 본질을 인식할 때 너는 그것들을 초월할 수 있어. 그리고 거기서 너는 실재를 발견할 수 있어. 실재는 관념이나 신조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는 현재, 생명이야."

그렇다. 나의 마음은 깨끗이 청소되고 있었다. 나의 관념, 신조, 철학 등이 씻겨 나가고 있었다. 정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그때 그가 말하였다.

"감사는 너 자신과 실재 사이의 분리에 대한 믿음의 결과 생기는 현상이야. 하지만 분리라고 하는 것은 없어. 그것은 분리, 신조, 관념 등에 갇혀 있는 마음의 환영에 불과해."

그가 계속 말했다. "나는 네가 구석에서 명상하며 앉아 있는 것을 보아왔어. 너는 너의 마음을 하나의 이미지 또는 하나의 관념에 집중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어. 그러나 너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 너의 마음속에 다른 생각들이 꾸역꾸역 솟아올라와 갈등을 야기 시키곤 했지.

그렇지 않니? 갈등 속에서 마음은 결코 고요해질 수 없어! 갈등이 그쳐야만 고요가 찾아오게 되지. 고요는 결코 갈등을 통해 오지 않아. 네가 갈등을 이해했을 때만 그 갈등은 그치게 돼. 고요는 갈등 없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상태야!

"너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이 소모적인 투쟁에 쏟아 부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어. 그렇지? 너는 심상들을 만들어냈어. 하지만 그것은 환영에 불과해. 그것은 자유로 이끄는 명상이 아니야. 그런 방식으로는 마음을 초월한 창조적 존재를 발견할 수 없어.

"오!" 나는 깊은 숨을 쉬었다. 내가 찾아왔던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의 말이 마음속에서 울려왔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나는 진리에 대한 관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관념을 통해 실재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말했다. "실재는 마음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야. 실재는 지금 존재하는 거야. 너는 실재를 만들 수 없어. 그것은 너의 마음이 자유로울 때 현전하게 돼. 그랬을 때 너는 네가 진리이고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돼."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해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자유 속에서 생명의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어떻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정의할 수 없는 실제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니었다.

창조성은 내면에 있었다. 지금 나는 그것이 스스로 표현되도록 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신조, 체계, 관념으로부터 더 많이 해방되면 될수록 창조성은 더욱 커졌다. 이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다니! 그것은 환희 자체였다. 나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친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그것이 다야."

"예." 내가 말했다. "나의 명상은 단지 이해되지 않은 나의 사적인 기억과 체험들로 가득한 일종의 자기고립에 불과했습니다. 나의 마음은 조건 지어진 상태를 이해하기까지는 그 조건화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그래." 그가 말했다. "너는 특정한 단어들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너의 마음을 억지로 어떤 하나의 자기최면 상태로 만들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 강제된 상태의 마음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 진정한 명상은 생명의 진정한 표현이야. 그런 방법을 통해서는 너의 마음을 무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야. 그 상태가 끝나면 너의 조건화는 더욱 강화되게 되지. 그렇지 않니?"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왜 이 사실을 몰랐을까?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가 나의 상념을 읽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맞아." 그가 계속 말했다. "너는 반드시 자아의 방식, 사고의 방식을 알아야만 해. 너는 그것들을 초연하게 자각할 수 있어야만 해. 너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너 자신을, 너의 말을 바라보아야만 해. 마치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이 말이야. 그 상태 속에 너의 조건화에 대한 반향이 있어. 너는 그것을 어떤 비난이나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관찰해야만 해.

이런 방식으로 너는 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 그리고 네가 두려움, 비난, 비평, 저항 등을 통해 어떻게 너 자신을 조건화시켜왔는지 알 수 있어.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아의 방식이기 때문이야. 이 자유 속에 갈등이나 환영은 존재하지 않아. 이 과정 속에 진정함 명상이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탐구를 통해서는 진리인 자유가 현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자유는 욕망, 선입견, 조건, 환영 등과 더불어 존재하는 자아의 전체 구조를 이해함을 통해서만이 옵니다. 이것들을 식별하고 이해할 때 그것들은 녹아 사라지고 실재, 진아眞我만이 남게 됩니다."

"그래, 맞아." 그가 대답했다. "명상은 진아를 발견하는 거야. 진아는 다른 진아들과 분리돼 있지 않아. 그것은 전체이고 완전이야. 그것에는 어떤 종류의 조건화도 없어.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명상이야.

"너의 조건화된 사고가 자아 속에 그 시종始終을 가지고 있고 속박된 마음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고요가 현현하게 돼. 이 고요는 강제로 만들어지거나 최면의 결과가 아니야. 그것은 시간에 속하지도 않고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아. 영원은 그 고요 속에서 현시돼. 이 고요가 바로 영원 그 자체야.

"이 고요 속에 창조의 상태가 존재해. 이것은 마스터가 인식하는 고요야. 너도 그 고요를 알게 될 거야. 그것은 무시간적 존재이고 실재야. 그것은 기억이나 체험에 의해 조건화 되지 않고 갈등도 존재하지 않아.

"네가 어떻게 네 자신을 조건화시켰는지 이해하지 않고 억지로 명상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에 불과해. 그것은 더 많은 환영을 만들어낼 뿐이야. 너의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는 것, 그리고 너의 속박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야. 네가 너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명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네가 무엇을 투사하든지 그것은 너 자신의 조건화에 따른 거야. 그것은 결코 실재가 아니야."

나는 이제 실재의 위대함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지닌 강력한 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겸허함 속에서 신은 그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현존이 동일한 느낌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묘사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일어서더니 나를 축복해 주었다. 그는 나의 사랑이 그에게 와 닿는 것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신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내게 오지 못해."

그가 떠난 후 나는 말없이 고요히 있었다. 마치 위대하고 강력한 힘이 강림한 느낌이었다. 아직도 여진이 남아 있었다. 내가 더 많은 자유를 얻음에 따라 그 힘도 더욱 커갈 거라는 걸 나는 알았다.

히말라야를 넘는 나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 날 아침 나는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야퉁에서 나를 만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나의 저술 속에서 언급하지 말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그 이유를 당신은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출처] 1부 1장|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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