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의 고승--상월새봉(1687~1767)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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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은 새봉, 호는 상월이며 자는 혼원(混元), 성씨는 손씨(孫氏)로 순천사람이다. 숙종 13년(1687)에 태어나 11세에 선암사에 들어가 극준장노(極俊長老)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15세에 머리를 깍고 이듬해 세진당(洗塵堂) 문신대사(文信大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8세에 월저도안(月渚道安)의 고제(高弟) 설암(雪岩)에게 수학을 하고 도가 이미 통하여 의발(衣鉢)을 전해 받고 이어서, 벽허(碧虛), 남악(南岳), 환성(喚醒), 연화(蓮花) 등 제산(諸山)의 노장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그들로부터 모두 인가를 받았다. 무용수연(無用秀演)이 한번 보고 감탄하기를 “지안(志安)이후 제일인야(第一人也)”라고 하였다.

 상월새봉은 둥근 얼굴에 큰 귀였으며 그 목소리가 홍종(洪鍾)과 같았으며 앉음새는 니소(泥塑)와 같이 흔들림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야(子夜)에 반드시 북두에 절을 하였으며 명료한 강론, 군더더기 없는 풀이, 마음가짐으로 실천, 지혜로의 입증으로 가르침을 삼았다.
또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 하여 깨달음의 길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했으며 재주가 높다하여 계율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지도하였다. 더욱이 옛 사람들의 주석과 해석에 얽매이는 것을 특히 걱정하여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금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문자가 가르치는 참 뜻을 가려내 본래의 미미를 알도록 지도하였다.

그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만약 스스로 되돌아보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비록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외운다 해도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상월새봉은 영조 10년(1734) 봄과 동왕 30년(1754)에 각각 선암사에서 대대적인 화엄강회(華嚴講會)를 열었다. 선암사에 「해주록(海珠錄)」1권이 전해졌는데 거기에는 1754년의 화엄강회에 참석한 명단이 적혀있는데 대중이 무려 1287명이 참석하였고, 기간 또한 3월 16일 시작하여 4월 3일 마쳤다. 영조 24년(1748)에 선교양종도총섭국일도대선사에 임명되었다.
영조 43년(1776) 10월 상월새봉은 몸에 가벼운 질병증세가 나타났는데, 한 게송(偈頌)을 읊조리기를 “물은 흘러서 바다로 돌아가고(水流元歸海) 달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도다(月落離天)”라고 태연하게 순세(順世)하였는데 나이가 81세였다. 다비하여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나 탁준(卓濬)이 유골을 받들고 관서의 묘향산에 가서 초제(醮祭)를 지내려고 할 때 구멍난 구슬 3개가 출현하니 오도산(悟道山)에 그 중 하나를 모시고 나머지 둘은 선암사와 대둔사에 각각 안치하였다.
그의 비는 선암사와 대둔사에 세워졌고 진영이 선암사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문집으로는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1권이 전해진다.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

《霜月大師詩集》은 새봉(璽封 1687∼1767)의 문집이다.
새봉의 자는 혼원(混遠), 호는 상월(霜月)이며, 설암추봉(雪岩秋鵬)의 法을 이었다.

《상월대사시집》은 1권1책으로, 1780년경 간행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문집 명칭처럼 모두가 詩이다. 5언절구·6언절구·7언절구·5언율시·7언율시 등 74수의 詩가 있다.
序는 신순민(申舜民 1768)과 원중봉(元重峰 1773)이, 跋은 門人 桰登寤가 썼다(1780).
卷首에는 증오가 쓴 행적과 이발(李渤) 및 채제공(蔡濟恭)이 쓴 비명(碑銘), 증오가 쓴 음기(陰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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