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서 귀하신 몸 된 '대변'
[동아일보]
똥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변비로 고생할 때는 그렇게 보고 싶다가도 막상 쾌변(?)한 뒤엔 고약한 꼴에 바로 치워버린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대변의 몸값이 껑충 뛰었다. 대변이 인간 질병의 대부분과 관련되며, 심지어 회춘의 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학계는 주목한다. ‘대변은행’을 만들어 보관하고, 좋은 똥을 가진 사람은 ‘슈퍼맨’으로 추앙받는다. 도대체 똥이 뭐길래?
○ 건강한 대변이 보약이 되는 시대
장내 미생물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현미경 이미지. 위키미디어 제공 |
최근 젊은 대변이 회춘의 명약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년 물고기의 대변을 먹은 중년 물고기의 수명이 41% 늘었다는 내용이다. 중년 물고기에 대한 이 가혹한 실험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진행해 생물학 분야 공개학술 데이터베이스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3월 27일 공개했다.
연구진은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을 제거한 중년 킬리피시에 젊은 킬리피시의 장내 구성물을 이식해 대변이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회춘의 열쇠는 대변 속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다. 패트릭 스미스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동물은 노화하며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유해균들이 장내 생태계를 압도하게 된다”며 “젊은 대변을 이식해 장 환경을 재구성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변 1g에 100조 개…대변 속에 우주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변 1g에는 약 1000종류의 마이크로바이옴이 1000억 개에서 100조 개가량 산다.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을 모두 합친 무게는 1∼1.5kg으로 간 무게와 비슷하다. 대변이 마이크로바이옴을 등에 업고 귀한 존재로 변모한 건 최근 일이다.
2014년 학술지 ‘셀’에 실린 연구에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이 쥐의 비만을 예방하거나 유발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뚱뚱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뚱뚱해졌고, 마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날씬해졌기 때문이다. 셀 제공 |
제프리 고든 미국 워싱턴대 교수팀이 2006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기폭제가 됐다. 당시 연구진은 항생제를 먹여 마이크로바이옴을 모두 없앤 쥐에 뚱뚱한 쥐의 대변을 이식하면 뚱뚱해지고, 마른 쥐의 대변을 이식하면 날씬해짐을 확인했다.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쥐에게 주입한 후속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뚱뚱한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주입한 쥐는 뚱뚱해지고, 마른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주입하면 날씬해졌다. 대변이 비만 예방 약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연구는 2014년 ‘셀’에 실렸다.
이후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이 생명공학 논문 검색 사이트 ‘펍메드(Pubmed)’를 분석한 결과, 2006년 332편이던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은 2016년 20배 이상인 7434편으로 늘었다.
김병찬 생명연 대사제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한 해에 7000편이 넘는 논문이 쏟아져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90%가 넘는 미지의 세계”라며 “비만,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을 비롯해 암, 아토피, 뇌질환, 정신질환 등 대부분의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관관계가 규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 “신선한 대변에 3만 원”…똥이 돈이 되는 세상
2014년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신선한 대변을 제공하면 3만 원 상품권을 준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고광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쓸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 올린 공고였다. ‘6개월 이내 어떤 항생제도 투여한 적 없는 20∼40세 건강한 성인의 대변’이라는 요구 조건을 걸었는데, 하루 만에 모집 인원 30명이 채워졌다.
고 교수처럼 건강한 대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움직임은 곳곳에 생겼다. 2013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대변은행 ‘오픈바이옴(Openbiome)’은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연간 1000만 원의 금전적 혜택도 준다. 수집된 대변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토대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거나, 의학치료인 ‘대변 이식’에 쓰인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6월 대변 이식이 정식 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변 이식은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라며 “항생제를 오남용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적으며 꾸준히 운동을 한 좋은 대변을 가진 사람이 ‘슈퍼 기증자’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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