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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올린것 같으나 찾을 길이 없어서 다시 올립니다
[수행기] 회상과 발원(수행기1)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48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도 남과 똑같은 느낌과 감정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보이는 것은 텅빈 하늘과 거친 세상 뿐이었으며 나는 그 속에서 홀로
남겨진 동물처럼 아무런 의미없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한 가지 남다른 것이 있었다면 아픈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에 항상
마음이 아렸다는 것이다.
점차 세상의 모습과 삶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뜨면서 나의 마음은 세상의
무의미와 혼돈, 이웃의 고통과 절망에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어떤 이는 저렇게
호사하며 사는데 어떤 이는 왜 그렇게 불행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해 보였고 그것은 나의 마음속에 깊은 의문이 되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그들의 아픔을 달래고 모든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홀로 서울에 올라와 고학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너무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고 자신과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집착과 욕망에
매달려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 진리의 빛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정의와 공익에 대한 사명감도
없었다. 오직 출세와 보신을 위해 조직과 상사에 충성하며 허망한 지위와
명예를 거머쥐고 한 세월을 마감할 뿐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러한 세상의 욕망과 집착의 허망함을 보게 되었고 세상이
갈망하는 부와 지위와 명예는 나에게서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갔다.
그리하여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인간이 거친 세상을 겪으며 이상하게도
세상의 위선과 탐욕을 혐오하게 되었고 자신의 아만과 집착을 부끄러이
여기면서 인간의 진실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당시 나에게는 이 세상에 과연 인간이 믿고 의지할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가,
무언가 영원한 의미와 신성함이 존재하는가가 삶 전체를 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만약 절대적 진리와 인간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덕목에 대한 모든
관념은 허위에 불과하며, 완전한 신성과 진리, 인간의 가치와 의미가 존재한다면
세상사람들은 선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양심과 진리를 지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늘에는 텅 빈 허공밖에 없었으며 신성한 의미나
진리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동물적인 양육강식만이 지배했고 혼돈과 무의미, 부정 부패, 폭력과
부조리가 난무했다. 신의 자애로운 손길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바른 이치대로 살아가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빛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진리의 갈증을 풀기 위해 배운 현대학문은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젊은
나를 불가지론자로 몰고 갔다. 그것은 그저 남과 무난히 어울려 살아가는 계산
빠른 소시민을 양산하는 것일 뿐 진리에 대한 어떠한 희망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몇 해를 도서관에 머물며 많은 학문을 섭렵했고 인류사에 나타난 지혜와 고전을
섭렵했지만 그것은 객관적 지식일 뿐 내 영혼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과는
무관했다.
심각한 문제는 현대학문의 잘못된 가르침이 인간이 의지하고 살아갈 삶의 근거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할 수 있는 것만 다루는 현대학문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을 대상으로 한정한 결과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외면하였던
것이다.
항상 자신을 생각하는 이성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람의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교육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평생동안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가치와 의미를
박탈해 버렸을 때 삶 전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며 동물적인 생존밖에는
남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성한 존재인 인간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만드는 현대문명의
야만성 속에서 어떻게 인간에게 고귀한 근거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나의 최대과제였다.
그리하여 진리와 인간이라는 내 인생 최고의 관심사에 대한 생명을 건 탐구와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생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과 신앙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우주에 신이 있으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신성이 있다고 외치는 종교적 주장은
불확실한 믿음에 근거한 편협한 논리에 불과한 것이었고, 철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은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해 보면 볼 수록 인간을 혼돈과 판단 정지에
빠뜨리고 있었다.
종교계에서는 신의 존재성을 여러 가지 증거로 제시했지만 결국 논리를 비약하여
오직 신만이 모든 진리의 근원이라고 강변할 뿐이었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이제 지식은 더 이상 해답이 되지 못했다.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논리적 지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체험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는 것은 오랜 방황으로 심신이
모두 피폐해진 뒤였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고뇌와 지적 방황으로 빛이 사라진 깊은 어둠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나는 생명을 건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생명과 영혼에 대한 깨달음은 오직 생명과 영혼 자체로 직접 부딪쳐 체험하는 것
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릴적부터 인연 있던 기독교에 들어가 진심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기도했다.
밤마다 산에 올라가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적을 보여주시면 모든
의문을 풀고 당신에게 귀의하겠다고 맹세했으나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증거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지식으로 신성한 근원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 결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느님은 진심으로 삶을 회개하는 자에게 다가오는 진리의 빛임을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신과 더욱 멀어졌고 인간이란
세상에 홀로 내버려진 존재임을 더욱 맹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라는 평가가 있는 불교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불교는 신비를 지니고 엄청난 전통의 힘으로 나를 압도하였다. 그 교리는 너무나
방대하여 현실적 지식만을 탐구하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하였다.
불교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팔만대장경과 수행록을 탐구하고 참선을
수행하면서 불교의 진수에 대해 접근해 갔다.
그러나 불교는 논리는 논리대로 수행은 수행대로 근본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논리적인 모순은 우주의 근본 불성이 본래 순원무잡한데 어찌하여 삼천대천
세계가 전변하여 나타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즉 무명의 근원에 관한 문제로서 만약 무명이 불성에서 생겨난다면 불성이
깨끗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만약 무명이 불성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면 우주의
근원에 불성 이외의 다른 근원이 존재한다는 모순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교의 존재긍정과 이어진 문제로, 만약 세상이 생겨나지 않아야 할
무명의 소산이라면 더 이상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불교는 스스로
허무주의 종교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행에 있어서도 불교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해탈법이라 부르는 참선은 가만히 앉아 의지와 집중력만으로 자신의 업을
없애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방법으로, 모든 것은 인연법에 의해 이루어지며
팔정도에 의해 바른 원인을 쌓아야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부처님의
종지와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은 선승들이 수많이 나왔다는 말은 있는데 세상 속에 남아있는
증거는 없으며 세상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수행자들이 세상에 밝은 빛이 되지 못하고 계속
산속에 은둔해 있거나 현실에 폐를 끼치는 신놀음을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이 있으면 그 주위가 환히 밝아 오는 것처럼 깨달음의 빛이 있으면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더욱 어두워져 가는 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어떤 종교도
생명의 빛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계속되는 정신적인 방황과 수행 체험으로 나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방대한 종교서적을 파고 들면 들수록 진리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수행과 기도는 싱싱한 나의 육체를 더욱 침침한 기운으로 병들어갔다. 진리는
보이지 않고 신성의 기미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으며 심신은 더욱 무기력해져
갔다.
그리하여 대답 없는 하늘 대신에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존재하지 않으리라 거의
확실했던 동양에서 말해온 기의 존재여부에 대해 실험적인 기분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만약 물질적 존재가 아닌 기를 느끼게 되면 이 세상에는 단순한 물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의미와 진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십년 전부터 형식적으로 해오던 단전호흡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현대학문에 젖은 나로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에서 철저한 실증적·
과학적 사고로 단전호흡의 비밀에 대해 검증하고자 도전했던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나는 경이의 순간과 함께 기를 체험하기 시작했고 생명의 신비가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전호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자 기이한 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전호흡 도중에 꼬리뼈 부근에서 마치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미세한 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마치 의식이 강화되어 물질의 형태로 나타난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경련이나 착각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것이 현대인의
사고속에 존재하지 않는 기라는 현상임을 알았을 때 나의 심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것은 곧 인간이 무의미하게 던져져 있는 동물적 존재가 아니며 신성한 의미를
지닌 고귀한 존재로서, 이 우주에 신성한 뜻과 진리가 깃들어 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동양의 지혜가 단순히 관념이 아니며 생명의 실체를 통찰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깊이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그 이후 나의 삶은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맞게 되었고 수많은 선도경전에
기재된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인체의 신비와 영혼세계, 깨달음과의 만남,
진리의 실상 등 일반인들이 현실 속에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진기한
구도의 역정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난 때부터 중요한 사실만을 간단히 요약
정리함으로써 뜻있는 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증험이 있었지만 세세한 현상은 생략하였다.
(인연있는 분들은 메일을 주시면 별도의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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