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유명한 영화를 늦으막히 보게되었습니다.

비교적 오컬트적인 요소는 많이 배제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생활고로 힘들지만 단란하게 반지하게 살고있는 가난한 가정과 그 가족들을 묘사합니다. 피자박스를 접고 피자점원으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장면, 옆집 WIFI를 써야하는 상황등 돈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들이 영화 전면에 묘사가 됩니다..

그러던 중 아들의 친구(부잣집에 좋은 배경과 학력을 가진)가 할아버지가 주신 것이라면서 돌을 선물로 주게됩니다. 이 돌은 반지의 제왕에서의 반지처럼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아들의 친구는 할아버지께서 이 돌은 돈과 재물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돌과 함께 온가족이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문서를 위조하고 거짓말을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일꾼들을 모함하고 내쫓기 위해서 부자집 주인 부부를 속입니다. 이는 생존을 위해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서로를 해 할수 밖에 없는 구조를 설명한 것 같습니다. 영화 중간에서 필연적으로 기존 가정부 부부와  기택네 둘중 하나만 생존할수 있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영화 말미의 파티장면에서도 나오지만 어떻게 부자의 사람들은 금방 서로 만나서 조화롭게 지내는지 아들은 의아해 합니다.

기정의 대사에서도 부자들은 거짓말 하고 속일 필요도 없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돌이 부를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사람들을 해고시키고 기만하고 속이고 죽이는 행위를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기택의 가정에게는 말이죠

폭우는 마치 이러한 부정적인 에너지와 같아서 점점더 아래로 내려가 낮은 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도 파괴하게 됩니다.

기택은 수재민이 되어 강당에서 잠을 자게됩니다. 희망을 잃어  버린 기택의 대사가 나옵니다
"계획이 없어야해 어차피 있어봐야 되는데로 되는것도 없는데 없으면 잘못될 일도 없지 않은가? 사람을 죽이던 나라를 팔아먹던 상관없다 이거아냐"

포스트 모던을 비판하는듯한 이 대사는
기존의 무자비한 생위를 해오던 기득권층을 비아냥대는 말같습니다.

이런 기생생활을 하던 기택가족은 결국 지하에서 지내던 가정부 아줌마의 남편에 의해서 파국을 맞이하고 기택이 부잣집 지하에서 기생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 곧곧에서 양극과 연기 그리고 상징성있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신줏단지 처럼 받들어지는 막내아들은 텐트 속에들어가서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자 부부는 이런 아들의 명령에 꼼짝하지 못합니다. 삼각형 텐트가 일루미나티의 상징같고 거기의 명령을 받는 자본세력 같은 느낌입니다. 영화중간에 부잣집 아들은 가정부 남편의 모르스 부호를 읽기도 합니다.



수해를 입어서 구제용 옷가지를 나눠입는 모습과 최고급 의류를 고르는 장면이 양극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나옵니다.


한쪽에서는 죽어가는 가정부 아줌마의 구토가

반대편 기택의 반지하의 변기로 튀어나오는 연기법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또한 가정부 남편이 살기위해 모르스 부호를 머리에 피가나도록 쳐댈때 부자집 등도 깜빡이지만 동시에 수재가난 반지하의 형광등도 거기에 맞춰 깜빡 거립니다. 이도 연기법을 나타낸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기정도 반쯤 물에 잠긴 집에서 제일 먼저 구해낸 것은 바로 돈 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에 집착할수 밖에 없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들은 수해의 상황에서도 돈을 가져다준다는 이 돌을 꼭 챙겨서 옵니다. 끊기 힘든 욕망을 나타내는 것 같고. 아들도 이돌이 자신을 따라 다닌다라고 기택에게 말합니다.


결국 돈을 주었으니 내가 시키는데로 하라고 급박하는 집주인


욕망의 상징인 돌에 의해서 죽을 뻔한  아들


저런 비피린내 나는 처절한 생존의 싸움 이면에는 바로크 음악과 멋진 파티로써 양극을 나타냅니다.


기절한 본인의 아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부자 남편

세뇌되었기 때문에 부자남편에게 죽어가면서로 리스펙을 외치는 가정부 남편


기택과 가정부 남편은 모두 가난해서 지하와 반지하게 살게되고 거기서 오는 곰팡이냄새를 처음엔 부자 남편이 싫어하고 나중에는 부자 부인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죽고 절재절명의 순간에도 이러한 가난의냄새를 싫어하는 모습에 송강호는 이 부자 사장을 죽이게됩니다.


하필이면 독일산 자동차의 로고가 나오고


하필이면 독일산 고가의 칼과 로고가 나오며

하필이면 독일산 소세지가 꽂혀있는 칼에 죽습니다.

이러한 양극화와 잔인한 현실의 원인이 외세에 있다는 의미라도 나타내고 싶은 것이였을까요?

나중에 집이팔리고 새로 이사온 사람들역시 독일 사람이였습니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을 위해서 돌아온 것은 바로 법과 정죄 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미 바꿔버린 아들

하필이면 기정의 옆에 부처님상이 있습니다.

웃는 아들과우는 엄마의 양극


새로 이사 들어온 독일 가족


가정부 남편의 음식을 챙기거나 가정부의 시신을 매장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인간적인 면을 느낄수 있다. 생존을 위해 잔인해졌어야 했을뿐 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가 부자집 지하에서 보낸 메세지를 받고 아빠의 생존에 기뻐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답장을 쓰고 잠이 든다. 아들은 꿈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돈을 벌어서 아버지가 당당히 나와서 자신들과 살게 되는 꿈을꾼다.


그꿈의 시작에는 돌(욕망)을 물속에 넣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나 반지하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에 집착하면 결국 그렇게 되지도 또한 서로가 서로를 해하는사회가 없어지지도 않는것을 모른채 아들은 아직도 돌 과 돈에 집착하며 끊임없는 반복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몇가지 과도한 추측을 하자면 
처음 부자 부부는 마치 일본? 그 아래에서 서로는 헐뜯으며 살아야했던 우리민족? 그들을  칼로죽여 몰아 내었지만 그는 정작 지하에서 숨어지내는 신세가 되었고 새롭게 들어온 주인은 독일인? 지금의 상황을 묘사?

그것에게 주문을 내리는 것은 삼각형 모양의 일루미나티?

하층민은 생존과 돈에 미쳐 서로 날뛰고 있고
부자부부는 마약과 성적괘락, 향락과 사치에 미쳐 있고
삼각텐트안의 아들은 아무생각이 없다.

없는 사람은 없는데로 있는 사람은 있는데로 육근에 취해있는 현실을 잘 코믹하게 묘사한 작품.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기 때문에 기생충이기도 하고 기택네 가정이 부잣집의 집과 음식과 돈에 기생해서 살아감으로 또 한 기생충이기도 함. 차원에 따라서 기생충이 서로 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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