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란 무엇인가? 7 (달라이라마) - 금강승(金剛乘), 밀교, 티벳불교 특징

밀교란 무엇인가? 7 (달라이라마) - 금강승(金剛乘), 밀교, 티벳불교 특징

사임당|11.02.23|77목록댓글 0가가

밀교란 무엇인가? 7 (달라이라마) - 금강승(金剛乘), 밀교, 티벳불교 특징

 

 

(1) 밀교의 특징

 

 

금강승은 밀교(密敎)의 다른 이름이다. 밀교를 비밀에 붙이고 공개적으로 설하지 않은 이유는 일반 대중들의 근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밀교에서는 대승불교에 있지 않은 여러 가지 법들을 설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질병이나 재앙을 소멸하는 식법(息法), 자량을 증장하는 증익법(增益法), 힘과 위력을 기르는 회애(懷愛), 마구니를 항복받는 주법(誅法)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 이러한 법을 수행하게 되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해를 입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대승경전의 기본적인 교리를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 밀교를 수행하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를 그르쳐 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거나, 수행을 잘못할 우려가 있거나, 그 수행을 감당할 만큼 마음이 성숙되어 있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개하여 전수하는 것을 철저히 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밀종의 수행자는 수행할 자질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수행법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다.

 

 

(2) 만트라 

 

 

이제 한자문화권에서 흔히 진언(眞言)이라 번역하는 만트라(mantra)에 대해 살펴보자. '만트라'는 마음을 보호한다는 뜻으로, 우리의 마음을 용렬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만트라의 '만(慢)'이란 마음이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육식(六識)을 가리킨다. 곧 하열하고 범속한 사람들의 마음을 보호하여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 만(慢)과 관련하여 밀종 수행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① 수행자는 자신이 진정한 본존이라고 자부하는 불만(佛慢)에 안주해야 한다. '스스로가 수승하고 묘한 부처'라고 생각하는 불만(佛慢)은 수행자로 하여금 세속의 용렬한 아만(我慢)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② 본존의 상을 선명하게 관상하며 수행해야 한다. 수승한 본존상을 관상함으로써 수행자로 하여금 용렬한 현상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본존의 상을 관하여 모든 분별 망상의 생각들을 수승한 경계로 바꾸면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색상(色相)들을 다 본존의 화신으로 볼수 있게 되고, 귀에 닿는 소리들이 모두 본존의 만트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수행자는 범속한 색경계에 혼동되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내가 부처라는 자부심(佛慢)을 견고하게 일으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보호하는 만트라 수행법과 그 법을 수지하여 닦는 삼마야행(三摩耶行)을 이름하여 진언행(眞言行), 곧 밀종 수해이라 하는 것이다.

만트라(Mantra)의 '만'은 진여지(眞如智)요, '트라'는 '트라야(Traya)'에서 온 것으로, '중생들의 비심(悲心)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밀종의 네 가지 부파의 공통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무상요가부의 독특한 지견에 따르면, '중생들의 비심을 보호하는 것'을 대락(大樂)의 지혜로 보고 있다. 이러한 설은 범어의 '수카(Sukha)'에서 온 것인데, '수카'가 '안락. 견고한 지복'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중생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그들을 구하고자 하는 비심(悲心)을 일으키면, 그 기쁨과 편안함이 잠시 중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상요가부에서는 '비(悲)'를 '카루나(Karuna)'라고 하는데, 이는 정액을 방출했을 때 생기는 최고의 희열에서 따온 말이다. 곧 '대락(Mahasukha)의 지혜'로서, 이것이 요의진언(了義眞言)이요, 곧 요의본존(了義本存)인 것이다.

'중생들의 비심을 보호한다'는 것을 밀교의 네 부파의 공통되는 의미로 해석하면, '공성을 증득하여 얻은 지혜와 대비심이 하나가 된 것'을 뜻한다. 혹은 '지혜와 방편이 하나인 것'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지혜가 방편을 버리지 않고, 방편 또한 지혜를 저버리지 않음을 가리킨다. 

 

 

(3) 금강승은 과승(果乘)이다 

 

 

승(乘)에는 '인승(因乘)'과 '과승(果乘)'이 있다. 금강승은 인승과 과승의 길을 다 구족하고 있지만, 흔히 과승이라고 일컬어 진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청정한 상(相)을 관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기 때문이다.

① 깨달음을 성취한 뒤 부처의 지위에서 안주하는 찰토청정(刹土淸淨)
② 본존의 원만한 상호를 의지하여 나타나는 원만상과 찰토를 의지한 지혜법신에 의해 생겨난 신상청정(身相淸淨)
③ 불과를 구족함으로써 받게 되는 수승하고 묘한 수용청정(受用淸淨)
④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짓는 수승한 부처의 행에서 나오는 사업청정(事業淸淨)

금강승에서 의지하여 수행하는 이상의 네 가지 청정한 상은 바로 과위의 사지(四支)를 의존하여 관상하게 되는 것이다.

무상요가부의 설법에 따르면, 과(果)는 진언의 방편인 대락지혜(大樂智慧)요, 인(因)은 대승의 방편으로 중관 등의 경론에서 밝힌 공성(空性)의 지혜이다. 이 두 가지가 화합되어 둘이 아닌 것을 공락불이(共樂不二)라고 한다. 칼라차크라인 '시륜금강(時輪金剛)'에 의하면 인(因)은 바로 공(空)이다. 그러나 이 공이란 '자성이 있다'는 집착을 파한 것이 아니라 극도로 미세한 색법(色法)을 없앤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공색신(空色身)'이라 하는데, 색법의 극히 미세한 형상이나 색법으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공색신은 인(因)으로, 쌍신교합상을 하고 있는 부모불인 본존의 상호와 부처님의 모든 원만함과 장엄함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위없는 불변의 대락(大樂)은 과(果)인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합하여 인과승(因果乘)이라고 한다. 

유학위(有學位)의 수행자들은 가장 수승한 공색(空色)과 위없는 불변의 대락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방편으로 삼으며, 무학위(無學位)에서는 부처의 마음으로 공색과 불변의 대락을 하나가 되게끔하여 한결같이 나아간다. 이렇게 수승한 공색신과 무상불변의 대락을 하나로 수행하는 쌍운(雙運)의 법은 무상요가부 가운데서도 특히 시륜금강의 견해를 따른 것으로, 하삼부인 사부. 행부. 요가부의 해석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삼부에서는 불변 대락의 방편을 인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륜금강에서는 육지(六支)의 수행법을 구족하고 있다.

 ① 별섭지(別攝支, Pratyahara)
 ② 정려지(靜慮支, Dhyana)
 ③ 명력지(命力支, Pranayama)
 ④ 인지지(認持支, Grahana)
 ⑤ 수념지(隨念支, Anusmrti)
 ⑥ 삼마지지(三摩地支, Samadhi)

이 중 다섯 번째 단계인 수념지에서 비로소 공색신이 성취되며, 공색신을 의지하여 여섯 번째의 삼마지지가 생겨나고, 더 나아가 수승한 불변의 대락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하삼부에서는 앞 쪽의 오지(五支)의 인(因)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제육지인 삼마지를 구족할 수가 없다.

 

 

(4) 둘이 아닌 방편과 지혜

 

 

'방편과 지혜가 다르지 않다'는 이론은 일체종지를 증득하고 윤회에서 해탈하게 하는 구경의 선과(善果)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방편과 지혜를 함께 닦는 길을 수행하여야 구경의 선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승과 과승의 공통적인 수행법이다. 바라밀다승에서 '방편과 지혜가 다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방편이 지혜를 버리지 않고, 지혜가 방편을 버리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보리심이 드러날 때는 공성을 증득하는 마음이 잠시 일어나지 않고, 공성을 증득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보리심이 잠시 드러나지 않는다.

바라밀다승에 따르면, 공성의 선정 가운데 안주하여 보시 등의 육바라밀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반대로 오로지 육바라밀행만 닦고 공관(空觀)을 수행하지 않는 것도 완전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바라밀다승의 수행자들은 반드시 마음이 공성과 계합한 연후에 '모든 법이 환(幻)과 같다'는

관조력을 잃지 않고 보시. 지계. 인욕 등의 육바라밀행을 닦아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이익케 하고자 하는 원력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성을 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바라밀다승의 '둘이 아닌 방편과 지혜'이다.

금강승에서는 이 방편과 지혜가 둘이 아니라는 뜻을 더 깊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금강승에서는 방편과 지혜의 다른 두 가지 법을 서로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한 가지 법으로 섭수된다고 보는 것이다. 금강승에 따르면 방편과 지혜가 하나의 심식(心識)속에서 다른 분자로써 성취된다고 주장하며, 육바라밀속에 방편과 지혜가 다 섭수하여 있다고 한다.

방편과 지혜가 하나가 되는 것을 '금강살타의 삼매'라고 하는데, 이 삼매가 본존의 몸과 자성이 공하다는 지혜를 증득하여 한 마음 속에서 나타나는 방편의 삼들을 화합하여 완전히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깊은 공성과 드러나는 방편의 상이 다름이 없게 되는 수행이 금강살타 삼매법으로, 금강의 지위에 있는 무학위의 수행자에게는 나가고자 하는 목표요, 유학위의 수행자에게는 나가고자 하는 방편이 된다. 또한 이미 불과(不果)를 성취한 이에게는 그 과가 현공불이(顯空不二)요 방편과 지혜가 합일된 색신과 법신이 된다.

 

 

(5) 밀교와 삼학(三學)

 

 

금강승은 달리 '방편승(Upayayana)'이라고도 한다. 바라밀다승보다 많은 선교 방편들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승을 '과승(果乘, Phalayana)'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과로써 도를 삼고, 현전하는 사편정(四偏淨: 찰토청정. 신상청정. 수용청정. 사업청정)의 과위를 직접 수행하기 때문이다. 금강승은 밀승(密乘, Guhyayana)이라 칭하기도 한다. 반드시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강승은 '지명장(持明藏, Vidhyadhara pitaka)'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명행자(持明行者, idhyadhara)의 수행 덕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밀교부를 경. 율. 논 삼장(三藏)밖의 제4장(第四藏)으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삼장 안에 섭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밀교부는 경장(經藏)안에 넣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밀교부 안에 있는 대부분의 교리가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가운데 정학(定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율장은 주로 계학을 설하였고, 경장은 주로 정학을 설하였으며, 논장에서는 주로 혜학을 설하였다. 밀교부에는 주로 삼매를 성취하는 특별한 방편을 많이 내포하고 있으므로, 방편 법문을 주로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는 밀교부를 경장의 일부에 포함시켜도 될 것이다. 종카파 대사도 『밀종도차제광론』에서 이 이론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밀교부의 특별하고 심오한 법은 삼마지(三摩地)에서 비롯된다. 계학에서는 현교와 밀교가 약간의 차이가 있고, 공성을 증득하는 혜식(慧識)을 품류(品類)로 나누어 볼 때 혜학도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현교와 밀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정학(定學)의 지(止). 관(觀) 쌍운법(雙運法)에서 구별할 수가 있다."

바라밀다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불과를 증득하려면 반드시 삼대겁(三大劫)이 거린다고 한다. 처음 '자량도(資糧道)'에서 '가행도(加行道)'에 이르는데 일대겁이 걸리고, 보살 십지(十地) 중 앞의 칠지(七地)까지 이르는데 다시 일대겁이 걸리며, 팔지(八地), 구지(九地), 십지(十地)까지 삼지(三地)를 올라가는 데에 다시 일대겁 동안 자랑을 쌓아야 하다고 한다. 앞의 칠지(七地)까지는 아직 자성이 있다(自性有)는 지견을 다 끊지 못하였다고 하여 '유구지(有垢地)'라 하고, 마지막 삼지(三地)는 이미 자성이 있다는 견해가 다 끊어져 없어진 상태라고 하여 무구지(無垢地)'라고 한다.

그런데 밀교 하삼부(下三部)의 '유상요가(有相瑜伽)'와 '무상요가(無相瑜伽)' 속의 '지관쌍운(止觀雙運)' 수행법에 의지하면 빠른 시간 안에 공성(空性)을 관하는 지혜가 생겨난다. 따라서 첫 번째 일대겁 동안의 자량공덕을 단시간 안에 충분히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보살의 초지(初地)부터 불과(佛果)에 이르는 수행의 길은 밀교의 하삼부(下三部)와 바라밀다승이 거의 비슷하다.

 

 

(6) 사지염송과 삼정려 

 

 

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는 먼저 일체 유정들을 이익케 하겠다는 무상(無上) 보리심을 발하고 나서 비로소 밀교의 진언 수행에 들어가야 한다. 밀교의 가장 아래 단계인 사부(事部: 짜리야 탄트라)의 수행자는 당연히 먼저 '사지염송(四支念誦)'을 익혀야 하는데, '사지염송'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자신을 본존으로 관상하기 전에 먼저 공성(空性)을 관한다. 자신과 본존불이 둘 다 자성이 없으나 연기법으로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자신과 본존불이 자성이 없는 공성으로 볼 때 둘이 아니요 차별이 없음을 관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공성에 관한 확고한 지견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

② 공성의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내 눈앞에 계신 본존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다고 관상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자신이 관상으로 나툰 본존이 아니라 진짜 본존불과 둘이 아니라는 불만(佛慢)을 견고히 일으킨다.

③ 본존불의 가슴에 있는 월륜(月輪) 위에 존자자를 중심으로 만트라의 글자들이 싸고 있다고 관상하는데, 그 글자와 색깔 등에 마음을 집중하여 선명하게 관한다.

④ 본존의 상과 월륜과 종자자, 혹은 만트라에 대해 번갈아 주의를 집중하면서,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의 소리 크기로 빠르고 느리지 않은 똑같은 속도로 만트라를 한다.『소실지경(蘇悉地經)』에 의하면, 이때 하는 만트라의 숫자는 15자 이하의 만트라일 경우에는 각 글자마다 10만 번씩 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옴마니반메훔'은 여섯 글자이므로 60만번을 한다. 만약 글자 수가 32자인 진언이면 한 글자당 3만 번씩 하고, 그 이상일 경우에는 각 글자당 1만 번을 기준으로 한다.

사지염송 다음에는 삼매를 닦는 방편인 삼정려(三靜慮)를 닦는다. 삼정려는 다음과 같다.

① 주화정려(住火靜慮)로, 열난(熱暖) 삼마지라고도 한다. 자신이 관상하는 본존의 가슴에 촛불과 같은 불꽃이 만트라 글씨에 싸여 있다고 관상한다. 이때 자신은 불꽃에 마음을 모은다. 이렇게 하면 가슴에 기분 좋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산란치 않고 고요해진다. 만약 혼침이 온다고 느껴질 때는 만트라의소리를 관하기 시작하는데, 소리는 내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염송하는 소리를 듣는 듯이 관상한다.

② 주성정련(住聲靜慮)이다. 본존의 상이나 불꽃 등을 다 버리고 오로지 고요한 가운데 만트라의 소리만을 사유하면서 삼매를 닦는 것이다.

③ 주성후시여해탈정려(住聲後施予解脫靜慮)이다. 주화정려와 주성정려의 단계를 다 떠나, 마음과 만트라의 소리까지도 다 잊은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한 삼매에 드는 것을 말한다. 삼매의 힘은 불과 소리를 이용한 선정상태에서 증장되지만, 소리가 다 섭수된 후에 갖게 되는 이 해탈정려의 상태에서 지관쌍운(止觀雙運)의 삼매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관을 성취하는 금강승의 방편은 바라밀다승에서 설한 방편에 비하여 빠르다.밀교의 사부(四部)가운데 두 번째인 행부(行部: 끄리야 탄트라)에도, 이 단계의 삼매를 성취하는 특별한 방편이 있으며, 유가부와 무상요가부에서는 지관쌍운을 성취하는 더욱 더 깊은 방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라밀다승과 금강승은 계학(戒學)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특히 정학(定學)에서 그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출처 : 달라이라마라의 밀교란 무엇인가 / 달라이라마 저, 석설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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