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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만보] 장이 멍청한 소화기관이라고? 천만에! 슈퍼컴퓨터 같다니까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 2017.07.19. 11: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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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사진·박해윤 기자]
뇌와 장의 은밀한 대화 : 더 커넥션
에머런 메이어 지음/ 김보은 옮김/ 브레인월드/ 348쪽/ 1만9000원
장(腸)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어떤가. 위장, 소장, 대장으로 나뉘어 음식을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한 뒤 찌꺼기를 내보내는 몸속 기관? 그렇다면 당신은 급속도로 발전한 장에 관한 최신 과학이론에 무지한 셈이다.
또한 대장에 집중 분포하는 대장균, 유산균 같은 장내 미생물을 그저 생존을 위해 음식물을 분해해 먹는 기생 생물 정도로 생각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우리가 몰랐던 장과 장내 미생물의 놀라운 기능에 대해 들려준다. 먼저 장의 제원부터 알아보자.
장의 고유한 신경세포 수는 5000만~1억 개로 척수의 신경세포와 맞먹는다. 장은 넓게 펼치면 표면적이 농구장만 하고, 흔히 우울증 치료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의 95%를 보유한 거대한 저장고다. 더구나 입에서만 느끼는 것으로 아는 쓴맛, 단맛, 차가움, 뜨거움, 매콤한 맛, 부드러운 맛 등을 파악하는 수천 개의 감지기도 들어 있다. 장 내벽에 어마어마하게 분포하는 내분비세포는 호르몬을 20개 이상 함유하고 있다 신호를 받으면 혈액 속으로 분비한다. 이 내분비세포는 생식샘, 갑상샘, 뇌하수체, 부신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분비기관을 합친 것보다 많다.
얼핏 훑어봐도 심상치 않은 스펙을 가진 장은 우리 몸속에서 과연 어떤 기능을 할까. 스펙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장에 있는 5000만 개 이상의 신경세포는 뇌의 도움 없이 소화 과정을 완벽히 수행해낸다. 그뿐 아니라 소화 과정에서 생기는 무수히 많은 생체신호를 모두 뇌에 보낸다. 여기에 수많은 감지기와 내분비세포를 통해 계속해서 몸의 상태를 뇌에게 알려준다. 이는 장이 신체 어떤 기관 못지않게 민감하고 복잡한 감각기관임을 증명한다. 미주신경을 타고 뇌로 가는 신호 정보의 90%를 장이 담당하며, 나머지 10%만 뇌가 장에게 내려보내는 것이다. 장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화에만 열중하는 기관이 아니라, 뇌를 깨우고 경고를 하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생체리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을'제2의 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앞서 말한 장내 미생물. 한 사람의 장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 수는 지구에 사는 인구보다 10만 배나 많다. 1000여 종의 미생물은 700만 개가량의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주로 대장에 사는 이들은 막중한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 성분을 소화하고, 물질대사를 조절하며, 위험한 화학물질을 해독시키고, 인간의 면역체계를 교육시키며, 위험한 병원체의 성장을 막는다.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미생물은 장내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원으로, 장은 이들이 물어온 정보를 적절한 방식으로 뇌에 전달한다.
장내 미생물은 매우 다양하고 대부분 유익한 균이지만, 항생제 복용 등으로 균형이 깨지면 병원체가 활성화돼 만성 장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어릴 적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지 못하면 우울증, 자폐증,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고, 늙어서 다양하지 못하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덧붙여 특정 미생물의 존재가 적극성 등 성격과 흔히 육감이라 부르는 직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이 책의 결론은 장과 장내 미생물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 및 균형 잡힌 삶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곡물, 과일, 채소, 발효식품 등을 많이 먹고 붉은 고기와 동물성 지방, 첨가제가 들어간 식품을 적게 먹으라는 평범한 상식에 확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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