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적 개념을 적용한 불교해석(3) --- 금강승(밀교) 불교 수행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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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적 개념을 적용한 불교해석(3) --- 금강승(밀교) 불교 수행체계

明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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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13:41:57 (*.33.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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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티벳불교 관심 인구가 꾸준하게 늘고 있는데, 사실상 티벳불교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자료가 여전히 부족한 현실입니다. 마치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지막 신비전통의 근원지인 양 신비화되어서 동경의 대상이 된 것이 티벳불교입니다. 많은 서양인들의 영적 탐색의 최종적 목적지가 티벳불교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티벳불교의 속모습이 본격적으로 바깥 세상에 공개된 것은 고작해야 이십여 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제 2의 부처로 불리면서, 사실상 밀교의 부처로 숭배되는 파드마삼바바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쵸빼마”라는 곳에 가면, 파드마삼바바가 수행했다는 동굴이 높은 산 정상에 있는데, 그 동굴 주위로 둑빠 카규파에서 관리하는 무문관 수행처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무문관이라고 하지만, 튀어나온 암벽에 천막을 쳐서 바람을 막거나, 벽돌을 쌓아서 벽을 만들거나, 초막처럼 지은 누더기 같은 수행처들이 성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모두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 오직 수행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티벳불교를 밀교 혹은 탄트라불교라고 할 때,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런 수행자들에게서 나옵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밀라레빠 같은 스승의 길을 따르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서 티벳불교, 특히 금강승이라고 불리는 밀교에 관심을 가졌다가도, 관심을 갖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신비하고 심오한 가르침과 행법이 있는 수행법임을 알게 됩니다. 금강승 전통에서 늘상 말하는 “한 생에 해탈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말이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한 일본불교학자는 밀교적인 전통을 정통불교라고 할 수 없는 비속한 수행체계이고, 난잡하게 힌두적 탄트라와 토속샤마니즘이 뒤섞인 저속한 불교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학자가 금강승 수행체계에 입문해서 관정을 받고 직접적인 수행을 조금이라고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강승 수행을 다른 말로 만달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달라로 상징화된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안에 얼마나 심오한 오컬트적 의미가 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DK대사는 저서에서 탄트리즘에 대한 관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삼갈 것을 권하고 있지만, 실제로 DK 대사의 저서 곳곳에서 금강승적인 수행법들의 단편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금강승 불교 행법의 핵심은 “관상(visualization)”인데, DK 대사는 관상이 영적 수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DK대사가 경계하라고 했던 것은, 말 그대로 서양인들이 호기심으로 접근하기 쉬운 비속한 탄트리즘이었지, 티벳불교 내에서 보존되어 온 수행체계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지학이라고 하면, 먼저 “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와 같은 개념들을 떠올리는데, 실상 에텔체가 무엇인지 아스트랄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개념적으로 정립하기도 어렵고, 실제로 그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거기에다가 차크라와 같은 개념들이 부가되면, 더욱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이론적인 이해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영적 진화가 무엇인지, 그것이 특정 차크라나 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이야말로 오컬트적인 연구 영역이라면, 결국 구체적인 수행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실질적인 지각능력과 경험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영적 진화는 항상 특정한 지각능력의 발현과 계발을 수반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영적 진화는 결코 추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들의 변화와 차크라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반대로, 체들과 차크라의 변화가 특정한 영적 경험과 지각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실질적인 원인이 체들의 불균형과 차크라들의 부조화에 있다고 DK대사는 말합니다. 윤회와 카르마의 문제조차 그것에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체들과 차크라들에 관해서는 경험적 지각과 경험이 없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불교학자는 주로 중관사상에 대해 논하면서 부처의 공사상이 티벳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쫑카빠의 저서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저술했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방법은, 부처의 말씀이 기록되었다고 하는 경전 몇 개와 중관 논사들의 저서들을 비교 분석하고 개념적으로 정립하는 방법입니다. 소위 말해 교학적 접근방법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교학적 접근방법은 예전의 교학적 접근방법과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가 다루는 가장 최근의 논사라면, 쫑카빠인데, 쫑카빠는 엄청난 학승이겠지만, 동시에 초인적인 노력과 시간을 밀교적인 수행에 기울였던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가르쥬나, 찬드라키르티, 샨티데바 같은 공사상의 대표적 인물들 역시 학자이면서 동시에 밀교의 대성취자들이었습니다. 불교의 교조인 부처 역시 학자가 아니고, 전통적인 요가수행자였고, 그의 모든 가르침은 그런 직접적 수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교 철학에서 가장 난해하고 심오한 철학이 중관사상이라고 하는데, 명상적 수행을 통한 공성이해가 없이는 근본적인 이해가 어렵습니다.

DK 대사는, 영적 진화의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소위 신비적 세계에 대한 직접적 지각과 경험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러면서 반드시 특정 마스터가 중심이 된 하이어라키의 특정 법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식적으로 알게 된다고 합니다. 부디 의식이 의식적으로 개화되기 시작할 때가 그 때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경전이나 책 속에나 나와 있던 세계가 구체화되면서 인식되고, 영적 스승들이 시공을 초월해서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특정 법맥에 속해있음을 알게 되면, 수행이 가속화되고, 자신이 속한 법맥의 힘에 의한 가피력을 경험하면서 나날의 영적 수행이 구체적인 의미를 띠면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금강승 불교 수행체계는 위에서 말한, 요가적 수행과 영적 법맥의 심오한 의미를 구체화시키고 있는 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불교 수행의 최종적 귀착지가 금강승 수행에 있다는 것은, DK대사의 말을 빌면, 모든 신비적 수행자(Mystic)는 결국 오컬티스트, 즉 백마법사(White Magician)가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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