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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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신지학을 공부할 것인가? (How to Study Theosophy)

by Robert Bowen

번역 강 구영

서문

블라바츠키 여사가 생을 마감할 무렵에 행한 가르침들을 정리한 이 기록은 이미 여러 저널(journal)에 여러 차례 실린 바 있다. 이 기록은 Robert Bowen이 정리한 것이다. 그는 블라바츠키 여사의 클럽에 가담했던 나이 많은 해군이었는데 Secret Doctrine을 공부하기 위해 학생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하여 끊임없이 블라바츠키 여사에게 질문하였다.

그는 그녀가 답한 것들을 주의깊게 기록하였고, 후에 그녀에게 들려준 다음, 그가 그녀의 뜻을 오해없이 제대로 기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 기록들은 나중에 그 당시 더블린의 신지학회 회원이었던 그의 아들 고(故) P.G.B. Bowen대위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 기록은 처음에 Theosophy in Ireland 1932년 1-3월 호에 실렸는데 이는 이 기록이 쓰여진 후 40년이 조금 넘은 때였다. 그 이후 더블린 신지학회 안에서 뼈를 깎는 조사들이 이어졌지만 다른 어떤 유사한 자료도 햇빛을 보는 데는 실패하였다.

Bowen 기록이 갖는 가치는 그것이 비단 Secret Doctrine을 연구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지학의 연구에 적용되는 원리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신지학에 관한 어떤 설명도 전 우주의 그림을 반드시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되풀이하여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말이나 설명 또는 상대적 가치를 초월하는 진리(Truth)를 경험하면서 생기는 2차적인 패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지학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길을 보여줄 뿐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신지학에 관한 어떤 설명이나 권위도, 그것이 과학적 사실이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하는지 또는 다른 사람이 설명하는 신지학의 내용과 일치하는지에 따라 판단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지학에 관한 어떤 설명도, 그것이 강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형식이나 패턴을 넘어 오컬트 또는 숨은 실재(reality)를 추구하는 학생으로 하여금 깊은 경험을 갖도록 이끄는데 그 가치를 두어야 한다.이 기록에서 되풀이하여 지적하는 또 하나의 충고는, 어떤 신지학적인 가르침이건 충분히 이해하려면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돕기 위하여 블라바츠키 여사는 학생은 세가지 근본 명제(three fundamental propositions)를 깊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였다. 이 세가지 근본 명제는 Secret Doctrine 서문에 나와있는데 여러분들이 참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이 책의 말미에 재수록하였다.

H.S.

 

The Secret Doctrine과 그의 연구

 

H.P.B. (블라바츠키 여사)는 지난 주에 Secret Doctrine에 관한 사항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아직 내 마음 속에 기억이 생생한 동안, 여사의 말을 잘 정리하여 안전하게 종이 위에 기록해 놓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녀가 혼잣말로 되뇌이듯이, 이 기록은 지금부터 30년 또는 40년 후에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일 지도 모른다.

우선, Secret Doctrine의 내용은 Occult Brotherhoods의 상위 회원들에게 알려진 신비원리(Esoteric Doctrine)의 조그만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 내용은 앞으로 올 세기에 이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적혀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 말은 곧 질문을 야기시켰으며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여기서 세상이라는 것은 개인의 본성을 갖고 사는 인간(Man living in the Personal Nature)을 의미한다. 이 세상<즉,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두 권의 SD(Secret Doctrine) 안에서 그가 최대한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이해할 것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 제자도 이 세상이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형태(form)는, 아무리 조야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창조자(creator)의 이미지를 숨기고 있다. 저자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애매모호하게 적혀 있더라도 그 안에는 저자의 지식의 숨은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SD는 HPB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아니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그녀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HPB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게다가 그녀 자신이 다른 사람이 그 안에서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지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암시하였다. 내 자신이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지식을 그녀의 글 안에서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가! 그녀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였다. X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HPB의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음에 틀림없어. 아마도 이 말은, 내 생각이지만, 그녀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Y와 Z는 나처럼 그녀가 의미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우리 보고 그녀가 최후의 권위를 갖는 것처럼 그녀에게, 또한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말 것이며, 오히려 우리들 자신의 지식을 넓힘으로써 스스로에게 의존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기록에 대한 추후 노트 : 내가 옳았다. 내가 이것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인정해주는 미소를 자아내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저자의 싸인) Robert Bowen >

 

마침내 우리는 HPB로 하여금 SD를 공부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설명하도록 할 수 있었다. 아직 내 기억이 생생한 동안 그것을 적어 놓는다.그녀는 말하기를, SD를 다른 책을 읽듯이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내려 가는 것은 결국엔 혼란만 야기할 것이다. 설령 몇 년이 걸리더라도, 우선은 서문에 있는 세 가지 근본 원리(Three Fundamental Principles)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그 다음 제1권 (제1부)의 요약(Summing Up)에 번호가 매겨진 요점정리(Recapitulation)를 읽고, 그런 후에 제2권의 예비 노트(Preliminary Notes)와 결론(Conclusion)을 읽는 것이 좋다.

HPB는 인종(人種, Races)과 아인종(亞人種, Sub-Races)이 나타나는 시기에 관련된 (결론부분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확신하는 것 같았다. 다른 것보다 더 분명하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오는(coming) 인종이라는 것은 없다. 그녀는 말한다: 오는 것(Coming)도 없고 가는 것(Passing)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되는 것(Becoming) 뿐이다. 제4근원인종은 아직도 살아있다. 제3,제2,제1근원인종도 그러하다 --- 즉, 현 세상의 물질계에 그들의 현현이 존재한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제6아인종도 지금 여기에 있으며, 제6근원인종, 제7근원인종, 그리고 다음 라운드(Round)의 사람들까지도 여기에 있다. 이 점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Disciples), 형제(Brothers) 및 초인(Adepts)들이 일상적인 제5아인종 사람들일 수는 없다. 인종은 진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렇게 말한다:

인류 전체에 관한 한, 제6아인종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수백 년(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이 남아있다. HPB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새 인종(New Race)이 이미 이 세상에 왔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할 지도 모를 위험과 환상을 암시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인류 전체적으로 하나의 아인종이 지속되는 기간은 항성년(Sidereal Year --- 지구의 축이 회전하는 기간으로 약 25,000년이다)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새 인종이 나타나려면 아직도 상당한 기간이 남아있다.

지난 3주 동안의 SD 공부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더 이상 잊어버리기 전에 잘 정리하여 기록해 놓아야 하겠다.그녀는 근본원리에 대하여 더욱 많은 설명을 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누구든지 SD로부터 우주의 구성에 대한 만족할 만한 그림을 얻을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오히려 그 공부로부터 혼란만 얻을 것이다. SD는 존재에 대한 마지막 판결을 내리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고, 진리로 이끄는 길을 보여주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그녀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가 우리 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가서 SD를 해석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일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그들이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진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한 조각의 말라버린 통속적인 해석 뿐이다.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정된 아이디어에 스스로를 못박는 것이다. 반면에 진리는 우리가 형성 또는 표현하는 어떤 아이디어도 초월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해석도 다 괜찮으며, 그것이 초심자들에게 방향타로서의 역할만 하고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그녀는 비난하지 않는다.

현재의 신지학 회원들이나 미래에 회원이 될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은 아마도 통속적인 개념의 범위를 넘어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높은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녀는 SD를 접근하는 데 다음과 같은 올바른 방법을 제시한다.

SD를 접할 때 존재의 최종 진리를 얻겠다는 희망은 아예 갖지 말아라.

그저 진리를 향하여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라. 다른 공부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마음을 갈고 닦는 방법을 SD 공부 안에서 발견하도록 하라.

다음의 규칙을 지키도록 하라:

SD 안에서 무엇을 공부하든, SD가 전달하려는 관념의 근거로서, 다음의 개념들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두어라:

⒜ 모든 존재는 근본적으로 하나(The Fundamental Unity of All Existence).

여기서 하나(unity)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하나라는 개념 --- 예를 들면, 국가 또는 군대가 통합되었다(united); 이 행성은 자기력(磁氣力) 등에 의해서 다른 행성과 같이 움직인다 --- 과는 다른 것이다. 이 가르침은 이러한 의미가 아니다. 존재는 하나(One Thing)이며, 여러 가지를 함께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오로지 한 존재(One Being)만 있다.

존재는 양(陽, positive)과 음(陰, negative)의 두 측면이 있다. 양은 영(Spirit) 혹은 의식(Consciousness)이다. 음은 물질(Substance)로서 의식의 대상이다. 존재는 그 원초(primary)의 현현에서 절대(Absolute)이다. 절대이므로 그 바깥에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전체 존재(All-Being)이다. 그것은 나눌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절대가 아닐 것이다. 한 부분을 분리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절대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그 자체와 분리된 것 사이에 비교(Comparison)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어떤 절대라는 개념과도 양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근본적인 한 존재(One Existence), 또는 절대존재(Absolute Being)는 모든 형태에서 실재(實在, Reality)일 수 밖에 없다.

이 메세지의 의미는 내게는 분명하였지만, 롯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HPB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지학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스스로를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정신적인 건달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최근에 그녀는 좀 부드러워진 셈이다. 보통 수준의 학생들을 그녀는 똥대가리(Dumskulls)라고 부르곤 했었다.

원자(Atom), 사람(Man), 신(God)은 각각 별도로, 그리고 집합적으로, 궁극적으로는 절대존재이다. 즉, 진정한 개체성(Real Individuality)이다. 이 아이디어야말로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어서 SD를 공부할 때 일어나는 모든 개념의 기초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흔들리는 순간(복잡한 비전철학(秘傳哲學, Esoteric Philosophy)을 연구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분리(分離, Separation)의 개념이 지배하게 되고, 공부는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 명심해야 할 두번째 개념은 죽은 물질은 없다(There is No Dead Matter)는 것이다.

개개의 원자까지도 살아있다. 각 원자는 근본적으로 절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천사들이나 정령들(elementals)이 물 속의 숭어처럼 뛰어 노는 에테르(Ether)의 공간(spaces) 또는 아카샤(Akasha)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상식적인 생각이다. 물질의 모든 원자는, 그것이 어느 차원에 있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Life)이다.

⒞ 명심해야 할 세번째 개념은 사람은 소우주(Man is the Microcosm)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는 천상의 모든 직급(Hierarchies of the Heaven)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우주(Macrocosm)도 없고 소우주도 없으며 오직 유일 존재(One Existence)만이 있다는 것이 진리이다. 크다거나 작다는 것은 오직 제한된 의식 안에서만 구분되는 것이다.

⒟ 명심해야 할 마지막 네번째 개념은 다음의 위대한 연금술 공리(the Great Hermetic Axiom) 안에 담겨 있다. 이것은 다른 것들을 요약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안(Inner)이 그러하듯이 바깥(Outer)도 마찬가지이다;

큰(Great) 것이 그러하듯이 작은(Small) 것도 마찬가지이다;

위(Above)에서 그러하듯이 아래(Below)에서도 그러하다:

단지 하나의 생명과 법칙(One Life and Law)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이다. 신의 영역(Divine Economy) 안에서는, 아무 것도 안에 없으며 아무 것도 바깥에 없다; 아무 것도 크지 않으며 아무 것도 작지 않다; 아무 것도 높지 않으며 아무 것도 낮지 않다.

SD 안에서 무엇을 배우건, 위의 기초적인 개념들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종의 정신적인 훈련일 것이라고 내가 말하자, HPB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하기를)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내어 스스로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된다.

뇌는 깨어있는 의식의 도구이다. 의식이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려내건, 그것은 뇌의 원자들이 변화하는 것이며 파괴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지적 활동은 뇌 안의 잘 길들여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며, 갑작스러운 조정이나 파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정신적인 노력은 뭔가 아주 다른 것 --- 새로운 뇌의 경로를 파내는 것, 또는 뇌의 원자(삶)들의 배열을 뒤바꿔 놓는 것 --- 을 필요로 한다. 만약 분별없이 억지로 행한다면, 뇌에 물리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그녀는 말하기를) 인도 사람들은 즈나나 요가(Jnana Yoga)라고 부른다. 즈나나 요가에 진전이 이루어지면 어떤 개념들이 떠오르는데, 이들을 의식할 수는 있으나 어떤 종류의 정신적 그림으로도 표현하거나 형상화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개념들은 정신적 그림으로 형성된다. 이 때야말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 발견된 놀라운 그림들이 실재(reality)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버리면 안된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계속 정진하게 되면, 한 때 흠모했던 그림이 점차 무디어지고 불만족스럽게 되며, 점점 흐려져서 마침내 사라져 버린다. 이 때가 또한 위험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 자신을 지탱해 줄 어떤 개념도 사라지고, 매달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버려진 그림을 다시 소생시키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실한 학생은 관계치 아니하고 계속 정진할 것이며, 곧 형태없는 미광(微光, gleam)이 비춰오고, 때가 되면 지난 번 것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다운 그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학생은 어떤 그림도 진리(Truth) 그 자체를 나타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최후의 그림도 앞의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점차 무디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어, 학생은 마침내 정신과 그림들을 초월하여, 무형의 세계(the World of No Form)에 들어가 살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형태는 이 무형의 한 면을 반영할 뿐이다.

SD를 공부하는 진실한 학생은 지나나 요기(요가수행자)이며, 이 요가의 길은 서양의 학생이 걸어야 할 진리의 길이다. SD가 쓰여진 이유는 바로 그 길에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추후 노트: 나는 그녀의 가르침에 대한 위의 기록을 HPB에게 읽어주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도대체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나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녀 자신보다도 더 잘 했다고 말했다.]

나는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놀라고 있다. 이 글은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나는 실제 나이로 HPB보다 20년이나 연상이건만, 그녀 앞에서는 어린애같이 느껴지기만 한다.그녀는 2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많이 변했다. 그 어려운 병을 앓고 있으면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녀는 어딘가 다르고 육체와 정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고 믿을 것이다.

특히 그녀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이후 만난 몇 번의 모임에서, 우리는 보다 높은 다른 차원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그녀의 말을 육체적인 귀로 듣는다기 보다는, 느끼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X도 어제 저녁 거의 같은 말을 하였다.

Robert Bowen,

CMDR. R.N.

19 April, 1891

 

세가지 근본 명제 (The Three Fundamental Propositions)

SD의 서문(Proem)에서

 

I. 모든 곳에 존재하고(Omnipresent), 영원하며(Eternal), 끝이없고(Boundless), 변하지 않는(Immutable) 원리(Principle).

이에 대해서는 어떤 억측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를 표현하거나 비유하려 하는 경우, 그 내용은 왜소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 만두캬(Mandukya, 옴이라는 말을 다룬 우파니샤드<고대 인도의 힌두교 철학책>)의 말대로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일반 독자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모든 현현되고 조건 지어진 존재 이전에 하나의 절대 실재(one Absolute Reality)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 무한의 영원한 원인(the Infinite and Eternal Cause) --- 현 유럽의 철학에서 무의식(Unconscious) 및 알 수 없는(Unknowable)이라고 희미하게 정의된 --- 은 존재하는 모든 것 또는 존재할 모든 것의 뿌리없는 뿌리(the Rootless Root)이다.

그것은 물론 어떤 속성(attribute)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현현된 유한한 존재와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그것은 존재(Being)라기 보다는 있음 그 자체(Be-ness) --- 산스크리트 어로는 Sat --- 이며, 모든 생각과 억측을 초월한다.

이 있음 그 자체는 SD 안에서 두 가지 면에서 상징화하였다. 하나는 절대적인 추상공간(absolute Abstract Space)으로서, 순수한 주관성(subjectivity)을 나타내며, 어떤 인간의 개념도 그것을 빼놓을 수 없으며, 누구도 그것없이 생각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절대적인 추상운동(absolute Abstract Motion)으로서 조건지어지지 않은 의식(Unconditioned Consciousness)을 나타낸다.

서양의 사상가들도, 변화 없이는 의식을 인지할 수 없고, 운동(motion)은 그 핵심적인 특징인 변화를 가장 잘 상징한다고 말해왔다. 유일실재(the One Reality)의 이 측면은 큰 숨결(Great Breath)이라는 용어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 상징은 너무도 생생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따라서 SD의 첫번째 근본 공리(Axiom)는 이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절대 있음 그 자체(One Absolute Be-ness) --- 신학의 삼위일체처럼 유한한 지성으로 상징되는 --- 이다.

 

II. 끝이 없는 영역으로서의 우주 전체(the Universe in toto)의 영겁성(eternity);

현현하는 별(Manifesting Stars) 및 영원의 불꽃(Sparks of Eternity)이라고 불리는,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현현하고 사라지는 무수한 우주의 놀이터. 신지(神智)의 서(Book of Dzyan)에서 말하듯이, 순례자의 영겁은 자존(自存, Self-Existence)의 눈 깜빡임과 같다. 세상의 출현과 사라짐은 밀물과 썰물의 정기적인 교차와 같다.

SD의 이 두번째 표현은 물리학이 자연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주기성 법칙(law of periodicity)의 절대적인 보편성을 보여준다. 낮과 밤, 삶과 죽음, 잠과 깸과 같은 교차는 너무도 흔한 사실이고, 완전하게 보편적이며, 예외가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절대적인 우주 법칙의 하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III. 모든 혼은 근본적으로 우주의 전체혼(the Universal Over-Soul)과 동일하다(Identity)는 원리.

우주의 전체혼은 미지의 뿌리(the Unknown Root)의 한 측면이다. 전 기간 동안 주기(Cyclic) 및 카르마(Karmic) 법칙에 따라서, 육화(Incarnation) 또는 필연(Necessity)의 주기를 통하여 개개의 혼 --- 전체혼의 한 불꽃 --- 이 의무적으로 걸어야 하는 순례. 다시 말하면, 우주의 제6원리(the Universal Sixth Principle) --- 또는 전체혼 --- 의 순수 본질에서 비롯된 불꽃이⒜ 만반타라(Manvantara, pralaya(휴식) 사이의 현현의 기간으로서 브라마의 하루 --- 4,320,000,000 태양년에 해당한다 --- 를 지칭한다.

Manvantara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①prakritika manvantara -- universal manvantara, ②saurya manvantara -- solar system manvantara, ③bhaumika manvantara -- earth manvantara, ④paurusha manvantara -- manvantara of man) 동안 현상계에 있는 모든 원소 형태를 두루 거치고,⒝ 처음에는 자연적 충동에 의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스스로 유도하고 고안해 낸 노력에 의하되 카르마에 의해 균형을 잡으며 개체성(individuality, Higher or Divine Ego를 지칭함)을 획득함으로써, 모든 수준의 지성을 통하여 상승 --- 가장 낮은 것에서부터 가장 높은 마음(Manas)에 이르기까지, 광물과 식물에서부터 가장 신성한 대천사(Dhyani-Buddha)에 이르기까지 --- 하기 전에는, 순전히 영적인 부디(Buddhi, Divine Soul)가 독립적으로 의식적인 존재를 취할 수 없다.

긴 세월동안 재생과 윤회를 거쳐 개인적인 노력과 공덕으로 쌓은 자아(Ego,비전철학에서는 두가 지 Ego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개인적이고 죽는 personality이고, 다른 하나는 신적이고 불멸하는 Individuality이다)에 의한 특권이나 특별한 선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비전철학(秘傳哲學, Esoteric Philosophy)의 주축이 되는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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