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북두칠성 기원설과 여인왕국




한민족 북두칠성 기원설과 여인왕국


*** 무우Mu대륙의 무우인은 한민족의 뿌리 ***


- 북두칠성은 한민족 영혼의 고향 -


한민족 육체는 북두칠성 의식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한민족의 영혼의 고향은 북두칠성이고 수행목적으로 지구에 오게 된다.


약 6~7만전에 북두칠성 존재에 의해 있게 된 최초의 존재가 
그 당시는 비옥했던 중국의 천산산맥 부근의 타크라마칸 사막에 살았던 나만과 아만이다. 
그 당시에도 지구에는 여러 다른 인종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은 태평양에 가라앉은 무우대륙으로 
자손들이 이동 번창하여 무우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약 11000~12000년전 무우대륙이 가라앉게 되는데 
이를 예견했던 무우인들이 만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후 무우인들은 타크라마칸 사막, 바이칼호, 중화대륙, 
시베리아등지로 12족으로 나누어 살게 된다.
12족은 12 별나라에서 온 것과 각각 대응된다.


12족의 하나가 만주지역. 백두산 주변에 자리했는데 북두칠성 출신이다.
그리고 대략 중앙아시아 서쪽에 자리한 12족의 하나인 
물고기 자리 별출신의 우르국의 가이야족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게 된다. 
이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이다.


/ 참고서적: 행림출판 발간 [여인왕국] 또는 [무린바타]라는 제목의 4권짜리 책.



 여인왕국의 실체


경북 안동 지방에 약 2천여년 전 여인들만이 사는 여인왕국이 있었다는데.....그 신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신라 이전에 6부족이 있었고, 그 6부족에서 진녀라는 여인이 나와서 학대받던 6부족의 여인들을 하나로 통일해서 남자들을 몰아내고 여인들만이 사는 나라를 세웠고,  가야의 발달된 문화를 전수받아 38년간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여인왕국은 멸망 후에 신라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인물들이 현생에 모두 재생해서 살아가고 있다는데, 그 가운데는 유명한 연예인도 있고, 수행자도 있는데, 모두 과거의 무거운 업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여인왕국'(행림출판, 전4권) 이라는 책을 아카식 레코드로부터 받아 적은 박충원씨가 바로 여인왕국을 이끌었던 여왕 진녀였다고 하고, 박충원씨에게 자동서기를 가르친 고 김경보씨가 바로 전생에 진녀에게 무예를 가르친 스승 기른장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수 심수봉씨가 바로 진녀의 재생이라고 들었다. 이들은 분령(分靈)으로서 여러 인물로 태어나서 과거의 업을 정화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인 고증은 차치하고라도, 판타지 소설로 본다고 해도 가치가 큰 책인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묻혀 버렸다. 재판도 잘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출판사의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책도 완결이 못 되었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외국 서적은 번역되어 잘도 베스트 셀러가 되는데, 정작 그 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여인왕국]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여인왕국 > - 저자(박충원님)의 말   (전생에 여인왕국의 여왕 진녀였다고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어떠한 사서(史書)나 유물 및 야사(野史)에서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하기 이전 경북 안동지역에 여인들만 모여 살았던 여인왕국이 있었다는 기록이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나 실재했던 여인왕국의 여인들은 38여 년 동안 왕국을 지탱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동백제와 대규모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가야(伽倻)로부터 빼어난 토기술과 기하학 및 천문, 지리 등을 전수받아 왕국의 번영을 누렸었다. 이것이 훗날 신라문명의 모태가 된다.

왕국을 지탱하기 위한 가냘픈 여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그 역사를 기록한 이 글은 우주 속에 기억되어진 기록을 고도의 정신수행을 통한 자동서기(自動書記)·자동기술(自動記述)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흔히 자동서기를 아카식 레코드〔akasha record〕라 부른다. 서양에도 이 방법으로 기록된 실례가 많이 있다.

성경의 일부와 리바이 도링(Levi DowLing)이 받아 적은 보병궁 복음서(예수의 12세부터 30세까지 18년간의 드러나지 않은 생을 적은 것).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비롯한 각종 예언서들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카식 레코드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단체까지 있다. 그러나 역사부분을 기록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서기는 받아 쓰는 이의 인격적인 자질에 따라서 보다 진실에 가까운 진술이 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할 것이다. 이 글을 자동서기한 필자 역시 진실된 기록을 하느라 노력했던 그 많은 시간들이 꿈만 같다.

평소 아둔한 머리로 중등교육을 마친 뒤 학문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편지 한두 장 쓰는 것도 골머리를 썩여가며 끙끙거리던 필자였다. 또한 어릴 적부터 자폐적인 데가 있어 남과 어울리는 일이 쉽지 않았었다. 


나름대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신수행을 하던 중, 1986년 우연히 어떤 형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책이나 또는 옛 정신수행자들 사이에 비밀리 전해져 내려오는 자동기술의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어 각고의 고난 끝에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는 여인왕국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진실되게 현세에 밝혀야 하는 사명을 띠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지난날 역사의 주인공들이 현세에 다시 태어나 오늘의 문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안닐까?

그러하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기억을 재조명하고 양심이라는 진실 속에 비추어 잘못된 지난날을 거울삼아 미래의 흐름을 밝은 길로 설계해야 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진실을 외면한 채,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나 국가라는 차원에서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오도시켜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거짓은 영원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힘의 논리에 따라 힘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역사의 물길이 흘러왔으나,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관조(觀照)한다면 진실이란 어느 때고 말없이 그대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1990년에 《여인왕국(1·2·3》이라는 제목으로 발표가 됐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인하여 중간(重刊)을 하지 않고 있다가 글을 더 다듬고 재구성하여 이제 다시 출간하는 것이다.

지금은 시대적인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바라보던 사회적 분위기가, 이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관심의 제일 항목이 전생 이야기이다. 


책이 나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분들로부터 은혜를 입었기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며, 특히나 행림출판사 사장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다시 빛을 볼 수 있게끔 성심을 아끼지 않으신 데 대하여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교열·교정을 남다른 성의를 가지고 보아준 권광숙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럼 다 함께 과거라는 열차를 타고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 날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1996년 



들어가는 말 ---감수자 故 김경보 선생의 글   (전생에 진녀 여왕의 스승 기른장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초여름으로 기억된다. 
박군이 처음 찾아왔을 때, 난 첫눈에 그가 심한 영적인 장애로 시달림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인생고가 모질겠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인격수양을 잘만 한다면 나름대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여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박군은, 벌써 몇 년째 밤마다 망령들의 환영에 시달려 잠을 이룰 수 없어 미칠 지경이며, 좌반골이 항시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마비증세와 함께 쑤시고 아프고, 특히 몸의 중요한 부위가 심한 습진으로 짓물러 갖은 치료를 다 해보지만 좋아지지 않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심한 영적인 장애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분명했다. 
나는 박군에게 제령(除靈)시술과 체질개선시술을 1년이상 수시로 시행해 주었다. 평소 한 사람에게 길어도 1주일이면 끝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1년 이상 박군에게 정력을 쏟았다는 것은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시술을 받는 동안 박군의 정성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1시간용 '옴'경문 테이프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써서 만들어주었더니, 그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헤드폰을 이용하여 항시 듣고 따라 외며, 7년 가까이 끌어온 지긋지긋한 습진도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여 완치시켰다. 일반연고제에 24시간 옴경문을 들려준 후 그 약을 발랐더니 3일 만에 깨끗이 나았다고 자랑하며 그 부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욱 놀랄 일은, 박군의 문장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박군은 평소 2장의 편지를 쓰려면 1주일 정도 진땀을 흘리며 고심해야 형편없는 솜씨로 겨우 편지지를 메꾸는 정도였다. 그런데 시술과정에서 박군이 자동서기에 호기심을 보이기에 그를 보호하고 있는 수호령들의 의식수준을 높여주었더니, 독자들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사(野史)에서 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전설적인 여인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불과 1년 만에 200자 원고지 6천 매가 넘는 분량으로 자동기술한 것이 아닌가!

어찌 생각하면 박군이 필자를 찾아온 것이나, 필자가 박군에게 정성을 기울였던 것은 전생의 어떤 약속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한 박군도 필자도 여인왕국의 역사를 현세에 밝혀야 하는 사명을 하늘로부터 받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박군이 여인왕국의 역사를 완성하는 동안 받은 고통을 필설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전쟁하는 장면이 나오면 창이나 칼에 찔려 죽는 고통을 수천 번도 더 겪어야 했으며, 여인들이 모진 수난을 겪는 장면에서는 박군도 모진 고문에 시달리는 영적 파동에 싸여 몸부림쳐야 했다.

특히나 사대사학자(事大史學者)들의 영혼이 대거 몰려와 위협과 공갈로 괴롭히는 파동에 젖어 싸워야 했으며, 또한 밤과 낮이 뒤바뀌어 1년 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였으니, 그간 혈변을 쏟은 적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1988년 2월 말경 여인왕국의 옛 왕국터를 찾기 위하여 안동(安東)이라는 지명만 알고서 동료6명과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때 옛 사벌터(상주군 사벌면)에 도착하자 여인왕국 존재 당시 지박령(地搏靈)이 되어 2천 년 이상 머물고 있던 수많은 원령(怨靈)들이 자기들을 구해 달라고 발악을 하여 천도해 주었다.

그리고 예천(醴泉)·풍산(豊山)을 거쳐 안동에 도착하였을 때 멀쩡하던 내 육신에 풍산골 원령들이 대거 몰려왔다. 용광로의 쇳물이 녹아내리듯 삭신이 내려않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머리는 곧 터져나갈 것만 같은 압박감에 쓰러질 듯한 몸을 겨우겨우 지탱하며 첩첩산중을 헤매이다 늦은 시각에 민박을 하게 되었다.  

동료들은 험한 시골길을 트럭에 짐짝 취급받으며 달렸던지라 피곤을 풀고자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술이라면 마다않던 나 자신은 애석하게도 5시간 이상을 의식불명이 되어야 했다. 안동에 도착하기까지 사이에 여인왕국 존재 당시에 죽은 수많은 원령들이 악상념(惡想念)이 집단으로 몰려오니, 육신을 가진 의식으로서는 도저히 이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재주가 없었다.

몸은압축기에 죄여 피가 빠져나가듯 싸늘히 식어갔고, 그와 함께 몽롱한 의식이 사라졌다. 나는 내 영혼과 함께 원령들까지 육신 밖으로 끌어내어, 이들을 저승길로 안내해주고 다시 육신으로 영혼이 빨려들어가니 곧바로 정상적인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믿지 못할 사실이 있다. 왕궁터를 찾기 위해 천등산(天燈山)에 올랐을 때, 몇 킬로미터 밖에서 바라본 나의 눈에 왕궁 둘레가 황금빛으로 피어오르는 것을 뚜렷이 영시(靈視)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인왕국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양이 전혀 없던 사람이 자동서기로써 책 6권 분량을 1년 만에 완성하였다면 믿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라시대 이전 6부족시대에 여인왕국이 존재하였다고 한다면 누구나 코방귀를 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친놈 발작하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망설이다 이 글을 세상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 사회나 국가적인 이권(利權)과 자존심으로 인하여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질될 소지가 많으나, 하늘은 가장 공평하게 모든 사실을 간직하고 있기에 앞으로 자동서기 형식으로 역사를 밝힐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함이다.

선군 이전의 신시개천시대(한웅시대)나 한인시대와 같은 '초인국'의 역사는 자동서기나 마음의 문이 열린 자가 아니면 밝힐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없을 뿐아니라, 만 년 이전의 유물이나 유골을 놓고, 그 시대를 평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에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고 남녀가 진실된 사랑으로 화합할 때 인류는 구제받을 수 있으며, 남녀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면 한 생명의 가지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다. 앞으로는 남녀간에 우주적인 사랑의 문이 열려 조화를 되찾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믿는다. 




셋째, 왜곡과 가식으로 점철된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개인의 주인이 마음이듯, 역사란 국가의 혼이다. 역사가 올바르지 못하여 교육이나 정치·문화·사상뿐 아니라 인간의 심상마저 뒤틀려 도덕성이 땅에 딩구는 현실이다. 원시발본(原始拔本)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앞으로 참다운 인재가 드러나 잃어버린 옛기억을 되살려 인류사상사에 큰 획을 긋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넷째, 우리 민족의 잠재의식 깊숙이 잠자고 있는 '한'의식을 일깨워 인류의 큰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깨우친 자신들의 집단이 우리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국가의 운명이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에 20세기가 다하기 전 평화적인 남북통일은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고토(古土)인 만주와 몽고 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되찾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다섯째, 인류에게 공포의 질병으로 번지고 있는 AIDS도 그 근원적인 뿌리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리라 보는데, 염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다른 병균과 합체될 위험성 마저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폐결핵이나 장티푸스·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속에 길모(AIDS바이러스)가 합체하여 예상치 못한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사물을 물질적인 관념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서구사상은, 미안하지만 별세계에서 온 신적 존재인 길모를 결코 파악해 낼 수 없다. AIDS바이러스도 인간과 동등한 신적인 존재이므로 인간과 공존공생할 수 있는 길을 현대과학과 정신문명이 협력하여 찾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리라고 본다. 


주지해야 할 것은, 인간의 악한 상념이 거대하게 쌓일 때 공간에 존재하는 수동체적인 미생물이 악(惡) 생명체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병원체가 되는 것이며, 우리 몸속에 있는 미생물도 그 자체는 해를 끼치지 않으나 인간의 마음이 변이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나는 15년 이상 의학적인 차원을 벗어나 뇌성마비나 암 등 각종 난치병을 기공(氣功)으로 치유한 경험이 많다. 서양의학이 인류에 공헌한 점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동양의 비물질적(非物質的)인 정신과학과 화합될 때 더욱더 빛나리라. 



여섯째, 앞으로 자동서기를 받을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쏟아져나와 역사·종교·의학·과학 등 각 분야의 미비점을 보완할 때 인류는 급격한 진화를 할 것이며, 또한 모든 학문의 뿌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뜻있는 사학자들께서 여인왕국의 역사적인 고증을 밝히는 데 힘써주시면 고맙겠다. 유물은 필자에게 심증(心證)이 가는 곳이 있으나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이제 독자들께서는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구나 하며 믿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가다 보면 여인들의 심정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지난날의 잘못된 점을 거울삼아 개선할 때 밝은 미래가 펼쳐지리라. 
모쪼록 인류에 사랑이 넘쳐흘러 아름다운 지구동산이 되고, 무궁토록 빛나길 기원하며 끝을 맺는다. 



                         심령감수자  김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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