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 샴바라 (7) - 대 백색형제단의 대사들
10. 대사들의 대 화이트 롯쥐와 샴바라
-도릴 박사의 담화에서 -
샴바라의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대사들의 결합체인 대 화이트 롯쥐에 관해서 이해가 없어서는 안 된다.
대사라든가 대 초인이라든가 하는 위대한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19세기 이래 많은 책이 쓰여져 있다. 그 결합단체를 화이트 롯쥐(White lodge)라고 부르며, 또 대 화이트 부라더후드(대백색형제단, 성백색 형제단, 성백색동포단, 지순 동포단)라고도 하고, 하이어라키(Hierarchy)라고도 한다. <간략>
화이트 롯쥐의 동포들은 인류의 선배이고 지도자로서 인생의 고뇌라고 하는 속박으로부터 초탈하여 자유를 얻어 우주 생명의 대 법칙을 활용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죽음에 초월하여 육체를 없애려고 생각하면 없애버려 보이지 않게 되고 또 육체를 나타내려 하면 육체의 소유자로서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 대 생명의 법칙을 활용한다는 것은 인간처럼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먹지 않고 살고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죽음을 극복하여 영원히 산다는 일이다.
화이트 롯쥐의 대사들은 현세를 초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 세계와의 접촉을 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높은 향상의 영역에 달하여 우주 대 생명 즉 신의 법칙과 합치하여 살고 잇는 존재자 들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은 우주 대 법칙과 절대의 조화를 보전하고 그 하는 바를 완전한 표현으로 나타내는 자들이다. 그것에 반하여 우리들의 이 육체나 행위나 사업은 불완전하여 파멸되고 만다. 대사들은 자신을 대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사라는 말은 우리들 인간이 그들을 높여서 부르는 높임말이고 대사들은 우주 대 생명의 법칙과의 통일의 상태에 들어가 있고 위도 아래도 없이 오직 하나인 우주의식, 하나의 신을 의식하고 있을 따름이며 내 안에 빛나는 신을 보면서 사람들 속에도 숨어있는 신을 보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상하의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의 종국은 절대로 하나 밖에 없다. 대사들은 인류의 종들이고 그 종들이 바로 대사들이기도 하다. 인류에 봉사하고 인류를 돕는다는 의식이 고도의 수준에 달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종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대사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대 화이트 롯쥐의 아데프트들은 정신적 진보도상에 있는 인류를 가르치고 또 인류를 돕기 위해 육체를 가지고 살면서 일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아데프트들은 육체를 나타낼 수도 있다. 흡사 예수가 군중 속에서 사라졌다가 또 제자들이 있는 2층 방에 나타나거나 한 것처럼 출몰이 자재롭다.
대사는 병과 죽음을 초월했으니 인간처럼 그 업에 치이게 되지 않는다. 대 아테프트의 자유를 포기하면 그 순간 암흑의 외부세계로 내던져지고 말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전 세계의 소위 지배 계급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위대한 아데프트들이 있다면 그들이 전쟁을 미리 막아주면 좋을 텐데” 라고. 그러나 다가올 전쟁과 닥쳐올 대 재난을 피해야 할 자는 인간들 스스로이다. 전쟁이나 대 재난의 원인을 만드는 것은 인간들이다. 자기가 원인을 만들었으면 자기가 그 결과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천지의 법칙이다.
전쟁의 쓰라린 결과가 싫다면 전재의 원인을 만들지 말라고 이끌어 주면서 계명시키는 자가 대사들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대사의 계명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욕을 추구하여 전재의 원인을 결정짓는다.
대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류의 전부 또는 개인을 또 인종을, 국가를 지도하여 무질서, 부조화, 파괴에서 초극시켜 가며 한 층 더 좋은 조화를 실현시켜 주려고 하고 있다. 신성한 법칙의 체험에 도달한 대사들은 대법의 조화를 깨트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
대 아데프트들은 제자를 통하여 외부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바른 행로로 인도하고 있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과를 받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본인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데프트는 결코 자기의 의지를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올바른 것을 받는 것은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이다.
아데프트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해라!”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너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자는 대사가 아니다.
아데프트는
“내가 쓴 책 외에는 읽지 말라. 내가 설교한 것 외에는 듣지 말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제한을 두는 것은 인간들이다.
세계정세, 지적, 정신적 표현물을 보고 그 옳고 그름을 비판하여 선택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알아서는 안 될 일이 있다.”고 말하며 다른 종교의 진리를 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사들이 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알 권리가 없다는 것은 있을 까닭이 없다.
아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자기들의 이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데프트들은 이해 불가능한 제한을 제거하여 우리들에게 이해하는 힘을 부여한다.
샴바라는 인류에 정신적 지도를 베풀어주는 세계의 중심이다. 이 지구에 있는 아데프트들의 대 결합체(대 화이트 롯쥐)는 인류를 인도하는 지력체이다.
제 10세기에 있어서의 유럽의 마소나리 동포단은 그 목적 때문에 유럽에서 행해진 화이트 롯쥐의 신참자(네오파이트)로써 조직된 것이다. 십자군이 일어날 때까지는 마소나리는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 화이트 롯쥐는 각 시대를 통하여 이런 저런 개인이나 조직이나 동포단을 통하여 일층 위대한 지혜, 일층 높은 영적 전개 및 발달을 인류에게 가져다주려고 노력했다. 누구라도 혼의 통로를 뚫을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통로를 뚫는다면 신성한 진리는 완전히 그 사람 안으로 들어와 그의 것이 된다. 그것으로서 그 사람은 신의 태양이 되고 그것을 통하여 완전한 표현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대 화이트 롯쥐 형제단(대사들)은 144명이다.
만약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데프트가 될 수 있으면 샴바라의 은미한 성소로 소명받아 가르침을 받고서 또한 특별 운명을 완료한 아데프트들과 함께 일하면서 새 아데프트로 임용된다. 또 신 아데프트는 필요한 다른 세계(지구 내)에 가서 일하게 되기도 한다. 대 화이트 롯쥐에는 언제나 144명의 대사가 있다.
지구의 화이트 롯쥐만이 아니고 우주 화이트 롯쥐가 있다. 이 고요한 성소는 플레이아데스 성좌의 안타레스 별에 있다. 이것이 성서에 나오는 “하늘 나라”의 뜻이다. 지구의 화이트 롯쥐는 티베트에서 내려가는 지하의 성소인 샴바라에 있다. 지구의 성소들은 다른 곳에도 일곱군데나 있다. 그러나 중앙 성소는 지하의 샴바라에 있다.
도릴 박사는
이상과 같이 설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샴바라는 실제로 있는 장소이다. 나는 티베트에 가기 전에 인도에 있을 때 방문한 승려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승려들은 샴바라에 관한 저서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승려 이외의 사람들은 샴바라는 암굴이라고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산이라고도 말하고 다른 사람은 대 사원이라던가 또는 의식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는 불확실했지만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은 확인하게 되었다. 물질적인 장소로서 샴바라는 티베트의 수도 랏사의 바로 밑의 지하이다. 랏사는 불교도의 성도로 여겨지고 있다. 불교 사원과 랏사는 지하에 숨어있는 많은 사원들의 외적 가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밀교의 불교에 통한 사람은 샴바라에 들어옴을 허가 받는다. 세계에 있는 허다한 종교에 통달한 사람도 거기에 들어옴을 허가 받는다. 샴바라의 위대한 존재자들은 종교가 무엇이든 인종이 무엇이든 그런 일에는 차별이 없다. ‘진리보다 위대한 종교는 없다.’ 결국 진리 앞에는 종교 따위는 없다고 하는 것이 위대한 존재들의 입장이다. 있는 것은 신뿐이고 도(道)에는 구별이 없다.
랏사로부터 120km쯤 지하로 내려가면 3차원 공간이 휘어져 4차원 공간으로 열린다. 이 공간은 우리들의 지상과는 다른 진동의 세계로서 주위의 산이 붕괴되고 지각이 낙하해도 아무 일도 없다. 옛날 그 곳은 지표면에 있었다.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이 치솟기 이전의 일이었다. 이 지중의 공간이 샴바라인 것이다. 샴바라에 수폭을 던져 넣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절대 무사하다. 수폭 원폭을 투하하려는 자는 즉각 다른 장소에 옮겨져서 현장에 되돌아 올 수가 없다. 이 사실을 깊이 깊이 인식해 두라. 어떤 자라도 아데프트를 건드리려고 할 수 없다. 또 어느 때든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샴바라의 보물을 탐내서 자기 소유로 할 수 없다.
샴바라의 왜곡된 공간은 9차원 진동을 일으킨다. 만일 샴바라의 외부에 군대, 전차, 대포를 진열하는 자가 있다면 번쩍하고 빛나는 광파에 휩싸여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뭉개져 사라지고 만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주의 다른 별에 추방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케 될 것이다. 이 광파에 휩싸여 공간은 왜곡당하여 이와 같은 결과를 연출케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스트로(astro)물리학을 연구했다면 이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계속하여 도릴은 설명한다.
샴바라에 가는 데는 물질의 입구가 있다. 입구는 랏사시의 지하자원 공간에 있고 화이트 롯쥐에 속하는 두 사람의 신참자들이 감시하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통과를 허가받는다 해도 또 아래 쪽에는 다른 감시들이 있다. 내가 샴바라에 들어가는 데는 수위들의 검문에 대하여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로는 수위들이 우리들의 대답을 시험키 위하여 퇴거를 명한다. 퇴거를 명령받으면 어떻게 할 수 없다. 바른 답을 하면 길은 열리지만 대답이 틀리면 길은 막혀 버린다. 잘못하면 절망의 늪에 빠지는데 절망 아래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받게 되는 것이다.
샴바라는 멀리 지상과 떨어진 대 화이트 롯쥐가 있는 곳으로 거리에는 대 순백 사원이 있다. 들어가 보면 몇 마일 되는지 모를 광대한 넓이이다. 조금 있으면 자신의 세계 안에 들어선 느낌이 들며 지하에 있다는 느낌이 없어진다. 방사능 물질의 찬란한 빛으로 타고 있는 구체가 있어서 구석구석 밝기 때문이다. 이 구체야말로 외부의 태양과 흡사한 것이고, 거기에도 초목이 있고 갖가지 꽃이 피고 있다. 어떤 초목은 지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각 시대의 것들에 둘러싸인 대 사원이 있다. 사원이라 해야 할까, 궁정이라 해야 할까, 거기는 경건한 예배 장소이다. 오히려 지상의 정신력에 대한 초점이다.
거기에 사는 그들은 종교가 없다. 그들은 오직 신을 알고 있을 뿐 예배하는 것은 자기 자아를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를 끝내면 내 안에 있는 신이 나타난다. 신이 되는 것이 그 위대한 존재들의 수행해온 길이다.
그 대궁전은 순백의 파괴를 초월한 대리석으로 세워져 있고 몇 백만 년을 경과하고 있다. 인류의 초점에 있어서의 제 1기로부터 계속 존재해 온 것으로서 그 안에는 고대 인류의 기록 전부가 보전되고 있다. 나는 허가받은 기간 동안 샴바라에 있었다. 거기에서 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였고 나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보존되고 있는 고대 인류의 기록을 읽거나 보거나 했다. 궁전에는 거대한 밀실이 있어서 무수 무한한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고 아름다운 금속의 철사를 감은 작은 것으로서 나의 새끼손가락 보다 크지는 않았다. 작은 케이스 속에 넣어져 있고 뚜껑이 뒤로 밀리면서 열려 프리즘 수정의 렌즈가 나온다. 광파가 방출되어 극히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표면에 굴곡을 짓고 카메라에 필름을 넣을 때와 같은 작용이 일어난다. 거기에는 또 나의 손톱보다 크지 않은 조그마한 모터가 있다. 연료도 500만 년 전의 것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연료는 황금의 작은 일이고 물질방사능으로 모터가 돌아간다. 원자력 모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의 작은 알 중에는 납이 되어버린 것이 있었다. 긴 세월동안 연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케이스의 양쪽에는 작은 스타트가 셋 붙어 있다. 중앙 스타트를 누르면 철사가 서서히 돌아 나온다. 그때 위쪽의 수정을 보면 작은 그림이 나타나 보이게 된다. 다른 두 스타트를 누르면 그림이 커져서 3m 떨어진 공중에 3차원의 실물대로 물질화하여 보인다. 즉 영화가 실물로 되어 전개되는 것이다. 불가사의하고 재미있는 점은 말로는 나타내지 못한다. 먼 과거의 실경이 재현하여 오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고대 아틀란티스의 광경, 어떤 것은 고비 시대를 전하는 것, 어떤 것은 인류의 제 2기(북극 히파보레안 시대)를 현출하기도 한다. 거의가 모든 과거의 세계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그림은 실제 교육효과를 연출해 준다. 그림이 나타나면 남자 여자의 산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나서 서로 대화하거나 행동하거나 한다. 그래서 고대인이 말하는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잊을 수가 없는 한 영화는 사인(蛇人)시대의 광경이다. 뱀머리의 얼굴은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다. 전생에서도 본 일이 없는 것을 보면서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었다. 인류가 경험한 것은 모두 영화와 기록에 담겨져 있다. 이 광대한 방은 다른 흰 대 건물로 이어진다. 화이트 롯쥐는 12명의 의회로써 통솔되고 있다. 그 위에 한 사람의 장이 있게 된다. 12명의 각자는 12원칙의 하나씩을 외부 세계로 대향하게 하고 인간들은 그 원칙에 쫒아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대 아데프트들은 인간들을 12원칙, 바꿔 말하면(12종의 힘들) 중 하나에 맞추어서 활동케 하는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데다스가 화이트 롯쥐의 장이다. 궁전에는 둥근 천장이 넓게 퍼져 있다. 몇 마일 되는지 가로로 눈이 미치지 못한다. 거기에 들어가 보면 기백만도 넘는 수 없는 반딧불과 같은 것들이 보인다. 긴 제단을 내려가면 심의실이 있고 거기에는 아데프트들이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또 그 제자들도 함께 일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 반딧불들은 같은 정도의 빛남을 발하고 있는 빛들의 나열들이며 또 각 계단에는 한층 더 빛나는 빛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빛들은 극히 중요한 것으로서 지상에 사는 인간들의 혼의 반영이다.
모든 반딧불들은 지상생활의 인간여러분들이 정신적 발달에 관하여 이웃이나 벗들을 우롱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반영되고 있는 반딧불을 보고는 남을 매도할 수 없다. 그 반딧불은 여러분 스스로의 의식을 확실히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군의 의식대로 반딧불은 밝게도 되고 어둡게도 된다. 샴바라에는 이 빛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외부 세계에서 너의 정신적 전개가 향상되면 샴바라에서 그 빛은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난다. 너의 빛이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빛보다도 더 밝은 불꽃을 내면 너의 빛남과 같은 정도의 세계에 있어서도 그러한 단체에 가까워진다. 너의 빛이 휘황한 어느 정도에 달했을 때는 아데프트들이 "네가 대 교사와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고 또 외부 세계에 있는 아데프트의 제자와 접촉하게 될 차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설사 네가 사막에서 혼자 있든, 해상이나 산상에 있든 간에 그들은 너를 발견한다. 나는 15년간 세계의 끝에서 끝으로 가서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사람의 혼과 접촉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때 구하고 있던 것을 준 것이다. 한 번은 사람에게 50낱말을 하기 위해 7,000마일쯤의 먼 쪽으로 간 일이 있다. 고대의 말씀에 있다.
“제자가 준비가 되어 있으면 대사가 찾아온다.”
샴바라에서는 누구에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샴바라에 들어옴을 허가받은 신참자가 일시 시험받기 위해 외부 세계에 내보내진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생활하고 일하면서 한층 더 진보를 달성치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제자로서 샴바라에 들어감을 허가 받았다.
나는 때때로 스승이 바로 가까이에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데 실은 5,000km쯤 떨어져 있는 곳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신비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 동시에 두 곳에 자기가 있다고 하는 것은 제군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데프트는 두 곳에서나 1,000곳에서나 동시에 몸을 나타낼 수가 있다. 아데프트는 자기의 정신적 자력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사상 형식을 물질화시키는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같은 모습을 허다한 장소에 같은 시간에 나타내어 적절한 얘기를 하고는 그 사람들의 방응을 인상 받아서는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면 아데프트는 번쩍하는 일순간 사이에 가르침을 준 학도들의 반응을 인지하여 더욱 다른 어떤 일을 해주려고 한다. 위대한 존재자들은 대법의 지식에 의하여 자기를 증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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