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올린 글에서 플로티누스가 불교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화엄(華嚴)과 관련 있으리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화엄에 대해 간략히 정리된 글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화엄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대승, 소승, 탄트라(밀교), 선불교 등 각각의 종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특한 방법으로 전파해 왔었다. 그 중에서도 화엄종의 가르침은 불교의 어느 종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엄함과 현학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
<화엄경>을 보자. 불성의 심원한 신비와 무한한 부처의 세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현교 중에서 최상의 가르침이요, 최고의 통찰과 사상의 극치가 바로 <화엄경>인 것이다.
화엄의 ‘꽃으로 둘러싸인 화환’이란 원래의 의미는, 대승경전의 이름 속에서 이원성을 초월한 ‘최상의 깨달음’으로 승화했다.
‘말로 할 수가 없이 말 못할 것이 온갖 곳에 가득 차니 온갖 부처 세계 이루 다 말할 수 없구나. 무한의 티끌 세계마다 무한의 부처 세계 헤아릴 수 없고, 부처의 한 털끝에서도 말할 수 없는 정토가 드러나니. 가지가지 장엄함과 그 이름 말할 수 없고…가지 가지 기묘함과 그 아름다움 말할 수 없구나……. 한 순간 삼매에 들어 억겁에 일어나고, 억겁에 들어 한 순간 일어나며…현재에 들어 과거에 일어나고…. 과거에 들어 미래에 일어난다…’ <화엄경 중에서>
모든 세계들의 완전한 융섭과 몰입이 일어나고 시간마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하나가 전체 속에 전체가 하나 속에 있으며,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완전 해탈의 세계이고 상호융섭하는 세계이고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다. 이것이 화엄 세계이다.
이런 중중 무진의 화엄 세계의 장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 있으면서
그들이 망처럼 연결된 무한 그물
다음은 <화엄경>의 한 구절이다.
‘하늘 위 높은 곳 인드라신의 궁전 지붕위에는 작은 수정 모양의 보석형상을 한 무수한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복잡한 그물모양을 이루면서 여러 형태로 짜여있죠. 빛의 반사로 인해 이 일체의 보석들은 인간계의 대륙과 대양을 포함하여 전 우주를 반사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것들은 일체의 보석마다 반사되 되는 모든 상들을 빠짐없이 담고 서로를 반사하고 있습니다.’ <화엄경 중에서>
인드라망의 각각의 수정 모양의 보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사할 뿐 아니라 전 우주를 반사하고 있다. 우리의 우주는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있으면서 그 들이 망처럼 연결된 무한의 무한그물인 것이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경계의 신비’이며, 이것이 화엄의 연기(聯起)이다. 용수(Nagarjuna)는 말한다. ‘공하므로 모든 사물은 발생한다. 공하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서로를 포용하면서도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상호 의존하여 일어날 수가 있다.’
화엄의 연기는 분명 서양 철학의 인과론과는 다르다. 인과론이 최초의 제 1원인자를 설정하고 시간의 화살에 따라 진행하는 단순한 논리의 사슬 체계라면, 인드라망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융섭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
현대 물리학은 분명 인드라망의 세계관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양의 인과론은 괴델이 지적했듯이 논리 체계가 갖는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화엄의 연기는 인간 이성의 이율 배반적 한계를 극복한 초월적 논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먼지 속에 우주를 담을 수 있으며 한 순간은 전 우주의 역사를 담을 수 가 있는 것이다.
또, 미시의 먼지는 더 작은 세계를 담고 있으며 거대한 우주는 그보다 더 큰 우주속에 함축되는 양쪽으로 무한히 뻗어있으며, 시간의 화살은 의미를 상실하고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로 녹아있는 시공의 무한 법계 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 법계의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서 무한의 파노라마를 영원토록 연출하고 있는 감독이며 관객인 것이다.
불교신문 (2009년 2월21일) 조현학 전 EBS 강사
<화엄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대승, 소승, 탄트라(밀교), 선불교 등 각각의 종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특한 방법으로 전파해 왔었다. 그 중에서도 화엄종의 가르침은 불교의 어느 종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엄함과 현학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
<화엄경>을 보자. 불성의 심원한 신비와 무한한 부처의 세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현교 중에서 최상의 가르침이요, 최고의 통찰과 사상의 극치가 바로 <화엄경>인 것이다.
화엄의 ‘꽃으로 둘러싸인 화환’이란 원래의 의미는, 대승경전의 이름 속에서 이원성을 초월한 ‘최상의 깨달음’으로 승화했다.
‘말로 할 수가 없이 말 못할 것이 온갖 곳에 가득 차니 온갖 부처 세계 이루 다 말할 수 없구나. 무한의 티끌 세계마다 무한의 부처 세계 헤아릴 수 없고, 부처의 한 털끝에서도 말할 수 없는 정토가 드러나니. 가지가지 장엄함과 그 이름 말할 수 없고…가지 가지 기묘함과 그 아름다움 말할 수 없구나……. 한 순간 삼매에 들어 억겁에 일어나고, 억겁에 들어 한 순간 일어나며…현재에 들어 과거에 일어나고…. 과거에 들어 미래에 일어난다…’ <화엄경 중에서>
모든 세계들의 완전한 융섭과 몰입이 일어나고 시간마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하나가 전체 속에 전체가 하나 속에 있으며,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완전 해탈의 세계이고 상호융섭하는 세계이고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다. 이것이 화엄 세계이다.
이런 중중 무진의 화엄 세계의 장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 있으면서
그들이 망처럼 연결된 무한 그물
다음은 <화엄경>의 한 구절이다.
‘하늘 위 높은 곳 인드라신의 궁전 지붕위에는 작은 수정 모양의 보석형상을 한 무수한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복잡한 그물모양을 이루면서 여러 형태로 짜여있죠. 빛의 반사로 인해 이 일체의 보석들은 인간계의 대륙과 대양을 포함하여 전 우주를 반사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것들은 일체의 보석마다 반사되 되는 모든 상들을 빠짐없이 담고 서로를 반사하고 있습니다.’ <화엄경 중에서>
인드라망의 각각의 수정 모양의 보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사할 뿐 아니라 전 우주를 반사하고 있다. 우리의 우주는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있으면서 그 들이 망처럼 연결된 무한의 무한그물인 것이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경계의 신비’이며, 이것이 화엄의 연기(聯起)이다. 용수(Nagarjuna)는 말한다. ‘공하므로 모든 사물은 발생한다. 공하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서로를 포용하면서도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상호 의존하여 일어날 수가 있다.’
화엄의 연기는 분명 서양 철학의 인과론과는 다르다. 인과론이 최초의 제 1원인자를 설정하고 시간의 화살에 따라 진행하는 단순한 논리의 사슬 체계라면, 인드라망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융섭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
현대 물리학은 분명 인드라망의 세계관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양의 인과론은 괴델이 지적했듯이 논리 체계가 갖는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화엄의 연기는 인간 이성의 이율 배반적 한계를 극복한 초월적 논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먼지 속에 우주를 담을 수 있으며 한 순간은 전 우주의 역사를 담을 수 가 있는 것이다.
또, 미시의 먼지는 더 작은 세계를 담고 있으며 거대한 우주는 그보다 더 큰 우주속에 함축되는 양쪽으로 무한히 뻗어있으며, 시간의 화살은 의미를 상실하고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로 녹아있는 시공의 무한 법계 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 법계의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서 무한의 파노라마를 영원토록 연출하고 있는 감독이며 관객인 것이다.
불교신문 (2009년 2월21일) 조현학 전 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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