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윤회, 카르마, 영적 진화의 단계에 대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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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윤회, 카르마, 영적 진화의 단계에 대해...(1)

明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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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11:08:48 (*.162.8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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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윤회, 카르마, 영적 진화의 단계에 대해...(1)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거론되는 죽음이란 현상은 항상 윤회와 관련해서 이야기됩니다. 이제는 흔해빠진 대중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조차도 윤회가 재미있는 소재거리가 되고, 각종 TV 채널에서도 심령과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재가 다루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오컬트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의 왜곡되어 있고, 잘못된 것들이고, 기본적인 원리조차 이해됨이 없이 다루어지고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넘어서서 (역시 오컬트적으로) 악업(!)을 쌓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악업이라 함은, 인간 영적 진화를 가로막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악업이고,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영적 법칙의 하나가 바로 카르마의 법칙인데,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규정짓고, 그로 인한 결과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한 업, 즉 영적 진화에 유익한 행위를 하면 그에 따라서 이번 생이든 다음 생이든 자신의 영적 진화에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굳이 윤회나 카르마의 법칙이나 영적 진화를 문제삼을 필요도 없이, 어렸을 때 공부 열심히 하고 미래를 잘 준비하는 사람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유리한 환경을 만들 확률이 높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일정한 시간 동안 계속되면 건강을 해치고, 나아가서 일상생활 그 자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의 심판으로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고 한 것 같습니다. 카르마의 법칙은, 우리를 정죄하는 이는 어떤 초월적 실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임을 가르쳐줍니다. 

문제는, 한 생에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동감을 하겠지만, 한 생에 확인할 수 없이 기약할 수 없는 미래, 즉 미래생에 확인하게 되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 카르마의 법칙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태평양 한 가운데서 바닷물 한 컵을 떠서 그 물 속에 한강의 불이 얼마이며, 미시시피 강의 물의 얼마이며, 나일강 물이 얼마인지 구분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려는 온갖 전생담이나 윤회설은 그 정확성에서 거의 왜곡된, 심지어는 실재하지도 않는 환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DK 대사는 카르마의 법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보통 세계의 주님으로 일컬어지는 우리의 상상 자체를 부정하는 초월적 영적 존재들에게나 가능하다고 합니다.

윤회의 문제는 비단 불교와 같은 동양적 종교전통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력하게 윤회를 부정하는 기독교조차 그들의 성서에 윤회에 관한 명백한 증거가 나오고, 지금의 성서가 확립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초기 기독교 내에서는 윤회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고 믿어지고 연구되어졌다고 합니다. 성서 곳곳에 윤회와 관련된 말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분인데, 세례 요한을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의 환생이라고 언명하는 부분에서는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곧 예수조차 전생의 누구누구였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앨리스 베일리의 저서에서는, 예수의 전생 중의 하나를 구약의 여호수아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의 영적 경지는 제 3 이니시에이션의 단계를 통과한 영적 수행자였다고 말합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에 관련되어서 흔하게 확인되는 신격화를 제쳐두고서 생각하면, 어떤 존재도 윤회와 카르마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적 진화는 바로 그런 시간성 속에서 진행되는 엄연한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신지학 관련 학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힐라리온 대사(과거 사도 바울이었다고 함)의 한 서신에서는,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의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윤회사상을 삭제해버리고 사람들에게 인식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큰 업보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윤회사상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영적 진화를 더디게 했고, 가로막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죽음은 필연적으로 다음 단계의 존재형태를 준비하는 사건일 뿐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음 단계의 존재형태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다른 육체의 인간으로 물질계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이끌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육체보다 더 미세한 아스트랄체나 멘탈체, 혹은 그보다 더 미세한 부디체의 몸으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각각의 체들은 복잡한 상호연관성 속에서 나름의 변화를 겪으면서 진화해가고 있는데, 물질계의 놀라운 점은 다른 체들이 관계를 맺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달리 다양한 영적 진화의 존재들이 같은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엄밀하게 말하면, 반대로 모두가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인간의 영적 진화의 단계는 일반적으로, 육체/에텔체→아스트랄체→멘탈체→부디체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일직선적인 단순한 시간적 단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적 단계가 위의 체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영적 진화의 초기는 주로 육체-에텔체의 통제와 발달을 목표로 진행되는데, 거의 동물과 차이가 없는 단계라고 할 수 있고, 개별적 영혼의 영적 진화라고 할 수 조차 없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약하나마 개별적 영적 진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단계는, 육체와 에텔체의 통제와 발달이 어느 정도의 발달에 이른 뒤에 발달하기 시작하는 아스트랄체의 등장입니다. 그것은 감정적 정서적 통제가 필요한 시기로 인간의 지각경험은 보다 더 다양해지고 깊어집니다. 인간의 의식이 조야한 물질적 세계에서 보다 더 미세한 영역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스트랄체가 어느 정도(어느 정도라고 하지만, 매우 많은 수의 생을 반복해서 윤회하는 것을 말하지만) 발달되고 통제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마나스의 원리, 구체적으로는 멘탈체의 등장이 이루어지는데, 이 시기야말로 본격적인 개별적 영적 진화의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적 원리가 발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해 주는 중요한 영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체가 발달될 때는 하위 속성의 체들이 먼저 발달되는데, 멘탈체의 경우에서도 하위 멘탈체의 기능이 먼저 활성화되어서, 아스트랄체의 고유한 속성인 욕망의 도구로서 기능을 합니다. 그것을 보통 카마-마나스라고 합니다. 상위멘탈체의 기능이 활성화되면, 고도의 지성적 통찰이 가능해지는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인데, 현재까지는 극소수의 인류만이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상위 멘탈체의 속성 중의 하나는 개별성을 넘어선 보편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개인적 만족이나 관심사보다는 전체의 발달과 진화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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