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heosophy.or.kr/index.php?mid=freebbs&page=16&document_srl=12578
明水
http://theosophy.or.kr/index.php?document_srl=12578
2007.05.21 20:01:43 (*.94.248.151)
7182
한 달 쯤 전에 현재 닝마파에서 가장 높은 어른으로 인정받는 출식 린뽀체께서 네팔에서 인도 다람살라에 오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그 분께서는 연세가 80세가 넘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지난 겨울에 한국 스님 한 분께서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네팔로 가셨었는데, 출식 린뽀체께서는 높은 산에 있는 동굴에 안거수행을 하러 가셨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다람살라에 오신다고 하셔서 특별히 친견시간을 요청했습니다.
80세가 넘는 노구에 험악한 산 동굴에서 안거수행을 하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스님들과 다람살라에 머물면서 불교공부를 하고 있는 재가자를 포함해서 30여명 가까이 되는 한국분들이 그 분을 친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친히 린뽀체께서는 30분 정도의 바쁜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한국 사람들만 친견해 주셨습니다.
린뽀체께서는 현대 티벳이 낳은 가장 위대한 스님 중의 한 분이신 딜고 켄체 린뽀체의 수제자로서 족첸과 마하무드라를 평생 수행해 오셨다고 합니다. 모두들 지극한 정성으로 삼배를 마치고 정좌한 다음에, 통역을 하시는 한국 스님이 "선정 수행" 즉 "사마타 수행"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린뽀체의 답변은 매우 뜻밖의 법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선정수행보다는 먼저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스님들이 모두 하나같이 십년, 이십년 이상 승려로서 지냈던 분들이고, 재가자들 역시 불교굥부에 열심인 사람들인데, "삼보에 귀의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이 의아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분은 결국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말씀하시고, 끝으로 보리심이 무엇인지 말씀하시고 법문을 끝내셨습니다.
평생을 수행과 공부로 일관해 오신 분이, 삼보의 중요성과 보리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종교적 삶이 무엇인지, 불교적 수행이 무엇인지 가장 간결하게 말씀하신 것 같은 감명을 모두 받았습니다. 끝으로 20여년을 수행에 전념해 오신 한국의 비구니 스님이 "족첸"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린뽀체께서는 결국 족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로서는 닝마빠의 최고 수행이라 알려져 있는 족첸에 대해 묻고 듣기 위해서는, 그 만큼 수행의 준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족첸이 무엇인지, 마하무드라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직접 그 수행을 받아들여서 그 수행에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사람에게, 즉 삼보에 진정으로 귀의했고 보리심을 진심으로 일깨운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가르침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인도에 와서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몰라도, 매일 같이 한 시간씩 근 한 달이 넘도록 17대 까르마빠 존자님을 만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까르마빠 존자님을 만나려면 왕복 3시간을 고생을 해야 하는데 한 달이 넘는 수고 끝에, 17대 까르마빠 존자님으로부터 직접 제 3대 까르마빠의 마하무드라 게송 구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극한 예를 다해서 삼배를 올리고,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현재 다람살라에서는 달라이라마께서 사원을 가득 메운 자격있는(특정한 탄뜨라 경전을 읽고 공부하려면 먼저 그 탄뜨라와 관련된 소정의 관정의식을 받아야만 합니다) 승려들과 재가자들에게 구햐사마자(비밀집회) 최상승 탄뜨라 경전 구두전승을 하고 계십니다. 무려 12일간에 걸쳐 500페이지가 넘는 경전과 주석서를 읽어주시는 전승입니다. 달라이라마를 마주보고 까르마빠와 샤까파의 법왕이 마주 앉고, 탄뜨라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승려들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관정을 받지 않았기에, 법회에 참석할 수가 없지만, 우연히 사원 근처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희미하게 들려오면 그 감화는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평생을 수행과 보살행으로 살아오신 고귀한 존재의 육성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눈물이 나도록 깊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자주 만나 뵐 수 있는 까규의 한 린뽀체께서는 딜고 켄체 린뽀체의 제자로서 평생을 족첸과 마하무드라 수행에 바쳐오신 분이지만, 선듯 마하무드라가 무엇인지 족첸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어렵습니다. 최소한 내가 어떤 질문을 그 분에게 하면, 그 분이 해주시는 대답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하겠기에 결코 쉽게 질문할 수 없다는 느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심지어 불교 수행이 무엇인지조차 질문하기도 어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에게 마하무드라가 무엇인지 족첸이 무엇인지, 중관에서 말하는 공이 무엇인지 물으셨지만, 평생을 수행과 공부에 바쳐온 분들조차 그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삼가하셨는데, 저 같은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수행자가 어떻게 마하무드라가 무엇인지 족첸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숱하게 읽은 마하무드라와 족첸에 관한 정보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의미없고 공허하겠습니까? 때로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벅찰 때가 있고, 보리심을 일깨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합니다. 불교는 수행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수행은 반드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삶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종교적 수행과 공부가 그런 것입니다. 진리는 결코 개념의 유희도 아니고, 새로운 세계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그 세계의 삶을 직접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의 대부분의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인간이 윤회를 하는 것은 습, 즉 업의 결과라고 하는데,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데,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업을 정화해야하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새로운 업을 쌓아야만 하는데, 그것은 곧 생활과 삶을 바꾸어야 함을 말합니다.
마하무드라와 족체은, 수행에 온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생활을 바꾼 사람만이, 즉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고 또 이룰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것도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직접 그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고, 받은 가르침을 헛되이 소홀히 하면 그 과보가 스승과 제자 모두에게 미친다고 합니다.
밀라레빠로 유명한 티벳불교의 까규파의 최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 수행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사가행을 마쳐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십만 배의 오체투지와 금강살타 관상과 만트라 암송을 십만 번 해야 하고, 만달라 공양과 구루요가를 또 그 만큼 해야 합니다. 가장 힘든 것은 오체투지로서 보통 사람은 4, 5개월 동안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 그리고 간단한 휴식 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절에 임해야만 십만 번을 끝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가행을 마친 것만으로도 마하무드라 가르침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분 한 분이 린뽀체께 물었습니다. 언제까지 사가행을 해야 하느냐고. 린뽀체는 "보리심이 일깨워질 때까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본수행에 들어갈 수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승의 어떠한 말 한 마디라도 그대로 부처의 말로서 받아들여져서 그대로 실천에 옮겨질 때만이 진정으로 스승의 존재성이 있고, 그런 스승과의 관계만이 깨달음을 가능케합니다. 출식 린뽀체나 기타 제가 인도에서 만나 뵌 몇몇 린뽀체들이 그런 스승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평생을 수행과 보살행에 바쳐온 분들이라고 합니다.
석가 세존의 가르침을 자신에게 맞춰서 이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삶을 세존의 가르침에 맞추어야 합니다.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과 삶의 우여곡절에 맞추어서 이해하는 한, 결코 어떤 진정한 영적 경험도 이해도 힘듭니다. 그 분들의 가르침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서 변화를 주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이고, 진정으로 불교수행에 들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거기에 맞추어서 살 때 비로소 세존의 가르침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수행은 내밀한 경험의 세계이고, 쉽게 타인에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함으로써 크나큰 과보를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경험의 세계입니다. 내밀한 경험의 세계를 공유하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도반이라 합니다. 영적 수행에 입문한 자는 입문하지 않은 이들에게 말하기를 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하무드라의 스승들은 모두 그런 내밀한 경험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전했던 분들입니다.
현재 많은 마하무드라와 족첸의 자료들이 공개되어 있어서 몇 푼의 돈과 시간만 있으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어느 것도 마하무드라가 아니며 족첸이 아닙니다. 마하무드라와 족첸은 평생의 수행을 통해 그것을 닦고 구현한 내밀한 세계에 중심을 두고 있는 수행자들의 몫입니다. 여기서 수행자라 함은, 더 이상 사유의 세계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활을 바꾸고 직접적인 스승에 대한 헌신과 명상수행을 통해 생생하게 내밀한 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는데 삶을 바친 자들을 말합니다.
인도에서 인터넷을 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별 내세울 것 없는 공부와 수행으로 마나스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는데, 한 때 마나스와 긴밀한 인연을 맺은 관계로 두서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적 생각을 쓰게 되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참작하셔서 읽어주셨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기회가 닿으면 다른 개인적 생각을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1 개의 댓글:
Write 개의 댓글글을 읽으며 어떤 분이신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글 처음에 붙여놓으시는 링크는 마나스 스쿨 홈페이지에 이어지는데 어떤 단체인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어쨌든 글 잘 읽고 간다 흔적 남겨봅니다...
ReplyEmoticonEmo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