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링에 대한 오컬트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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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링에 대한 오컬트적 이해

明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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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2:47:15 (*.162.8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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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사년 전부터 국내에 채널링 계통의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국내에 아직 소개가 되지 않았던 채널링 계통의 정보들을 몇몇 지인들과 함께 검토하면서 무척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일단 그런 자료들은 유보하고, 보다 더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자료들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내용들은, 초자연적/초월적 힘들과 인간 이외의 고도로 발달한 외계의 존재들, 종말론적인 서구인들의 뿌리깊은 집단 무의식,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배타성, 천사와 악마로 대변되는 대립적 구도들입니다. 그런 내용들 이면에는 서구인들 특유의 집단 무의식과 신화적 이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주의할 것은,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내용(그런 자료들 거의 대부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비성과 초자연성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을 담고 있는 자료들이, 특히 뭔가 정신세계와 관련된 현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나름의 특수한 개인적 집단적 상념체들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들의 특수한 개인적 집단적 상념체들이 현대에 들어서 상당한 기간 동안 진행된 국제교류와 문화교류를 통해서, 특히 최근 십오년 정도에 폭발적으로 증가된 인터넷망을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정보통신망이 발전된 전세계인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미 태어나서부터 전통적 사고방식과 유리된 채 서구의 문화에 집중적으로 주입당하는 한국인들(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도 무관한 상념체들이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각종 대중매체의 흥미있는 소재거리이면서, 각종 버스터급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거리라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지학에서 사용하는 상념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이고 신화적인 풍조가 다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데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신지학의 표현을 빌면 물질이 아니라 사상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채널링 정보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상념체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말론적인 사상입니다. 서구 기독교(보다 더 멀리는 기독교가 태동할 당시의 종교적 사상들까지)의 종말론적 해석이 서구인들의 의식을 지배한 것이 이천년이 되었습니다. 이미 특수한 개별적 상념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상념체(기독교적 종말론에 관련된 상념체도 인류의 의식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보다 더 근본적인 상념체에 비하면 무척 제한된 범위의 상념체입니다)라서, 거대한 괴물처럼 집단성을 띠기 때문에, 그 사정권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고도의 지성적 분별과 비판적 능력이 없으면, 자국의 선수들이 경기하고 있는 열광하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팔짱을 끼고 차분하게 경기를 관람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채널링 자료의 대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은, 인류의 타락과 그에 따른 심판인데, 현대의 심판 개념은 다분히 과학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우주적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는 성질을 띠고 있고, 기존의 감성적 종교적 일신론에 근거를 둔 종말론보다는 외계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에 근거를 두는 조삼모사적 발상이 지배적입니다.

둘째, 종말론적 시각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상념체는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않은 자라는 지극히 배타적인 선민의식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유대민족의 민족적 선민의식은 그 정점에 이르는데, 비극적이게도 그런 유대의 선민의식이 보편성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해석하는데 적용되어서, 심판받는 자와 구원받는 자라는 구약적 구원관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유대민족의 배타적 선민의식이 빚은 악업의 댓가가 바로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과보로 이어졌다고 앨리스 베일리의 저서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견해가 일반적인 평가에 배치되는 듯한데, 어디까지나 카르마의 법칙에 근거한 견해이기 때문에, 카르마의 적용은 일반인들이 당연시하는 판단과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신앙체계와 교주를 영접하고 헌신하면 세세토록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관은 그대로 채널링에도 적용되어서, 특정한 초월적 힘들과 외계의 발달된 존재들과 연결되어서, 그들의 지시를 잘 이행하고 준비하면 대재앙때 일신을 보전할 수 있고, 놀라운 영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현대판 선민의식인 셈입니다.

셋째,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입니다. 빛과 어둠, 천사와 악마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세계 종교의 반을 지배하고 있는 상념체로서, 특히 유대적 전통에 근거한 일신론적 사상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지난 이천년의 기독교는, 결코 대립적 이분법을 적용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보편적 가르침이 일신론적 사상으로 도배질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정한 교리체계를 따르는 사람은 선한 세력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그냥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해서)은 악한 세력이라는 피상적인 이원론(오컬트적인 관점에서 본 피상적 이원론)은 투쟁적이다 못해 폭력성까지 띠고 우리의 구체적 삶에 적용됩니다.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의 문제점은, (오컬트적으로 보면) 카르마의 법칙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자신이 창조한 대립적 상념체가 여러 생에 걸쳐서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너희의 판단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심오한 오컬트적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는, 과거에는 유일신과 사탄의 대립이었다면, 현대의 채널링은 일단의 지구인들과 외계 혹은 초월적 영향력을 받고 있는 특정한 사람들의 대립적 구도로 펼쳐지고, 마치 한편의 SF 공상과학 영화를 보듯이(실제로 많은 채널링은 SF/판타지 영화의 영향을 받고, 동시에 그런 영화에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우주적인 물리적 대결로 설정되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쏟아져나오는 신비학 관련 문헌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더욱 그 상념체들을 다채롭게 채색해서, 심오한 듯한 종교적 가르침과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다른 차원들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세력 다툼, 고도로 첨예화된 과학지식과 우주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구인들에게 신비하기만 한 동양적 세계관까지 접목되면서,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상념체가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인류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소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까지 치부되면서 공교육에서 당연시되면서 가르쳐지고 있는 상념체들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넷째, 채널링 정보들이 갖고 있는 감성적 차원입니다. 앨리스 베일리 저서에서 숱하게 말해지고 있는 아스트랄체와 아스트랄계가 바로 그런 차원인데, 채널링 정보들의 거의 대부분이 낮은 차원의 아스트랄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성질에 수반되는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영성적 만족, 두려움의 증가, 죽음에 대한 감정적 반응, 현대 세계의 급속한 변화와 복잡한 교류에 지성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감성적 자기방어, 무분별한 과학적 지식의 채용, 지성적 우월감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영성을 위장한 감성적 차원의 우월감.....전형적인 아스트랄적 반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널링 정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앞에서 말한 집단성인데, 아스트랄체의 특징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집단성입니다. 자신이 속하고 있고,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 내지는 집단에 대한 귀속감은 아스트랄 속성의 하나로서, 인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속성입니다. 지성적 원리가 발달되는 시점이 개별적 사고능력의 시작에 있다고 한다면, 아스트랄적 속성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인류의 주기상, 인류 대다수가 주체적으로 지성적 사유를 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채널링 관련 정보들을 지배하고 있는 상념체들은 별개의 상념체들이 아니라, 사실은 인류 전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광범위한 상념체들의 부록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경미한 것들입니다. 모두가 당연시하면서 의심하지 않는 상념들과 개념들, 그런 모든 것들이 상념체들이고, 그 속에서 무시이래로 우리가 살고 있고, 그런 상념체들의 결과물이 우리의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채널링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보다 더 근원적인 접근과 탐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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