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 샴바라 (10) - 우주의 7 광선과 샴바라에 대한 명상

성(聖) 샴바라 (10) - 우주의 7 광선과 샴바라에 대한 명상

허공|12.10.30|282목록댓글 4가가

13. 우주 전파의 교통

 

지하 샴바라 초인들의 밀교학에 의하여 우주 전파의 교통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잠깐 본다는 것은 극히 흥미 깊은 문제인 것이다.

 

초인들은  우주 전파를 크게 셋으로 나누고 있다.

 

포하트, 프라나, 쿤달리니의 3종이다.

 

포핫트는 7대 우주선이고, 프라나의 종류는 인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만 5종류(프라나, 사마나, 아파나, 우파나, 우다나)이며, 우다나는 두부를 지배하고 프라나는 목으로부터 심장까지의 사이를 지배하고 아파나는 배꼽부터 아래를 지배하고 우파나는 전신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쿤달리니는 척추 밑에서 음양 둘의 전파 미립자의 흐름이 합하여 발하는 화력으로서 생물 일체를 기르고 인간을 초인화 시키는 것이다.

 

우주 전파는 3밀(密)의 법칙으로 교류하고 모두 신의 관념을 인상지어 주며 흐르고 있다.

 

1) 큰곰자리별에서 흘러오는 전파는 태양 로고스의 의지목적과 관계가 있고 인체에 흘러들어 모나드를 활성화 시킨다. 이것이 인간의 최고 신비로 지고의 비전을 받지 않으면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나드의 활현으로 인간은 사나트 쿠마라의 체험계로 솟아 오른다.

 

2) 시리우스로부터 오는 전파는 태양 로고스와 관계하며 위대한 존재자에 혼을 각성시켜주고 지혜와 사랑을 활현시켜 준다. 이 전파는 샴바라의 초인 대사들의 정신을 고무시키고 그 다음 인간으로 흘러들어 온다.  지구의 샴바라는 시리우스의 대 샴바라의 반영이고 양자의 사이에는 밀접한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구 샴바라의 영왕 사나트 쿠마라에 의하여 반환되고 있는 힘의 봉은 시리우스 별의 로고스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시리우스는 우리들 인류의 눈으로는 이따금 동쪽 하늘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우리들 인류의 눈으로는 이따금 동쪽 하늘에서 볼 수가 있는 별이나 실은 우리 태양보다 2배의 크기로 그 밀도는 태양의 10배 쯤 된다고 한다.

 

힘의 봉이 사나트 쿠마라의 손에 쥐어지면 인류들 가운데 비전을 받게 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 봉이 종종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갈 때는 그 사이 지구의 활동이 타성을 띠게 된다.

 

3) 플레이아데스로부터 오는 전파는 7종의 전파를 합친 것으로서 인간 각인의 활동적 지력을 자극시켜 준다.

 

이상의 3대 거성 사이는

삼밀(三密) 관계로 전파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파는 또 다음과 같이 3밀 법칙으로 교통하고 있다.

 

1) 대응성의 전파는 아리스(백양궁)와 프루토우 별 사이를 교류하여 샴바라에 흘러든다.

2) 시리우스의 전파는 레오(사자궁)와 목성의 사이를 환류하여 하이어라키에 흘러든다.

3) 플레이아데스의 전파는 큰 게 자리와 금성과의 사이를 환류하여 직접 인류에 작용하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체내에는 이들 전파가 그 사람의 자기훈련도에 따른 유입으로 체내 에너지의 중심을 통하여 육체의 내분비샘에 작용하여 발전 화학 작용을 일으켜 우리들의 육체적 지적 영적 진화를 촉진시켜 나간다.

 

대웅성(북극 쪽)은 7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들을 7명의 성현이라고 한다. 플레이아데스도 일곱 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을 7명의 자매 또는 7성현의 아내들이라고 부른다.

 

7대 우주선은 샴바라와 하이어라키를 통하여 우리들의  다음의 기능들을 발달시켜 준다. 또 7대 우주선의 기능은 하이어라키의 7대 성에 의하여 대표되고 인류 각자는 모두 7대성의 한 명에 속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 1 우주선 (광선)

의지, 결단력, 용기(내구력), 창조력, 파괴력을 떨치는 에너지이고 지구 영왕 사나트 쿠마라가 그 대표적 존재이다. 신종(新種)의 창조적 진화와 진화에서 버려진 구형을 두드려 부스는 위력을 발휘한다.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대륙을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시킨 힘은 사나트 쿠마라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쿠마라의 보좌로서 제 1우주선을 대표하는 자가 마누이고 마누의 후계자로서 같이 함께 이 광선에 소속되는 7대성의 한 사람이 모리아 대사이다.  우리들은 인간이 의지력 결단력 용기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나트 쿠마라 및 모리야 대사의 거룩한 힘의 반영인 것이다.

 

제 2 우주선

지혜와 사랑을 진화시키는 우주력이며 사나트 쿠마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사(至士)의 부다인 닐마나카야나 제불의 특성으로 나타나고 구세주와 하이어라키 7 대성중의 한 대사인 쿠트후미에 의하여 대표된다. 쿠트후미의 후계 대사가 듀알컬 대사이다. (현재는 란토 Lanto 대사가 맡고 있다고 한다. )

 

제 3 우주선

제 3우주선은 계획 정치적 지능이 되고 있는 마하초우한이 이 에너지를 대표하며 7대성의 한 사람으로 베네치안 초우한이 하이어라키에 있어서는 이것을 대표한다. 

 

제 4 우주선

조화미, 종합적 통일애가 되는 에너지로 우리들에게 예술적 천품의 인스피레이션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대표가 7대성의 한 사람인 세라피스 대사에 의하여 대표된다.

 

제 5 우주선

과학적 연구실, 발견, 발명력을 자극하는 에너지로 근세 과학에서 우주선이라고 하는 것이 이 제 5우주선이다. 이것을 7대성의 한 사람인 힐라리온 대사에 의하여 대표 된다.

 

제 6우주선

비전이 되고 높은 동경심을 불러 우리들의 희망이 되는 에너지로 7대성의 한 사람인 예수에 의하여 대표된다.(예수 대사가 세계의 교사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현재, 이 초한은 마스터 레이디 나다 대사가 맡고 있다고 한다)

 

제 7 우주선 

우리들에 불가항력 마력을 부여하는 올바른 진로에서 승리를 얻게 하고 악을 질식시키는 에너지로 개개 인간을 통일된 단체로 통일시켜주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 존재가 7대성중의 한 사람이 생 저메인이다. 이 에너지는 경건무사의 의식을 통하여 단체적으로 인간에게 활현한다.

 

 

14. 샴바라를 명상하며

 

도공은 돌림대를 돌려서 흙으로 도기의 원형을 만들고 그것을 불에 구어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 낸다. 겨울에 벌거벗은 초목은 봄이 되면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영글게 한다. 만물은 일직선으로 유통해 가는 것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성쇠가 되풀이 된다. 

 

“화성도 수성도 본래는 큰 태양 이었다. 또 언젠가는 큰 태양이 된다.”라고 성전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운명도 호운 불운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나고 죽음은 더욱 크게 유전된다.  역사가가 역사를 일직선의 진행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 

 

오늘의 인류는 2300년 전의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학문을 되찾아가고 있는 길이다.  로마 황제에 의하여 없어진 알렉산드리아의 학문도 사실은 더욱 더 먼 동양 고대의 대 원천까지 소급해 가야 한다. 우리들은 잃어버린 고대의 대 지혜에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리쉬, 카피라, 오르페아스, 토트, 에녹들은 고대의 사광으로서 나타난 신인(神人)들이었다. 그 사상, 지능의 위대성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아직 상상해 봄이 불가능하다. 그 사람들의 뇌세포는 오늘날의 학자들의 뇌세포와는 달랐다.

 

우리들의 뇌세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주기적 진화도상에 있다. 주기적 진화의 돌림대는 지금 신인종의 원형을 창조 중에 있다. 이것은 불에 굽혀서 진짜 도자기로 되는 것처럼 우리들도 고난에 시련 받아 정화되어 리쉬나 오르페아스처럼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오컬트 사이언스라고 하는 비전 과학이며 요가이다.

 

샴바라는  오컬트 사이언스와 요가의 숨은 센터이며 돌림대로 인류를 회전시켜 가고 있는 진화의 동력원이다. 지금은 소수의 신비적 직감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샴바라를 알고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샴바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우주 전원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있을 리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야만인의 편에 들겠다는 얘기이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의 리드비터는 샴바라의 영왕 사타트 쿠마라에 소명 받아 쿠마라를 뵙고 왔다. 광휘 찬란한 16세 신체의 영원한 젊은 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 3비전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신력이 약해서 사타트 쿠마라의 거룩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각설하고 천천히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때때로 고요한 시간을 나누어서 자기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무엇인가 마음의 줄에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모든 지식중의 기본 지식이다.”고 고대 신인들은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의 델피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들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자기를 알았다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곤란이나 장애가 있어도 어떤 불행에 빠져 있어도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좋겠는가가 밝혀질 것이다.

 

내가 열세 살 때 늦가을 낙엽 지는 나무 아래서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고 “그렇다!”고 생각이 미쳤을 때 기쁜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린 일이 있다. 신성한 떨림을 느낀 기쁨이 눈물이었다. 그 때의 느낌이 아직도 나의 중심에 진동하고 있다.

 

오컬트 사이언스나 요가를 시작한 최초의 출발점은 그때의 종자가 싹을 튼 것이었다. 신비 사상에 동경하여 종교의 경전을 엿보겠다고 젊은 시절부터 힘들게 길을 밟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책의 시편 속에는 “내가 어릴 때였다.”는 여섯 내지 일곱 살 즈음의 추억을 그린 것이지만 열세 살이 되자 그렇다고 생각은 들었으나 막상 어린 마음의 빛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승 없이 시간을 낭비했었다.

 

스승이 없으면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은 진실로부터 멀어져 미아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미로에 빠져 있다.  

 

종교적 진리를 구하면서 미혹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마음은 점점 굳어진다. 그러면 본심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게 되고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 자기와 함께 세상의 일도 모르게 되고 대 예언의 참 의미마저도 못 믿게 된다.

 

자기를 안 순간 우리들은 위대 정묘한 것에 각성하기 시작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스승이 말했다. “사람은 흔히 나는 성격이 약하고 지능이 나쁘고 불행하고 나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따위의 말을 잘한다. 약한 것, 둔한 것, 나쁜 것, 불행한 것 등은 습관이고 잘못된 관념이지 자기 자신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여기 저기 타인의 의견을 찾아다니지만 정묘하고 진실한 것은 내 안에밖에 없다.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어디까지나 깊이 파고들면 무엇인가의 조짐이 미묘하게 나타나 오는 법이다. 거기에서 더욱 더 깊이 파내려가 생각하면 문지방을 타 넘고 들어오려는 천사(직감)가 보일 것이다. 점점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세상의 어떤 일도 알 수가 없다. 자신과 세계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모르면서 세계의 일을 알아보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이 자기를 안 순간은 우주의 전파가 내 안에서 스파크를 한 순간이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내 신체 안에는 우주 전파의 활선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 활선을 통하여 전류가 불꽃을 튀기게 되면 자아 그 자체의 의식이 각성하기 시작한다. 우주의 초점이 내 안에서 타오른다. 우주는 항상 내 안에서 출현해 나오려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고요히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문 앞에 멈춰서 주님이 기다리시는 것이다. 고요히 깊이 생각하는 일은 구세주가 우리들의 안에 있는 문을 노크하고 자아 신을 각성시켜 주시는 일이다.  각성하기 시작한 신이 바로 자아 신인 것이다. 지상아(至上我)는 신이다.  어떤 불행이든 약해진 것이나 악이라는 것이나 그따위 것은 광명 없는 곳에 생긴 곰팡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은 여기 저기 스승을 찾아다니고 갖가지 책을 읽으며 말한다. “아무리 해도 진리를 파악할 수가 없다 어디에선가 진리를 손에 쥐어 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진리는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둑이나 강도라면 재산이나 보물을 덜 수 있겠지만 진리는 그런 식으로 잡을 수가 없다. 때문에 박티, 즈나나, 카르마, 쿤다리니, 라자 등의 요가 모두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세상을 한 평생 찾아 돌아다녀 보아도 진리를 부여할 스승은 만나지 못한다.

 

박티 요가는 인생의 고뇌 끝에 계시된 것으로서 안의 신을 발견하는 통일의 법칙이다. 법칙은 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것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꿇어 엎드려서 울어라. 신에게 구원을 구하고 구하여도 울 수 있다면 신이 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라고 박티 요가의 법칙은 말한다.

 

또한 즈나나요가는 말한다.

“부다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었는가? 내 의식 안에 각성하기 시작한 진실 된 것 이외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있는 것은 없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닌가? 안에 있는 진실의 의식을 못 만나게 되는 일은 없다.”

 

카르마 요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을 하든지 보수를 구하여 하지 말라. 일은 너의 의무이다. 더구나 유한성의 것이다. 유한에 집착하는 일 없이 초연하게 의무를 행하고 있으면 된다.”

 

쿤달리니 요가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너의 안에는 우주의 전류가 스파크를 발하며 너를 신으로 변화시켜 주는 설비가 돼 있다. 때문에 부지런히 호흡기술로 단련을 거듭하면 우주적 스파크를 발하게 되니 너는 신을 알고 자아를 알게 된다.”

 

어떠한 수단도 희망도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회한의 생각이 뼈에 사무치게 될 즈음에는 하루 밤 조용히 앉아서 일체의 다른 생각을 털어버리고 깊은 호흡을 한 후에 행로를 위하여 절대 기원을 박아 보라. 하루 밤으로 안 되거든 일주일이라도 2주일이라도 심기 새롭게 행로의 절대 부동의 일심을 전 집중해 보라. 언젠가 목표의 비밀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잠겨있는 보물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 그것에 도달하는 수단도 지혜도 동시에 나에게 밝혀져 나타난다.

 

자기가 허위 속에 살고 있으면 진실한 것의 인식이 불가능하다. 내 안에 일어나는 우주 전파의 스파크는 샴바라에 반영되어 뜻밖의 l기회가 나에게 도래한다. 이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스파크가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자석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알 수 없고 어떤 이론을 아무리 떠 벌려도 허위의 진열 밖에는 안 된다.

 

우리들의 육체에는 샴바라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몇 줄기 마련되어 있다. 관자놀이, 손바닥 중앙, 비장, 태양총, 손가락 끝, 척추의 상부, 미간 등이 이것들이다.

 

   

암상의 명상

 

전후 황폐한 언덕 위의 바위를 내 혼의 왕좌로 삼아 여름도 겨울도 명상하기 5년 암상(岩上)에 정좌할 때마다. 프라나야마의 호흡을 되풀이 시선을 한 송이 꽃에 두고 일심으로 다라나를 하고 있으면 환상 속에 대 암산이 나타나고 꽃은 한 점 암산의 빛이 된다. 그 빛을 가만히 보면 어느새 내가 빛이 된다.

 

장엄한 영관을 이고, 지고의 충성을 신에게 다짐하며, 자! 우주 경륜에 봉사코저, 신의 불꽃 속에 우뚝 솟은, 불생불멸의 고대아를 본다.

 

겨울 메마른 언덕의 암반에 눈보라를 맞으면서 이른 아침부터 심신 삼매하여 마른 풀새의 작은 풀잎을 보노라면 녹색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마른 풀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녹야로 변한다. 일심 응시의 풀싹은 빛이 되어 빛나온다. 숨을 서서히 뿜으면 암반 위의 몸은 사리지고 나는 빛의 초점 속에 녹아 버린다. 빛의 초점에서 우주로 광명의 손을 펴는. 오오! 천수관음의 실상이 내가 되어 우주에 있다. 만물이 내 촉수에 의하여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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