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 대의 15. 크리스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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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15. 크리스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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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 이웃추가 | 2011.12.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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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트교

 

 

신지학 원리 안에는 본래의 진정한 크리스트교에 반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오류에 찬 일반 신학과 화합할 수 없는 측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원전에 매우 큰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이 현대 신학이지만 사실상 내가 보기에 그것의 바탕은 한두 개의 텍스트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같다. 신학자들은 어떤 하나의 것을 채택하고 거기에 특별한 해석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동일한 성경 내의 다른 텍스트의 명백한 의미와 직접적으로 상반되기도 한다. 물론 성경에는 모순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그만한 부피의 책이면 어떤 것이든 그 정도의 모순들은 있게 마련이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오랜 시대에 걸쳐 씌어진 것이다. 따라서 기자(記者)들 역시 각기 다른 지식이나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성경 속에 있는 모든 진술들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의 이면 속으로 들어가서 당시의 스승이 그의 제자들에게 주었던 본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분별력 있는 크리스트 교인이라면 세계에 현존하는 다른 번역판들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이성과 상식에 따라 그것들을 판단하는 것이 그의 의무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모든 크리스트교인들은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로마 카톨릭이든, 영국 국교회든 감리교든 택하고 있다. 크리스트교의 여러 교파들 또한 자기들의 유일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성경에서 근거를 인용하여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반 평신도가 그들의 경쟁적 주장들 사이에서 진정한 정통 교파를 골라낼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그러한 문제를 전혀 고러해 보지도 않고 자기 아버지가 믿으니까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조사해보고 자기 판단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에게 한두 개의 원전에 의존하기보다 다른 모든 원전들을 조사해 보도록 권유할 경우 그것을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태도는 모순되고 일관성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공평하게 모든 원전들을 조사해 본다면 그는 거기서 분명 신지학의 진리를 뒷받침해주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신지학에 의해서만 그 교의들을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상이한 체계들을 보다 현명하게 비교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트교의 역사를 조사하고 어떻게 크리스트 교의가 현재의 상태로 흘러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 크리스트 교회에는 3개의 주요 갈래가 있었다. 먼저 지혜롭고 교양 있는 그노시스 스승(Doctor, 또는 teacher)들이 있었다. 그들은 크리스트 교회가 당시에 존재했던 위대한 그리이스, 로마 철학 체계와 동일한 본질의 철학 체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체계가 비록 매우 포괄적이고 유려하기는 하지만 그 난해성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배우도록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철학 체계를 이름하여 그노시스, 즉 영지(靈知)라고 불렀다. 초기 교회의 정식 멤버들은 이 그노시스를 배웠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심지어 교회의 예비 입문자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갈래는 고상한 중산층 사람들로, 그들은 전혀 철학적인 면에 애쓰지 않았고 단순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들의 인생 지표로 삼는데 만족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들 - 이 책들의 일부 단편들이 최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을 성스러운 경전으로 이용하였다.

 

그 다음 세 번째 갈래는 무식하고 거친 일반 대중들로 그들은 크리스트교의 교의(敎意)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으며 오로지 앞으로 좋은 시대가 도래한다는 그리스도의 예언 때문에 교회에 들어온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크게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연민을 보였다. 그는 그의 가르침 속에서 끊임 없이 그들을 위로하였다.

 

왜냐하면 힘겹게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가난한 자들은, 자기의 좋은 기회를 오용하고 있는 부자보다 미래에 더 나은 위치에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진보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지한 자들에게 주어진 그 교의가 얼마나 쉽게 편파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었는지를. 그들은 조건이 아닌 약속을 받으려 했고 미래에 대한 예언 사상이 손쉽게 그들로 하여금 강압자가 되고 부자들을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의 정부에 반대하던 많은 무리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 무지한 자들이 이른 바 크리스트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잘못된 사상을 강화, 과장시켰다.

 

스스로를 ‘가난한 자’라고 부른 이 큰 세력은 빠른 속도로 교세가 확장되어 마침내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내몰 정도의 큰 힘을 갖게 되었다. 크리스트교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생각되는, 자기들이 갖지 못한 이 그노시스 사상에 화가 치민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트교인들은 상식과 과학을 그들의 종교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종교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대신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수세대 동안 사람들은 종교의 도그마를 마치 알약처럼 씹지 않고 꿀꺽 삼켜야 했으며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다.

 

세상에는 남달리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결코 종교의 교의를 아무런 이해도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언가를 믿기에 앞서 반드시 어느 정도 그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내용도, 그것을 다른 사실들과 이성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고 그것이 전체 체계와 조화를 이루는 부분으로서 여겨지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실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악하고, 이들의 자세는 악마의 부추김을 받는 것이라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정반대로 이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큰 선물인 이성을 감사하게 여기는 자들로서 그것을 최상의 형태로, 즉 종교의 진리에 대한 탐구에 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평가들이야말로 종교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모호하고 부분적으로만 이해되어 왔던 종교상의 문제들을 정확히 밝혀 진술하고 있으며 무의미한 혼란 덩어리로부터 이성적인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일 당신들 중에 자기의 신앙을 분석, 해부하다가 혹시 그것을 저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혼란에 빠진 크리스트 교인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신지학의 가르침을 권해주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들에게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신지학이기 때문이다. 신지학은 그들의 오랜 신앙을 무조건 버리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신지학은, 자신의 종교를 올바로 이해했을 때만이 비로소 그 믿음은 진정한 의미를 갖고 진정한 반석이 되어줌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중세의 독단적 종교 도그마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본래 가르침이 보편적 진리를 얼마나 위대하게 제시해주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종교의 외형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맹목적 신앙의 껍질을 깨고 나와 이성과 직관의 날개로 보다 자유롭고 고귀한 고차원의 정신적 삶의 궤도에 올라섰다면, 신지학은 그들에게 그 모든 것 안에서 어떤 것도 상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성취만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신지학을 통해 그들은 영적인 삶에 중요한 헌신의 정열을 전보다 더 불태울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답고 시적이며 영광스러운 종교적 마음 또한 훨씬 더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즐겁기만 한 백일몽이 아니다. 그것은 상식의 차가운 빛에 의해 언제라도 거칠게 깨워질 수 있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정확히 이해한 만큼 더 완벽하고 밝게 빛나는 자연의 진리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많은 문장들이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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