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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16. 죄 * 교황 *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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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람들은 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 경우 죄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적어도 기독교 설교자들이 말하는) 죄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신학적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정의하겠다. 그러나 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신성한 법칙에 대한 반항’을 가리킨다. 즉, 행위자가 옳지 못하다고 알고 있는 어떤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죄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대부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를 보면 인간은 고의성보다는 무지나 부주의로 인해 법칙을 깨뜨린다. 만일 한 인간이 진정으로 신의 의지를 알고 이해한다면 그는 분명 신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행위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그는 신의 뜻에 위배된 행위를 하는 것의 절대적 무익성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신의 위대한 계획의 영광을 보고 나서 혼신을 다해 그것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암흑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잘못된 개념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소위 ‘죄’라는 것이 반드시 책망받고 처벌되어야 하는 사악한 행위라는 관념이다. 사실상 죄는 무지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오로지 계명과 교육을 통해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언제나 보게 되지 않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은 사실 어떠어떠한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들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만일 한 사람이, 어떤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과 그 행악으로 인해 나쁜 결과의 발생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그는 주의하여 그 일을 피할 것이다.
불을 만지면 델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불 속에 손을 넣지 않는다. 부정한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한다. 후에 냉정하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죄는 신학적 상상의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때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신성한 법칙을 깨뜨리게 만드는 바로 그 ‘무지’라는 불행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 무지를 신지학의 빛으로 몰아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이다.
교황
충분한 준비와 용기만 있다면 교황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칙서를 통해, 신지학이나 종교적 자유주의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교황 스스로가 크리스트교에 대한 신지학적 해석을 내놓는 것이 그것이다. 카톨릭 교회는 이른바 ‘발전적 교의’를 갖고 있고 신성한 교의 해석에 대한 교황(지상에서의 신의 대리권자)의 무류성(無謬性)을 주장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교황이 신지학적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담하게 공표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제시하는 사상은 분명 크리스트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바티칸 도서관에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필사본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에 당신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를 거쳐 오면서 이제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계시에 준비되어 있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철학적이고 신비적인 해석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조악하고, 거칠고 미발달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종교의 외부적 껍데기만이 그들에게 유용하게 제공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세계는 이제 한 단계 더 진보를 이루었고, 따라서 보다 풍부한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의의 이차적, 내부적 의미가 사람들 앞에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껍데기에 매달려야만 하는 단계에 아직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대중들도 더 높은 단계, 더 높은 빛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교황이라면 실로 지혜롭고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모든 다른 유명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교황은, 엄청난 무리의 상념체에 둘러 싸여 있어서 그것들을 뚫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儀式)
종교적 의식을 통한 길은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종교 의식은,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신성의 길에 입문하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이 사실을 통찰하고 의식의 필요에 대한 믿음을 던져 버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은 그를 니르바나로부터 묶어 놓는 족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하여 의식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높은 진화를 바라는 구도자라면 그런 것을 배제한 채 공부해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종교 의식을 통한 길은 어떤 일정한 타입의 사람들에게는 쉬운 길이며, 실제로 그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타입의 사람들은 언제나 의식을, 목적 대상인 신성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느낀다.
크리스트교에서 이 의식의 길은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의 영적인 힘이 작용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성체(聖體)의 성별(聖別)은 그것을 통하여 영적인 힘이 사람들에게 분류(奔流)되도록 하는 의식이다. 종종 성별의 순간에 깊은 헌신의 감정이 솟아나며 이에 힘입어 마법적 힘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한 감정에 의존해 있는 것은 아니다. 헌신적인 사람들은 분명 그 힘을 더욱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면에서 특별한 감수 능력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한 헌신은 미신으로 타락할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오컬트적인 관점에서 최근 이 문제들에 대해 시실리에서 조사해본 결과, 나는 확실히 많은 미신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체로 그 지방은 그러한 의식이 없는 것보다는 분명 나았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종교적 광신이 가져오는 많은 악폐들을 주로 보아 왔을 뿐, 그러한 영향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꾸준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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