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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3. 마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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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마스터들과 그들에게 가는 길
마스터들
오컬트 학도들 중에는 -때로 심지어 오랜 세월 동안 공부해온 사람들 중에도- 마스터들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마스터들을 일종의 천사나 데바(*주1)로 생각하거나, 아무튼 우리와는 아주 동떨어진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여 그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아왔다. 그들의 위대함이란 의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까마득히 멀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고, 따라서 그들의 자비와 도움 또한 바로 곁에 있으며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마스터(Master)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해보자. 우리가 마스터라고 부를 때 그는 항상 대백색형제단(Great White Brotherhood)의 일원이며 제자를 둘 수 있을 정도의 위계에 오른 자이다. 대백색형제단은 세상의 여느 단체와는 다른 조직으로, 그런 특수성 때문에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백색형제단은 때로 히말라야형제단, 티벳형제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의 표현 속에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산악에 위치한 사원에 거주하는 인도 성자들의 체계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아마도 이것은 신지학회의 창설과 활동에 관계한 두 명의 마스터들이 당시에 티벳에 살았고 인도인의 육체를 지닌 분이었다는 점에 주로 근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낫다.
대부분 우리 신비학도들은 ‘신성의 길’(*주2)에 대한 네 단계의 사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 네 단계를 통과하여 아세카(Aseka)의 차원에 도달한 자는 이 체인기(Chain-Period) 동안 인간 앞에 주어진 과업을 달성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 세계나 다른 계에 윤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이후 그 앞에는 7개의 길(*주3)이 열리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대부분은 지구를 떠나 더 광대한 계에서 활동(대체로 태양계와 관련된 일들)하며 우리의 인식 범위를 완전히 초월한 자가 된다. 그러한 자들 중에서 제한된 인원만이 인류를 위해 직접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데, 그들은 육체를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 즉 육체를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은 주로 닐마나카야(Nirmanakaya)(*주4)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들은 말하자면 이 세계와 열반(니르바나)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인류를 위한 영적 힘의 발산에 쏟고 있다. 그들은 이 힘을 소위 말하는 ‘저장소’에 쏟아 붓고 있고 마스터와 제자들은 그 에너지를 끌어내어 씀으로써 인류를 위한 자신들의 활동에 도움 받고 있다. 닐마나카야는 ‘고뇌를 택한자’라고 불린다. 이유는 그가 상기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저급계와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어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고뇌를 택한 자’라는 말은 그가 고급계에서의 사역의 기쁨, 니르바나 차원의 기쁨을 향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돕기 위하여 저급계에 남아 있는 쪽을 선택하였다.
사실상 고급계로부터 이 세상에 돌아온다는 것은 마치 맑은 공기와 눈부신 햇빛이 비추는 바깥 세상에서 어둡고 냄새나는 지하 감옥에 온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위가 지하 감옥으로부터 사람들을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가 비록 거기 있다해도 비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속박과 억압이라는 모순되고 진저리나는 느낌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는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정반대로,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사람 쪽이 후에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더 큰 고뇌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일단 한 번 세상의 영적 비참함과 도움을 구하는 자들의 참담한 상태를 진정으로 보았다면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여느 사람처럼 그렇게 그것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결코 없다. 다행히 이 사실을 이해하고 깨달은 우리들은 언제나 진실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분명한 자세를 갖춘 셈이다.
닐마나카야의 장엄한 힘의 분출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노력이 보잘 것 없다 하나, 그 작은 한 방울이 위대한 에너지의 저장소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우리가 사랑과 헌신을 쏟아 부을 때마다 두 배의 결과를 낳는다. 즉, 하나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에게, 또 하나는 사랑을 보내는 우리 자신에게. 그러나 만일 그 사랑과 헌신 속에 한치의 사심도 없다면 그것은 잇따라 제3의 효과 또한 만들어낸다. 평범한 사랑과 헌신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다 할지라도 폐곡선(閉曲線)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그 곡선이 아무리 커도 그 결과는 보낸 자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진실로 비이기적인 사람의 사랑과 헌신은 개곡선(開曲線)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그 중 일부가 발송자에게 어쩔 수 없이 반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의 가장 위대하며 고상한 힘은 로고스(LOGOS)에게 올라가고 그로부터 엄청난 축복의 응답이 즉각적으로 저장소로 내려와 인류를 돕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약하고 가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들 모두에게는 이렇게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봉사에 대한 카톨릭 사상의 배후에 놓인 진실은 바로 이 영적 힘의 저장소에 에너지를 더한다는 것이다.
육체를 보존하고 있는 아데프트(adept)(*주5)들 중에서도 훨씬 더 제한된 숫자만이 우리와 긴밀한 연결을 맺고 있는데, 이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거나 인류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특별한 활동을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대백색형제단’ 또는 ‘오컬트 하이어라키’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 그것은 후자, 즉 인류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특별한 활동을 하는 아데프트들의 조직의 경우이다. 그들은 소수의 고도로 진화된 성자들로서 어떤 특정한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속해있다. 그들은 비록 고급계에서는 서로 계속 통신을 하고 있지만 물질계에서 함께 살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육신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활동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또 다른 육신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특정한 시기에 어떤 국적의 육신을 입고 있다고 해서 거기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그들 중 몇 분은 인도인이며 한 분은 티벳인 또 한 분은 중국인 그리고 적어도 두 분은 영국인이고 이탈리아인, 헝가리인, 시리아인이 각각 한 분씩 있으며 키프러스 섬 출신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국적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몇 가지 예를 든 것은 하이어라키(hierarchy)(*주6)를 배타적으로 어느 한 인종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 하이어라키의 대수장(大首長)(*주7)에 대해서는 외경심 때문에 감히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손 안에 지구의 운명이 놓여 있으며 모든 비전(秘傳)이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는 약 1800만년 전 인류의 진화를 돕기 위해 금성으로부터 강림해온 ‘불꽃의 주님들’, ‘불안개의 자식’들 중에서 아직도 지구에 남아있는 극소수 초인중의 한 분이다. 이 위대한 존재들은 당시의 매우 저급한 인간 형상의 육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력으로 일종의 영구적인 물질화를 통해 우리 인간과 유사한 외모의 신체를 만들었다.
불꽃의 주님들이 강림할 당시는 물론 그로부터 아주 오랜 기간 동안에도 우리 인간들 중에는 이 하이어라키의 특별한 고급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화한 사람들이 없었다. 따라서 인류는 그들의 외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가 진화해 감에 따라 차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고, 이에 위대한 불꽃의 주님들도 다른 진화 단계의 영혼들을 돕기위해 지구를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분만은 아직도 계속 최고의 지위에 남아있다. 그는 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진화를 인도하고 통제하는 왕의 위치에 있는 자로서 인류와 동물, 식물, 광물, 엘리멘탈계의 진화뿐만 아니라 비인간적 존재인 데바, 자연령 세계의 진화까지 조절하고 있다.
그분의 휘하에는 다양한 부문을 맡고 있는 수장(首長)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의 활동은 그분의 활동보다 훨씬 이해가 용이하다. 물론 세부사항은 우리의 이해를 아득히 넘어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원인종의 마누(Manu)(*주8)나 종교 미니스터(Minister) 등의 다양한 의무와 활동에 대한 개요를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다.
종교 미니스터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특정한 타입의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어 이 세계에 종교들을 내보낸다. 때로 그는 자신의 하위자로 하여금 종교를 창설하도록 위임하기도 하고 때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직접 그 목적을 위해 화신하기도 한다. 동양에서 이 종교의 미니스터는 종종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살)라고 부르는데 이 보디사트바는 붓다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자를 의미한다. 과거에 이러한 종교의 미니스터였던 자가 바로 고타마 붓다이다. 붓다의 경지를 성취하였다는 것은 단지 깨달음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어떤 분명한 위대한 비전(秘傳)을 통과한 것으로서 이 단계에 오른 자는 다시는 지상에 화신하지 않으며 자신의 일을 계승자에게 넘겨주고 대개는 지상과의 연결을 끊고 떠나게 된다.
그러나 주(主) 고타마는 아직도 어느 정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그가 세상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늘날 고타마 붓다는 매해 한 번씩 아데프트형제단에 모습을 나타내서 축복을 내려주는데, 그 축복은 아데프트들을 통해 다시 세상에 전해지게 된다. 오늘날에도 특수한 방법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통해 고타마 붓다와 접촉할 수 있다. 베산트 여사(*주9)는 그녀의 최근 저작들에서 고타마 붓다가 어떻게 아리안 인종의 초기 아인종(亞人種)들의 위대한 교사로서 지상에 거듭 화신하였는지 말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고타마는 이집트 신비교의 창시자 헤르메스였으며 배화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였고 그리이스 신비교의 창시자인 오르페우스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들만이 그의 전생의 전부가 아니다.
과거를 조사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가 그밖의 다른 종교들의 창시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신지학의 초기 저작 중 일부에 그가 샹카라차라로 다시 태어났었다는 진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컬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위대한 교사들은 아주 다른 길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씌어지게 된 배후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 블라바츠키 여사(*주10)가 시크릿 독트린 3권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사실은 어느 한 스승이 준비했던 육신을 다른 스승이 이용했던 것이다.
동양 전역에서 고타마 붓다에게 그토록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가 우리 인류 중에서는 처음으로 매우 높은 붓다의 경지를 성취한 자였다는 점이다. 그 이전의 모든 붓다들은 다른 인류, 즉 우리보다 앞선 주기에 출현했던 인류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진정 우리 인종의 첫 열매이자 지도자라고 불릴만 한 분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우리로선 파악할 수 없는 성질의 어떤 특별한 일을 떠맡았다는 점이다. 인류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 준비된 누군가가 그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했지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지상 인종은 아데프트와같은 높은 경지에 도달해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중 가장 앞선 자가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은 친구이자 형제로서 발전 단계는 동일했다. 이들 두 사람은 강대한 혼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고타마 붓다와 주(主) 마이트레야로 알려진 존재이다. 인류를 지극히 사랑한 고타마는 자진하여 혼신의 노력을 한 끝에 그 임무를 맡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형제인 마이트레야는 수 천년 후 고타마의 뒤를 이어 그 임무를 계승하기로 결심했다. 고대에 세계의 종교와 교육을 관장하던 자는 주 고타마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고급한 임무를 주 마이트레야에게 넘겼다. 마이트레야는 서양인들에게는 그리스도로 불리는데, 예수의 물질계에서의 삶의 마지막 3년 동안 그의 육체를 취하였던 분이다.
이 놀라운 실상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충분히 계명된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하나의 종교를 배타적으로 신봉하거나 타인을 자기 종교로 개종시키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한 종교의 창설자를 다른 종교의 창설자와 꼬치꼬치 비교하는 따위의 일들이 얼마나 쓸모 없는 짓들인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특히나 앞서의 경우에 대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일한 학파의 제자들 또는 동일인의 두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르치는 원리가 그렇게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 시대에 맞추어, 그리고 설법을 듣는 자들의 필요에 응하여 진리의 다른 측면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제시하는 바는 다양하지만 가르침의 근본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주 마이트레야는 현재의 임무를 맡기 전에도 여러 번 화신했었으며 그 때에도 항상 영적 교사나 고위 사제였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신지학회의 창설과 활동에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두 마스터들이 각자 700년 후에 도래하게 될 제6 근원인종에 대한 시대적, 영적 지도자의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마누(Manu), 즉 시대의 지도자는 사실상 새로운 인종의 물질적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군주로서 로고스가 그에게 실현시키도록 제시한 이상(理想)이 가능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리고 영적 교사는 새로운 인종에게 종교의 다양한 측면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그 후손의 교육까지도 책임지게 된다. 신지학회가 창설된 주요 목정 중 하나는 그 두 마스터들 주위에 이 위대한 사역에 기꺼이 동참할 지혜로운 자들을 많이 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에 두 마스터 주위에는, 현재 그들의 제자들인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때쯤이면 그 제자들도 아데프트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스터들을 도와 세계를 위해 이 위대한 일을 하도록 선택되는 영예를 우리의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이 위대한 사역은 매우 다양한 부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이 펼쳐질 수 있는 폭넓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분명 각자 그 작업 중 마음이 끌리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주로 자신이 특히 사랑하는 대 스승을 따르게 될 것이다.
마스터들 중 어떤 분의 기질은 힘이고 또 어떤 분의 기질은 사랑과 자비라고 종종 일컬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떤 마스터(모리야)는 많은 화신 속에서 왕으로 살았으며 이번 화신의 초기에도 역시 왕이었다. 그래서 그의 모든 몸짓과 눈속에서는 왕으로서의 위엄이 뚜렷이 발산된다. 아울러 그의 형제 마스터(쿠트후미)의 얼굴에서는 넘치는 사랑과 자비의 빛이 방사된다. 그들은 다른 광선,(*주11) 즉 다른 유형에 속해 있으며 서로 다른 길을 따라서 현재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만일 우리가 첫 번째 마스터는 두 번째 마스터보다 사랑과 자비가 덜하다거나 또는 두 번째 마스터는 첫 번째 마스터보다 힘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여러 마스터들도 또한 이 사역에 참여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 중 한 분과 연결될 것은 당연하다. 마스터들은(―당신이 이름을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분들조차) 그렇게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이는 사역 중에 그들의 얼굴을 계속 직접 뵙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신은 마스터들이, 모호한 이상(理想)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비록 모든 점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진화하기는 했지만)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그들의 참 모습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분명 인간이기는 하지만 결점이 없는 인간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힘과 사랑과 자비를 방사하는 신과 같은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가공할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외경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앞에 서면 무서움이나 불안감 따위는 사라지며 항상 마음의 고양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스터 앞에 선 사람은 그 위대함 때문에 겸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마음 속에 일종의 강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마스터도 인간이고 그런 그가 성취한 일이라면 자기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스터의 면전에 서면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어려움들이 어째서 자기에게 두려움과 좌절을 갖다 주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며 경이감으로 그 고통을 되돌아보게 된다. 적어도 사물의 긍정적인 부분을 본 지금, 그는 다시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느낀다. 이제 그는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할지라도 그 위로 태양이 항상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잊지 않게 된다. 마스터들의 강한 진동은 당신 안에 그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질들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당신은 넘치는 자신감과 사랑 그리고 마스터와 함께 항상 있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 속에 부정적인 속성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마스터가 당신의 부정적인 성질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꺼리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마스터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용서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마스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아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나 많은 마스터들이 비교적 최근 시대에 역사적인 인물로 알려진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마스터 쿠트후미는 유럽에서 철학자 피타고라스로 화신했었다. 그 이전에는 이집트 사제, 사르톤이었으며 한 번은 소아시아에 있는 아게이트 신전의 대 제사장이기도 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는 산을 넘어 침략해온 야만족 무리들이 주민들을 대량 학살할 때 같이 죽임을 당했다.
그 때 그는, 도망가려다 익사한 그리이스 어부의 육체를 즉각 취했고 그 육신으로 페르시아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거기에서 그는 조로아스터교를 현대적 형태의 마즈다야즈니안(Mazdayaznian) 종교로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후에 그는 로마에 있는 주피터 신전의 사제였고 그 이후에는 위대한 불교의 스승, 용수(나가르쥬나)로 화신하였다. 우리는 우리 그룹 멤버들의 전생을 조사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항상 사제였거나 영적인 교사였다.
한편 이렇게 먼 과거를 조사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의 육체를 그리스도에게 맡기는 영광을 누렸고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그는 트야나의 아폴로니우스로 화신하였다. 11세기에는 인도에서 스승, 라마누자차랴로 화신했다. 라마누자차랴는 힌두교에서 헌신적 요소를 부활시켜 그것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스승이다.
당신들 중에는 신지학의 활동을 주로 돌보고 있는 두 분의 마스터말고 다른 마스터들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마스터는 우리를 위해 <길을 밝히는 빛>, <하얀 연꽃의 목가>를 구술해 주었고, 유럽에서의 활동을 돌보고 있는 다른 마스터 또한 우리를 위해 출판 활동 전반에서 아주 놀라운 책들을 써주었다. 전생에 예수였던 마스터는 특별히 기독교 교회들의 다양한 활동을 인도하고 있고 또 다른 마스터는 특히 이곳 인도에서의 활동을 돌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의 진화는 결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인도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거주자들에게 자유의지가 허용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진화를 관장하고 있는 것은 이 아데프트들의 하이어라키이다. 대백색형제단의 멤버들은 그들의 에이젼트(agent)들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조언과 암시를 주면서 전쟁이 사라지고 우주적 형제애가 편만한 위대한 미래를 향해 인류가 나아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카르마 문제를 고려,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도록 강제하기는 분명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진정한 이익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마스터 쿠트 후미는 언젠가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그대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쉽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면 기꺼이 그대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행위의 카르마는 나의 것이지 그대의 것이 아니며, 그대는 단지 즉각적으로 순종한 행위에 대한 카르마만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똑똑한 노예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 자신도 언젠가는 마스터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들이 미래에 더 위대한 일을 맡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의 소박한 일을 기꺼이 떠맡아야만 한다. 사실 언젠가는 진정 아주 중요한 기회(또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백 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일이다. 큰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도 놓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작은 임무들을 떠맡는 버릇이 길들여져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옳은 일을 하는데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중요한 순간에 자동적으로 옳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선행 또는 악행은 전체 세계에 대해서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가 오로지 무조건 이 작은 것들 중에서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기를 배운다면, 대백색형제단은 보다 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를 안전하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실로 우리는 마스터들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려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미거리로서가 아니라)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진실한 모습, 즉 우리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과 우리 인간들이 다양하듯이 그들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마스터들 모두에게는 지혜와 힘과 사랑이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들이 모두 똑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마스터들도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인류라는 사다리의 맨꼭대기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아직까지는 다소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해도 언젠가는 그들이 선 위치에 우리 또한 도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스터들에 대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다방면에 걸쳐 두루 발전을 이룬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한쪽 면에만 치우쳐서 발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적,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과 자비가 부족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랑이 넘치는 반면 지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마스터는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다. 대표적인 예로 마스터 쿠트후미는 피타고라스의 빼어난 지성과 함께 사랑과 자비 또한 구족하신 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스터들의 놀라운 지성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흔히 아데프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지의 족쇄를 떨쳐버려야만 하고 무지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전지(全知)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마스터들과 직접 만나면서 알게 된 바로는, 그것이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만국어에 통달하지 못한 마스터들도 있고 예술이나 음악에 조예가 없는 마스터들도 있고... 이런 식이다. 내 생각에 무지의 족쇄를 떨쳐버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마스터들 자신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어떤 분야에 대한 어떤 지식이든 자유로이 부릴 수 있는 그런 힘을 얻었다는 뜻으로 보아진다.
분명 마스터들은 자신의 육체적 두뇌에 모든 것을 저장해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필요한 지식이면 어떤 것이든 매우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들 들어 언어의 문제에 있어서 만일 한 마스터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편지를 쓰길 원하면, 그는 그 언어를 알고 있는 제자의 두뇌를 자유로이 활용한다. 마스터의 생각을 그 제자의 두뇌에 투사시켜 그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아서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마스터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언어로 말을 한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멘탈계에서 화자(話者)의 이면에 있는 상념을 포착할 수 있다.
물질계에서 마스터를 만난 평범한 사람이 그를 마스터로 즉각 알아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곤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확실히 그 사람(아데프트)이 인상적이며 고결하고 위엄있고 신성하며 고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 앞에 선 자가 놀라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데프트인지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그의 코잘체를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는 없지만 코잘체의 거대한 크기와 특별한 색상 배열 -일곱의 대 타입마다 그 배열이 다르다- 을 통해 우리는 그의 발전 정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데프트들에게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외부적 특징이 없다. 비록 그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어떤 큰 고요함과 자비가 느껴지고 얼굴에는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할 때 나타나는 기쁨에 찬 평화가 서려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데프트들은 대부분 아주 미남들이다. 그들의 육체는 완전히 건강하다. 이는 그들이 완벽한 위생적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소진시켜야할 많은 카르마를 갖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것은 육체의 외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데프트들의 경우에 이미 오래전에 모든 카르마가 소진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그 육체는 물질계상에서 자아의 영광체(아우고에이데스, Augoeides)(*주12)의 완벽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마스터의 육체는 탄복할 정도로 핸섬할 뿐만 아니라 다음 화신에 입게 될 새로운 육체 또한 이전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변형시킬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동안 육신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완벽한 건강과, 걱정 근심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마스터들은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들의 육체가 상식적인 나이를 훨씬 넘어섰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있다. 나는 블라바츠키 여사가 그녀의 스승(마스터 모리야)은 지금도 60여년전 어린 시절에 처음 본 그때의 모습 그대로 하루도 더 나이를 먹지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딱 한 경우, 최근에 현 육신으로 아데프트의 위계에 오른 어떤 마스터는 그 얼굴에 연로함이 비치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과거의 카르마가 일부 남아 지금의 화신으로 넘어 온 결과인 것이다. 나는 그가 다른 육체를 선택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그러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아데프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말수가 적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다. 바쁜 사람은 한가하게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은 법이다. 그들의 제자인 블라바츠키 여사는, 내가 이제까지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화술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얘기만을 위해 얘기하는 적은 없었다. 마스터들 중 어떤 분은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는 결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할 경우 그것은 항상 용기를 북돋워 주거나 도움을 주거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는 항상 말을 부드럽고 상냥하게 했는데 그러는 중에도 언뜻언뜻 날카로운 유머감각이 비치곤 했다. 그러나 그 유머 자체도 언제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으며 결코 남을 마음 상하게 하는 법 없이 항상 어려움을 가볍게 하거나 필요한 꾸지람을 부드럽게 하는 데 사용하였다. 확실히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오컬트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의 진화를 돕기 위해 육체를 간직하고 있는 아데프트들의 수는 매우 적다. 아마 전부 합쳐서 오륙십 명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제자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다른 사역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아데프트라는 용어를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그녀는 실제로 어디에선가 비전(秘傳)을 받은 아데프트와 비전을 받지 않은 아데프트에 대해 말하고 있다.
후대의 모든 저작들에서 우리는 비전가라는 단어를 신성의 길에 이르는 네 가지 큰 단계 중 적어도 첫 단계를 통과한 자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고 있으며, 아데프트라는 단어는 아세카 수준에 도달하여 이 체인기에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진화를 성취한 자라는 의미로 엄격히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세카의 의식은 육체가 깨어있는 동안에도 니르바나계(아트마계) 상에서 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미 아데프트의 위계에 오른 자들 중에서도 위에서 말한 극소수 만이 육체를 가진 상태로 인류를 돕기 위해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어떤 특정한 상황 아래서 인간을 제자로 두고 있다. 우리가 마스터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분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맡은 임무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도움없이는 인간은 비전(秘傳)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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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주1) 데바
빛나는 신, 천상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데바들은 많은 계급 또는 그룹으로 나뉜다. 천사, 대천사, 조형신(造形神) 등으로 불린다.
주2) 신성의 길
제1 단계; 소타파티(sotapati)
이 수준에 도달한 제자는 소타판나, 즉 ‘흐름에 들어선 자’라 불린다.(제1 비전)
이 비전을 받은 자는 다음 라운드(제5 라운드)의 중간에 있을 임계기(심판의 날)에 탈락 되는 위험을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때로 ‘구원받은 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2 단계; 사카다가미(sakadagami)
이 수준에 도달한 제자는 사카다가민, 즉 ‘한 번만 되돌아 오는 자’라 불린다. 아데프트 가 되기 위해 한 번의 화신이 더 필요하다.
이 제2 비전 단계의 제자는 깨어 있을 때는 아스트랄 의식, 명상 또는 수면 중에 있을 때는 멘탈 의식을 가져야 한다.
제3 단계; 아나가미(anagami)
이 수준에 도달한 제자는 아나가민, 즉 ‘되돌아 오지 않는 자’라 불린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그 생애 동안 아르하트(아라한)의 단계에 오를 예정이기 때문에 이 렇게 불리는 것이다.
제3 비전의 제자는 깨어 있을 때는 멘탈 의식, 명상 또는 수면 중에는 붓디 의식을 가 져야 한다.
제4 단계; 아르하트(arhat)
이 수준에 도달한 제자는 ‘완성자’ ‘존자(尊者)’로 불린다.
제4 비전의 제자는 언제나 붓디 의식을 갖고 있으며 수면 중이나 명상 중에는 니르바나 계의 영광 속에 들어간다.
제5 단계; 아세카(aseka)
이것은 ‘배워야 할 것이 없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자는 아데프트로서 언제나 니르바나 의식을 갖고 있으며 육체를 벗으 면 그 의식은 훨씬 더 고급한 계(界)에까지 미친다.
주3) 일곱 개의 길
제5 비전을 통해 아세카가 된 자의 앞에는 일곱 개의 길이 열리며 그 중 하나의 길을 택하게 된다.
1)인류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데프트로, 육체를 갖고 화신해 와서 하이어라키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2)닐마나카야가 되어 인류의 ‘수호벽’이 되어준다. 이때의 수호란 세계를 외부적인 악 영향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넘치는 영적 힘을 쏟아부어주는 것까지 의미한다.
3)데바, 즉 천사의 길을 따른다.
일곱 길 중, 가장 느린 진화의 길로서, 결과적으로 가장 쉬운 코스이다.
4)로고스의 참모진으로서의 길을 따른다. 태양계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일이라도 로고스의 의지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5)다음 체인기를 준비하는 자가 된다.
6), 7) 열반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때의 열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충만한 활동의 상태로서 너무도 찬란한 빛의 극치 세계이다. 그들은 무한한 힘과 지혜와 사랑으로 인간의 의식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영적인 진화를 위한 일을 한다.
주4) 닐마나카야
산스크리트어로 닐마나(nirmana)는 ‘형성된’, ‘만들어진’이라는 뜻이며 카야(kaya)는 ‘몸’, ‘옷’, ‘탈 것’ 등의 의미이다. 따라서 닐마나카야의 사전적 의미는 ‘형성된 몸’ ‘화신(化身)’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발전하여 ‘닐마나카야(화신) 속으로 들어간 보디사트바(보살)’를 지칭하게 되었다.
닐마나카야는 육체와 아스트랄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매체들을 갖고 있는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완전한 인간이다. 그는 닐마나카야의 옷(또는 상태)을 입음으로써 세상과의 밀접한접촉을 유지하여 인류를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닐마나카야(nirmanakaya), 삼보가카야(sambhogakaya), 다르마카야(dharmakaya)는 이른바 ‘트리카야(삼체三體)’를 이루는데 이 중, 닐마나카야의 체(體)를 입은 자만이 가장 가까이서 인류를 도와줄 수 있다. 삼보가카야의 체를 입은 자는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는 있지만 직접 도와줄 수 있는 경우가 드물고 다르마카야의 체(또는 상태)는 너무도 순수하고 성스럽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간 자는 사실상 그 이하의 존재들과 접촉할 수 없다.
닐마나카야, 삼보가카야, 다르마카야는 각각 불교에서 말하는 화신불, 보신불, 법신불에 해당된다.
주5) 아데프트(adept)
아데프트의 단순한 사전적 의미는 ‘달인’이다. 신비학에서는 비교(秘敎)지혜, 생명의 가르침에 정통한 자를 일컬으며, 신지학에서는 더욱 범위를 좁혀 다섯 단계의 비전을 통과한 자를 뜻한다.
주6) 하이어라키(Hierarchy)
태양계의 내부 존재계 상에 있는 영적 존재들의 그룹. 이들은 자연의 지성적 힘들이며 진화 과정을 콘트롤한다. 그것은 자체로 다시 12개의 하이어라키로 나뉜다. 우리 지구에도 이 하이어라키의 하부 그룹이 있어서 인류의 진화를 돕고 있다. 사실상 하이어라키는 지구와 태양계를 넘어 우주 전체의 진화를 주재한다.
주7) 하이어라키의 대수장(大首長)
태양계 안에는 자아 의식을 지닌 일곱의 가장 높은 존재들이 있다. 쿠마라(kumara)로 불리는 이들은, 우리 인간이 육체를 매개로하여 현현하듯 하나의 혹성 체계를 매개로하여 현현한다. 힌두교에서는 이들을 ‘브라마의 마음으로부터 태어난 아들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지성과 지혜의 총화인 존재들이다.
하나의 혹성 체계 안에는 다시 상기한 시스템이 반영되어 존재한다. 우리 지구에서 세계 진화의 정점에 있는 쿠마라가 바로 ‘사나트 쿠마라’이다. 그는 지구 하이어라키의 대수장으로서, 쉽게 말해 지구의 영왕(靈王)이라 할 수 있다.
주8) 마누(Manu)
인류 인종의 수장, 최초의 선조, 지배자에 해당하는 위대한 존재를 대표하는 이름.
비교(秘敎)에서 마누는 현현의 시초에 처음으로 나타난 총체적 존재로, 그로부터 모든 것이 태어났다. 마누는 사실상 현현된 어떤 혹성 체인의 영적인 생명나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마누는 제3 로고스이다. 부(父)-모(母)인 제2 로고스는 그 아들(혹성 체인에서 마누)을 통하여 현현을 산출시키는 원인자가 된다. 브라마의 낮 동안(즉, 일곱 라운드 기간) 14명의 마누들이 인종 사이클, 또는 생명 파동의 보호자로 출현한다.
주9) 베산트
애니 베산트는 신지학회 2대 회장이다. 블라바츠키의 <시크릿 독트린Secret Doctrine>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녀를 친견하고 신지학회에 입문하게 된다. 신지학의 전파와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유체 비행으로 히말라야 산 속의 마스터들을 방문하여 우주 생성과 인류 태동의 신비, 물질의 신비 구조 등에 대해 배우게 되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주10) 블라바츠키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는 H. S. 올코트, W. Q. 저지와 함께 신지학회를 세운 창설자이다. 초대 회장은 올코트가 맡았다.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영능을 소유하고 있던 그녀는 마스터 모리야를 만나 히말라야에서 영적인 수행을 마치고 스승의 지시로 1875년 뉴욕에서 신지학회를 창설한다. 그녀는 많은 책들을 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베일벗은 이시스>와 <시크릿 독트린>이다.
주11) 광선
로고스가 현현시키는 상이한 속성들의 힘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로고스의 힘의 일곱 흐름, 즉 일곱 광선이 있다. 모든 인간들은 이들 일곱 광선 중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
제1 광선; 의지, 결단력, 용기, 창조력, 파괴력을 떨치는 에너지.(대표 성자는 마스터 모리야)
제2 광선; 지혜와 사랑의 에너지(마스터 쿠트 후미)
제3 광선; 계획, 정치적 지능의 향상, 실현력의 에너지(마스터 베네치안)
제4 광선; 조화미,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에너지(마스터 세라피스)
제5 광선; 과학적 연구심, 발견, 발명을 자극하는 에너지(마스터 힐라리온)
제6 광선; 비전(vision)과 높은 동경심을 자극하는 에너지(마스터 예수)
제7 광선; 초월적 마력을 부여하고 악을 구축(驅逐)하는 에너지(마스터 라코치)
주12) 영광체, 아우고에이데스
‘광채’라는 뜻이다. 산상에서 빛의 몸으로 변화된 예수처럼 인간의 육체가 영화되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영광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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