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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29. 동물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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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의무
신지학도로서 당신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보다 저급한 생명체들에 대한 의무 또한 갖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당신은 인간보다 한 단계 낮은 형제들인 동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치 높은 차원에서 어린이들을 이해로서 대하려고 노력하듯이 말이다.
당신이 어린이를 돕기 원한다면 사물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동물의 진화를 돕고자 한다면 동물의 관점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경우에 그리고 모든 생명체에 대해 우리의 일은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이며 황금시대, 모든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그런 시대를 앞당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을 돕고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가축을 훈련시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 일이 고통을 동반하거나 지나친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모든 피조물들은 그들에게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길들여져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들의 진화가 신의 뜻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을 가르치고자 노력할 때에도 좋은 성질의 것을 주입시켜야지 나쁜 것을 주입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많은 동물들을 곁에 가까이 두고 기르고 있다. 개, 고양이, 말, 기타 본래 야생 동물이었던 것까지 우리는 그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동물들의 사나운 성질을 길들여 보다 높고 지혜로운 생명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고 그들 속에 헌신과 사랑과 지성을 일깨워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돕는 것이 그들의 진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무척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동물들 안에 있는 야수성을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화상의 주목적은 바로 그 야수성의 제거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개에게 사냥 훈련을 시키면 그 개 안에 있는 야수성을 강화시켜 주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그는 그 동물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타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런 훈련을 통해 개의 지성을 발전시키는 좋은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더 큰 해악을 동시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개를 자기 재산 보호에 쓸 목적으로 포악하게 길들이는 사람 또한 꼭 마찬가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을 거칠고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도 어쩌면 그 동물의 지성을 발전시켜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잔혹 행위를 피하기 위해 더 영악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얼마나 진화되었건, 거기에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공포, 증오 따위의 성질 계발이 수반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나중에 그 동물이 진화하여 인간의 차원으로 올라 설 때 그는 끔찍한 장애를 갖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출발하게 된다.
그는 희망차고 헌신적이며,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인간성―사람들이 그 동물에게 본연의 의무로 대했다면 갖게 되었을지도 모를―대신 그 안에 각인된 공포, 증오 따위의 끔찍한 성질을 갖게 된다.
우리는 또한 동물보다 더 저급한 형태의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의무를 갖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어디에나 엘리멘탈 에센스가 둘러싸고 있다. 엘리멘탈 에센스는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는 열정, 감정, 느낌 등 우리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 진화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특별히 고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고급한 이상을 실행해 나가고, 우리의 모든 상념과 감정이 가능한 최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바로 엘리멘탈 에센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셈이다.
엘리멘탈 에센스는 인간의 상념에 영향받기 때문에 우리가 고급한 상념을 발하면 우리의 고급 성질들이 그들에게 도달하여 작동되고 활력이 불어넣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통해 도움을 받아 고양되어 질 것이다.
모든 진화 과정을 통해 저급한 존재의 발전에 고급한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이 동물계의 생명들을 도움으로써 그들에게 개체성을 불어넣게 된다.
아틀란티스 시대에는 동물 종(種)의 형성이 상당 부분 인간의 손에 넘겨져 있었다. 많은 동물 종(種)들이 애초에 의도된 것과는 다소 다르게 형성된 것은 인간들이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못한데 기인한 것이다.
서로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육식동물이 존재하게 된 것도 많은 부분, 인간들의 실수에 그 책임이 있다. 물론 인간이 모든 육식동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레무리아 시대에 거대한 파충류들이 있었다. 인간은 그들의 진화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그 파충류들로부터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포유류를 발전시키는데 역할을 하였다.
이때 사람들에게는 그 종(種)을 개선시킬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세계가 잘못되어 나간만큼의 책임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당시, 인간들이 의무를 온전히 수행했더라면 육식 포유류의 존재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동물들을 잔인하게 대해 왔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동물계 전체의 일반적인 감정은 공포와 적의이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끔찍한 카르마를 지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사람들에게 여러 질병이나 정신이상이라는 형태의 무서운 고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파충류는 사람이 먼저 화나게 하거나 놀라게 하지 않는 한 해치는 일이 거의 없다. 모든 야생 동물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외적으로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는 극소수의 동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다른 먹이를 구할 수 있으면 결코 인간을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방어나 타인의 방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생명체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신지학도들이, 고기나 생선을 먹기 위해 또는 바다표범 가죽이나 새의 깃털로 옷을 해 입기 위해 살생하는 죄에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실크는 누에의 대량 도살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나 나는 요즘 누에를 죽이지 않고도 얻어내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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