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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2. 역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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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신지학(theosoph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신성(theos)’과 ‘지혜(sophia)’가 결합된 용어로 ‘신성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성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면 다 신지학이라 할 수 있다. 신지학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로 이미 수천년 전부터 사용되어졌던 용어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지학이라 하면 보통 1875년 창설된 신지학회의 멤버들에 의해 씌어진 일련의 저작들에 나타난 신비 사상 체계를 일컫는다. 물론 그들 또한 자신들의 체계가 신과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성한 진리이며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영원한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본래 ‘신지학’의 어원적 의미와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신지학이라 불리는 체계는 기본적으로 인도티벳 체계라 할 수 있다. 신지학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주로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그점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신지학은 동양적 체계인 것이다.(물론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양 비교秘敎 체계에 대한 설명들도 적잖이 있긴 하지만.) 본래 서양의 정신을 지배해 왔던 것은 이집트 체계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서양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비교(秘敎) 체계는 이집트의 비밀 학파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아다시피 서양 문명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대와 그리이스도 고대로부터 이집트와 밀접한 사상적 교류가 있어왔다. 그렇게 수천년 동안 서양의 정신사는 하나의 원천에서 흘러내려온 물길로 그 대지가 적셔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서양의 정신 세계에 일대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 서막은 신지학회의 창설과 더불어 열려진다. 신지학을 필두로 동양 사상의 물결이 서양을 휩쓸게 된 것이다.
근대에 서구의 물질 사상이 동양을 침공했다면 그 반대로 동양은 서양을 사상적으로 침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상적 침공의 선두에 신지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심오한 동양의 형이상학을 서구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여 설명해 주었고, 그 결과 오늘날 서양에서 사용되는 신비주의 용어들 대부분이 신지학 흐름에서 파생된 용어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근대 이후 출판되는 서양의 신비 서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지학적 용어의 이해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신지학이 이렇게 서양의 정신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데는 시대적 조류의 특성에 기인된 바 크다. 신지학회가 창설되던 19세기 말은 서구 열강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도약하던 시기였다. 극에 달한 산업화와 함께 강력한 힘의 정치로 제국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인간성과 개인적 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하고 오로지 숨가쁘게 지배욕만 채우며 목표를 향해 치달리던 서구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파국을 맞게 된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서구의 지성들은 물질 중심의 자신들의 문화에 권태를 느끼게 되고 서양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동양에 눈을 돌리게 된다. 유럽의 몰락을 염려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 문화에 일대 수정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동양 사상의 유입이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동양적인 사상 체계인 신지학이 서구에 소개되기에 이르렀고 새로운 가르침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로부터 생명수처럼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오늘날 신지학은 특별히 동양 사상이라는 한정된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서양의 오컬트 또는 에소테릭 체계의 일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특히나 인도, 티벳권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고 신비로운 체계로 다가올 수 있다. 사실상 동양과 서양, 종교와 과학,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지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동양의 체계나 서양의 체계 어느 한쪽으로 일반에 인식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신지학은 지역을 초월하여 고대로부터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영원한 지혜, 진리로서 현대에 다시 밝혀내어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인도 아디야르 신지학회 본부에서는 저녁마다 강론 시간이 있었다. 1909년 2대 회장인 애니 베산트가 미국 순방길에 나서자 리드비터가 대신 그 시간을 맡아 신지학 일반에 대해 학인들을 가르쳤는데 그 내용이 속기로 기록되었다가 잡지에 실렸고 그것들을 다시 한데 모아 출판하게 되었다. 그렇게하여 일반에 선을 보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구술로 행한 강의를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글의 전개가 단락별로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 안에 포괄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의 이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 글은 학회 멤버들을 대상으로한 강의였기 때문에 신지학 용어들이 사전 설명없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신지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그런 경우마다 역주를 달아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신지학은 매우 방대한 체계이다. 그 모든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신지학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지학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라 할 수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찍이 미우라 간죠 같은 탁월한 신지학자가 나와 많은 책들을 저술 또는 번역하여 신지학의 대중적 기반을 튼튼히 만들어 놓은지 이미 수십년이 넘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까지 정신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번역본을 다시 중역(重譯)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면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신지학이 서구의 근현대 정신사상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다. 오늘날 신지학은 신비학이라는 제한된 관점에서만 아니라 넓게 인문 과학의 한 분야로서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학인들이 심도있게 세계의 정신사상을 배우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신지학의 탐구는 필수적인 일이기까지 하다. 본서를 계기로 앞으로 신지학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널리 소개되었으면 하는 것이 역자의 소박한 바램이다.
- 조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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