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 대의 21. 상징 *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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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21. 상징 *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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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 이웃추가 | 2011.12.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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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상징학은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다. 일정한 타입의 마음에 모든 것은 상징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상징들이 아주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내 자신은 그런 타입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상징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상징들 중에는 해석 원리를 알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분명하고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쟌의 서(Book of Dzyan)>의 첫 부분에 나오는 상징들을 생각해 보자. 첫 페이지에는 하얀 원반( ○ )이 나온다. 이것은 아직 창조되기 이전, 미현현 상태의 우주를 상징한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하얀 원반의 중심에 점이 그려진 그림(☉)

이 나온다. 이것은 최초의 현현, 제1 로고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세 번째 페이지에서는 그 중심점으로부터 좌우로 확장된 지름선이 그려진 원반( ⊖ )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영과 물질의 최초 분리 또는 이원적, 자웅동체적인 제2 로고스를 상징한다. 네 번째 페이지에는 여기에 수직선이 교차돼 4분된 원반( ⊕ )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제3 로고스의 출현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직 비활동 상태에 있다.

 

다음 페이지에는 외부 원이 사라지고 그리이스 십자가만 남아 있는 그림이( + ) 그려져 있다. 이는 제3 로고스가 활동할 준비가 되어 이제 막 우주의 물질계로 하강하려는 상태를 상징한다.

 

이 활동의 다음 단계는 다양한 심볼로 보여진다. 때로 그리이스 십자가의 네 가지(팔)가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넓어져, 소위 말하는 말타십자가(✠)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심볼의 형태로서 그리이스 십자가의 네 가지의 끝에 불꽃(불타는 내면의 빛을 상징)이 그려진 것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십자가가 마치 회전하는 바퀴와 같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있다. 이때 불꽃들은 십자가가 회전하는 반대방향으로 그려진다. 이것이 바로 모든 상징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라할 수 있는 스와스티카( )로서 이 심볼은 세계 어느나라,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보통의 라틴 십자가( ✝ )의 상직적 의미는 기독교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라틴 십자가는 고대 이집트의 비전의식(秘傳儀式)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제2 로고스와 그의 물질계로의 하강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쟌의 서>라는 책 자체가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고도로 자기화(磁氣化)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심볼의 이해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책을 보는 은혜를 입은 학인이 손으로 책장을 쥐면 놀라운 효과가 그에게 미치게 된다. 그의 심안에 해당 페이지가 상징하고자한 영상이 떠오르며 동시에 그의 귀에 그것을 설명하는 구절의 음창 소리가 들려온다. 이를 정확히 묘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체험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내 자신이 직접 블라바츠키 여사가 필사(筆寫)한 <쟌의 서>(―시크릿 독트린은 이 책의 연구를 통해 씌어진 것이다)의 사본을 직접 보고 만져 보았었다. 그것은 마스터 쿠트후미의 관리하에 있는 오컬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본의 복사판이다. 원전은 샴발라에 있으며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수장(首長)이 보관하고 있다.

 

그 책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실 그 책의 일부분(내 생각에 처음 여섯 개의 절節)은 심지어 우리 세계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전의 체인기들로부터 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책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우주 창조 과정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그런 창조 행위를 위한 일종의 지침서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드쟌의 서>의 사본조차도 수백만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또 널리 알려진 심볼 중에 대조(大鳥)가 있다. 대조(大鳥)는 우주 위를 선회하며 공간의 수면 위를 나직이 덮고 진화의 길을 따라 화살처럼 나아가는 신성을 상징한다. 대조의 날개 사이에 앉는다는 것은 로고스와의 일체성을 깨닫기 위해 명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차원에 도달한 자는 거기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휴식하게 된다고 한다.

 

옴(Om)은 동일한 개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옴은 제5 근원인종(아리안 인종)의 성어(聖語)이다. 이에 비해 아틀란티스 인종의 성어는 타우(Tau)이다. 근원인종들에게 차례로 주어지는 성어(聖語)들은 모두 진정으로 성스러운 이름인 한 위대한 말씀의 연속되는 음절이다.

 

또 다른 심볼인 ‘하트(Heart)'는 고대 아틀란티스 종교에서 널리 쓰이던 것이었다. 골든게이트 시에 있는 대신전의 내부 지성소(至聖所)에는 제단 위에 하트 모양의 육중한 황금 궤가 놓여 있었으며 그것을 여는 방법은 대제사장만이 알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이 ’세계의 심장‘이라고 부른 그 황금 궤는 그들이 알고 있는 한 가장 내밀한 신비였다. 그 안에는 가장 귀중한 성물(聖物)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은 모든 원자들이 심장처럼 고동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 또한 유사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흑점 주기와 관련지었다. 때로 우리는 그들의 책에서, 그들이 우리보다 과학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여러 문구들을 만나게 된다. 비록 그것이 과학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지구가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의 표면에 매일 변위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지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심볼은 연꽃이다. 연꽃은 로고스와 관련하여 태양계를 상징하는데 사용된다. 자연의 실제적 사실을 가지고 비유한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일곱 혹성 로고스(*주5)들은 위대한 개체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태양 로고스의 상(相), 즉 태양 로고스의 몸에 내재한 힘 센타들이다. 이 위대한 살아있는 센타들(혹성 로고스들)은 일종의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변화를 하는데, 이것은 인간 심장의 규칙적인 박동 또는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상응하는 고차원계의 운동이다.

 

이 주기적 변화 중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속도가 빠르며 그로 인해 매우 복잡한 일련의 효과들이 발생한다. 물질계 혹성들의 상호 운동은 일정한 시기에 일어나는 이 대우주적 힘의 작용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각각의 힘 센타들은 태양 안에 주초점(主焦點)을 갖고 있고 태양 밖, 즉 물질 혹성에 부초점(附焦點)을 갖고 있다. 주초점과 부초점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3차원적 용어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주초점과 부초점이 동일한 영향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한 부분만 따로 그린다면 하나의 타원이 되는데, 이때 주초점은 태양에, 부초점은 해당 혹성에 위치하게 된다. 태양계의 형성과정에서 초기의 빨갛게 단 성운이 차츰 응고하면서 이 부초점들―분배를 위한 보조 초점으로서, 말하자면 태양계의 신경절이라고 할 수 있다―이 있는 곳에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며 혹성들의 위치가 결정되어 진 것이다. 태양계 안의 모든 혹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각기 이러한 타원형의 역장(力場)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체계(system)의 비유로써 많은 타원형 꽃잎들을 가진 연꽃을 선택한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양계를 연꽃으로 비유한 데는 훨씬 더 아름답고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가 혹성들을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구(球)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혹성들 사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두뇌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 있다.

 

4차원에 대해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한 방향으로의 차원 확장 개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손가락을 벌려 컵모양을 만든 후 종이 한 장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고 하자. 종이의 평면에 살고 있는 2차원 존재들은 손가락 끝과 종이가 만나는 작은 원들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 손 전체를 의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2차원의 존재에게 이 작은 원들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차원 높은 시력을 사용하는 우리는 그 작은 원들 각각이 밑으로 연장되어 있고 손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4차원의 시력을 사용하는 인간은, 서로 분리돼 보이는 혹성들이 미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고급한 시각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혹성들은 하나의 큰 연꽃을 구성하는 꽃잎들의 끝점이다. 그리고 그 꽃의 불타는 심장은 우리에게 태양으로 나타나는 중앙의 암술을 분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의 신봉자들이 고대의 학문과 그것의 표현 수단인 이상하고 별난 심볼들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태도이다. 왜냐하면 이 고대의 심볼들 속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때로 그것은 현대의 세계가 소유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지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신지학의 학인들만큼은 자기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어떤 것을 무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이 있다. ‘고급계에 있는 모든 것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차원을 넘어서 있는 모든 것은 불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이 때의 빛과 불은 물질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불이라고 이름 붙인 그것은 가연성 물질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지상의 불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고급계 추상물의 반영이다. 즉, 고급계 질료의 저급한 표현인 것이다.

 

불타지 않는 불, 마치 물처럼 액체상태로 있는 불에 대해 마음속에 그리도록 노력해 보자. 위대한 조로아스터의 제자들이 알았던 불이 바로 그런 불이다. 그들은 제단 위에 아무런 연료 없이도 타오르는 그런 불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신성한 불임과 함께 신성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로고스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불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던 고대 파르시 교도들은 그 길을 통해 로고스에 도달하기 위해 그 불과 하나 될 때까지 의식을 고양시켰다. 그것에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특정한 부류의 데바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성에 깊이 찌든 우리들 중에는 그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고대에 조로아스터 주위에는 그 길을 따를 수 있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현재의 우리 상태로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우리의 저급한 매체들이 파괴돼 버리겠지만 새로운 인종의 모습으로서나 다른 혹성에서 우리는 다시 그 길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상징에 대한 낯설고 생소한 이 모든 말들이 참으로 이상하고 괴기스럽고, 불가사의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오컬트 학도들은 앞으로의 발전과정에서 물질계의 말로는 표현 불가능한 많은 것들과 마주쳐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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