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 대의 13. 불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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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13. 불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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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 이웃추가 | 2011.12.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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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교

 

 

부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그가 일개 한 종교의 창시자가 아닌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는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대 임원이며 모든 구세주들 중 가장 위대한 존재이고 여러 전생을 통해 수많은 종교를 창시했던 분이다.

 

그는 인도의 종교에 큰 업적을 남긴 비야사(Vyasa)였고 이집트 비의(秘儀)를 창시한 헤르메스였으며 태양과 불의 숭배기원을 만든 조로아스터였고 또한 그리이스의 위대한 음유시인, 오르페우스이기도 했다. 마지막 화신(化身)에서 고타마 싯달타로 왔을 때 그는 어떤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는 의도가 애초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단지 이미 낡아서 본래의 형태를 많이 벗어난 힌두교의 개혁자로서 등장했다.

 

그 당시의 힌두교는 여러 면에서 경직되어 있었고 현재의 힌두교보다도 훨씬 융통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오늘날의 힌두교도 그 형식과 의식(儀式)이 무척 엄격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훨씬 더 엄격하였던 시대의 상태를 생각해 보라.

 

당시의 모든 사상은 원시(原始) 아리안 이주민 시대의 힌두교(그때에 힌두교는 기쁨이 충만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였다)에서 매우 많이 변질되어 있었다. 부처가 태어난 시대의 사람들은 사실상 브라만을 제외한 어떤 자도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믿었던 것같다. 브라만의 수는 언제나 소수이다. 심지어 지금도(20세기초) 인도의 3억 인구중에서 브라만은 천삼백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분명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종교가 아니었다. 당시 힌드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생을 통해 일을 해야 그 보답으로 브라만(소수 특권층)으로 태어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삶과 죽음의 바퀴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가르쳤다.

 

드디어 부처가 왔다. 그의 가르침은 신선하게 공평한 법의 문을 활짝 열었고 사람들을 구태의 종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단언하였다. 비록 브라만으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진정한 브라만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존경받을 가치가 없으며 구원 또한 받을 수 없다고.

 

또한 다른 카스트 계급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진정 브라만의 삶을 산다면 그를 브라만으로서 대우해야 하고 그에게는 모든 면에서 브라만과 동일한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고 말이다.

 

최종적인 구원의 희망을 매우 불투명한 미래의 저편에 놓아둔 종교 앞에 당시의 모든 대중들은 희망을 상실했고 결과적으로 무관심하게 되었다. 또한 인생의 전부를 의식(儀式)과 명상으로 보내는 브라만의 엄격한 금욕생활은 그들의 성향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는 대중들에게 이른바 중도의 길을 설하였다. 그는 금욕적인 삶과 종교에 절대 귀의하는 삶에 빠져들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속세에 있으면서도 고귀한 삶이 가능하며 까다로운 형이상학과 이론에 매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진리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좌든 우든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은 모두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사업에 매달리고 부와 권력의 꿈을 좇아 거기에 완전히 침잠해 버리는 속세 사람들의 삶은 진정 가치있는 것들을 도외시한 것으므로 어리석고 불완전한 것이며, 배타적 이기적으로 자신을 고립시켜 세상을 등지도록 가르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고 가르쳤다.

 

중도(中道)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안전한 길이라고 주장한 그는 영적인 것에 절대 헌신하는 삶이 준비된 자들에게 있어서는 분명 최상의 길이지만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일하는 사람 또한 선하고 진실된 영적 삶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처는 가르침의 바탕을 오로지 이성(理性)과 상식(常識)에 두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도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스스로 눈을 떠 자기 주위를 살피도록 가르쳤다.

 

그는 또한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속해 있는 대 체계는 영원한 정의의 체계이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은 선한 법칙이기 때문에 오로지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은 인간들 자신이 저급한 욕망에 굴복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행복과 만족은 끊임없는 소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가르침을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도식화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일정한 표제들 아래 모든 것을 정리, 배열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매우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구성된 기억체계이다.

 

가르침의 개요는 매우 간단하여 4개의 숭고한 진리(四聖諦), 여덟 개의 올바른 길(八正道) 그리고 이것들이 암시하는 인생의 원리들(三法印)로 압축된다. 아이들도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인생의 제문제를 탐구하는 최고의 현자가 평생을 공부해도 다 못 할 방대한 철학체계가 담겨있다.

 

12연기(nidana;윤회에서의 12개 相)에 대한 연구나, 생각과 행위 사이에 있는 단계들을 열거해 놓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들을 분석하였다. 사성제(四聖諦) 각각은 한 단어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단어들(苦, 集, 滅, 道)은 자체 안에 방대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팔정도(八正道)를 나타내는 단어들(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이나 <침묵의 소리>에서 말하는 바라밀(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완전하게 이루어야 하는 덕목)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라밀은 단순히 지혜, 힘, 사랑이다. 그러나 때로 다른 형태로 여섯이나 열개로 나타난다. 그 여섯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이며, 여기에 추가되는 네 가지는 방편, 원, 역, 지이다.

 

불교는 사실상 인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뒤에 영속적인 결과가 남겨졌고 인도는 모든 곳에서 부처의 가르침의 강한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 부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피의 희생의식이 보편적었다. 비교적 드물기는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나마 피의 희생의식이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은 부처가, 그런 의식은 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며 신들은 성스러운 삶이라는 희생을 더 바라고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당시의 아카식 레코드(우주 기록)를 투시로 보면 그는 대부분 야외에서 설법을 했고 거의 항상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대중들은 남녀가 자연스럽게 섞인 채 주변 땅바닥에 앉거나 나무에 기대서 있었고 무리의 바깥 둘레에서는 아이들이 뛰놀았다.

 

이 대스승은 낭낭하게 울리는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설법을 듣는 자들의 주의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이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말에 간혹 반대하는 자들도 그에게 매료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중은 큰 감동을 받고 종교적 열정으로 고양되었다. 대중들은 끊임없이 갈채하며 ‘사두, 사두’를 외치고, 특별히 그들을 감동시키는 어떤 말이 나올 때면 동시에 존경의 표시로 합장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적어도 이런 놀라운 감화의 일부는 그의 오라(aura) 때문이었다. 그의 오라는 그 크기가 매우 크고 놀랍도록 강한 진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중은 실제로 그의 오라권 내에 앉아 있었고 설법을 듣는 동안 그 오라와 교감하고 있었다.

 

그의 오라가 발하는 자기적(磁氣的) 효과는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영향을 받은 대중들은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설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영향이 사라지면 이전 상태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 경탄할 감화력은 불교 경전에서 자주 묘사되는 현상으로 그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 중 그렇게 많은 수가 아라하트(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 원인이다. 우리가 불교 경전의 기록들 속에서 부처의 설법이 있은 후 수백명의 사람, 심지어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주 예삿일이다.

 

아라한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러한 기록들을 읽노라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이며 단순히 동양풍의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후에 좀더 깊이 연구해 본 결과 우리는 그 기록들이 실제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가 너무도 놀라운 것이기에 우리는 좀더 깊이 그 원인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의 한 생만이 아니라 그의 수많은 전생들의 활동을 살펴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우리는 주(主) 고타마가 비록 그의 마지막 화신에서 제5 근원인종의 육체를 입었지만 사실상 그는 제4 근원인종의 붓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여러 아틀란티스 인종으로 수차례 태어났었고 그때마다 항상 위대한 스승으로서 왔다. 각 인생에서 그는 많은 제자들을 두었고 그들의 의식은 점차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었다.

 

마침내 고타마가 인도에 태어났을 때 이 마지막 절정의 화신 기간동안 그는 수많은 시대, 수많은 땅에서 그가 가르쳤던 모든 제자들이 동시대에 함께 태어날 수 있도록 예정해 놓았다.

 

따라서 그의 설법을 들었던 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완전히 준비된 자들(즉, 고도로 진화된 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부처의 상상을 초월한 강력한 마그네티즘의 영향 아래 왔을 때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따를 수 있었다. 부처의 오라가 그들의 혼에 미친 영향은 경이로울 정도로 고무적인 것이었기에 그들은 그렇게 즉시 반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많은 수가 순식간에 고도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크릿 독트린> 제3권에서 매우 흥미롭고 암시적인 ‘붓다의 신비’편을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는 부처가 스피릴리(Spirillae)(*주4)의 완전한 발전을 이루어 고차원의 질료로 된 자신의 영체(靈體)들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그의 붓디체, 코잘체, 멘탈체들은 모두 다른 마스터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존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체들을 만들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예수의 육체와 함께 이 부처의 영체들을 이용하였고(예수는 고급계에서 자신의 영체들을 입고서 그리스도의 일을 도왔다) 샹카라챠라 또한 부처의 고급체들을 이용하였다. 샹카라챠라가 부처의 환생이라는 잘못된 견해가 생겨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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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주4) 스피릴리(spirillae)

 

 

 

원자 내에 흐르는 프라나의 통로이다. 원자 속에는 그림과 같은 형식으로 7개의 스피릴리(단수는 스피릴라)가 있다.

 

우리 체인(제4 체인기)의 제1 라 운드에 모나드의 생명이 영 트리아드(spiritual triad)를 따라 흘러 내려 첫 번째 일단의 스피릴리에 생명을 부여했고 이것을 통해 육 체와 관련된 프라나가 흐른다.

 

제2 라운드에 마찬가지로 모나드의 생명이 두 번째 일단의 스피릴리에 생명을 부여했고 이것을 텅해 그림 에텔체와 관련된 프라나가 흐른다.

 

제3 라운드에는 세 번째 스피 릴리에 생명을 부여, 이를 통해 욕망과 고통을 지각할 수 있는 카 마 프라나가 흐른다.

 

제4 라운드에는 네 번째 스피릴리에 생명을 부여, 이를 통해 사고을 위한 카마 마나스 프라나가 흐른다.

 

요기 들은 보다 고급한 의식을 위한 통로로 이용되는 네 번째, 다섯 번 째 스피릴리를 발전시킨다. 본문에서 부처는 일곱 개의 스피릴리 를 모두 다 계발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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