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 대의 27. 사소한 걱정들 * 욕망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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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신지학 대의 27. 사소한 걱정들 * 욕망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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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 이웃추가 | 2012.01.06.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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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걱정들

 

현대 생활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필요한 걱정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은 물론이고 진보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악덕을 갖고 있다. 일반인의 아스트랄체를 보는 투시가의 마음은 슬프다.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의 삽화 ⅩXⅢ(역주: 별도 첨부된 그림 참조)은 발전된 인간이 갖는 바람직한 아스트랄체 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멘탈체의 색깔의 반영으로서 이성이 명령하는 것만을 느끼도록 마음이 통제되어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나 현 진화 단계에서 그것이 너무 지나친 기대라면, 삽화 Ⅹ(그림 참조)는 비교적 안정되었을 때의 일반적 아스트랄체를 대표하는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는 가능한 빨리 제거해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성질들을 나타내는 많은 색깔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의 책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측면이다. 이 삽화는 일반적인 아스트랄체가 비교적 비활동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생물과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명의 해악 중 하나로, 대부분 사람들의 아스트랄체가 거의 안정되어 있지 못함을 들 수 있다. 물론 아스트랄 질료가 언제나 진동 상태에 있음은 사실이다. 우리가 삽화에서 보는 각 색깔은 다른 진동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일정한 순서와 수준이 있어야 한다. 진화된 사람은 다섯의 진동율을 가진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적어도 아홉의 진동율을 갖고 있으며 거기다 많은 그늘들이 섞여 있다.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나쁘다. 아홉 진동율의 동시적 바이브레이션이 이미 충분히 나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아스트랄체 속에서 50 또는 100개의 진동율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아스트랄체는 몇 개의 분명한 영역으로 나뉘어지고 각각은 정상적 비율로 진동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아스트랄체는 그 표면이 깨어지고 수많은 작은 소용돌이와 역류가 생겨 이 모든 것이 서로 미친 듯한 혼란 속에서 싸우고 있다. 이것들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필요한 감정들, 걱정들의 결과이다. 그들은 그러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고통받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전체 인생이 사소한 감정들로 꽉 차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들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좋든 나쁘든 정말로 큰 감정은 아스트랄체 전체를 휩쓴다. 그리고 그때는 전체가 하나의 진동율을 일으킨다. 그러나 작은 감정들은 상당한 시간동안 존속하는 작은 소용돌이들, 즉 국부적 혼란의 센타들을 만든다. 한 번에 50가지로 진동하는 아스트랄체는 풍경을 망쳐 놓는 얼룩이며 이웃에 폐를 끼치는 존재와 같다. 그것은 매우 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심각한 마비 상태로 근육이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키는 육체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마비가 전염성을 갖고 있는 마비라고 가정해야 하겠다. 따라서 그러한 마비 증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불가피하게 그것을 재생케 만든다. 왜냐하면 이 무서운 파괴적 혼란은 그것에 접근하는 모든 민감한 사람들에게 아주 불쾌하고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아스트랄체를 오염시키고 불안, 염려 등의 고통스러운 느낌을 전염시킨다.

 

그러한 해로운 영향의 작용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조악한 아스트랄체의 소유자를 만날 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많은 경우 확실한 이유도 없이 왠지 모르게 심한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즉각적으로 인식을 하든 못 하든 해로운 영향을 받는 것은 틀림없다. 자신을 이러한 마비 상태로 방치하는 사람은 타인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한테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만성적인 아스트랄 혼란은 에텔체를 통하여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쳐 온갖 종류의 신경성 질병을 야기하게 된다. 수많은 신경성 문제들은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의 직접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만일 환자가 마음을 평화롭게 갖고 그의 모든 매체들을 고요하게 하면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강한 육체를 갖고 있어서 아스트랄체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불안에 잘 저항해 나간다 해도 아스트랄 차원에서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파괴적이다. 아스트랄체 전체에 펴져 있는 이들 작은 염증 센타들은 육체의 종기에 해당하며 살짝만 건드려도 날카로운 통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약한 지점을 통해 생명의 피가 고갈돼 나가 버리고 외부의 작인(作因)으로 패혈증(敗血症)이 유발되기도 한다.

 

아스트랄체가 이처럼 혼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한테 부딪쳐 오는 나쁜 영향에 저항할 수 없고 좋은 영향으로부터도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에너지는 이 열려진 종기를 통해 누수되며 그와 동시에 온갖 종류의 질병의 원인 요소들이 그곳으로 침입해 들어오게 된다. 그는 전체적으로 그의 아스트랄체를 이용하지도 통제하지도 못 한다. 그의 아스트랄체는 깨지고 수많은 분리된 센타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가 아스트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스트랄체가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소한 걱정, 근심은 그것들로 하여금 아스트랄체 위에 그들의 제국을 세우고 마침내 악마의 군단이 되어 그를 지배하고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상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거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일 이미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이다. 즉,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앞에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모든 사소한 개인적 문제들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함으로써 이성적으로 자신을 위무해야 할 것이고 다음 생, 아니 20년 후에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들이 어떻게 보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외부적인 것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대부분의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는 지혜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의 모든 사소한 문젯거리들로부터 빠져나와 그것들에 마음 쓰기를 거부해야 한다. 처음에는 약간의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성화된 악습을 극복하는데는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계속해서 중얼거림을 보게 된다.

 

“죤스 부인이 나에 대해 험담했어. 아마 지금도 나를 험담하고 있을 거야. 아마 다른 사람도 그 말을 믿겠지? 그러면 어쩌지?”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나는 죤스 부인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겠어. 그 불쌍한 부인이 그렇게 나쁜 카르마를 짓다니 안 됐지 뭐. 그녀가 뭐라 하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어. 그런 어리석은 뒷공론에 대해 생각하며 낭비할 시간이 어딨어?”

 

미래에 대한 나쁜 예감이 끝없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올지도 모른다.

 

“아마 내년에 자리를 잃을지 몰라. 그러면 어떻게 밥벌이를 하지? 어쩌면 파산할지도 몰라.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 확고히 이렇게 되받아쳐야 한다.

 

“아마도 그럴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당장 닥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야. 나는 미리 모든 일을 준비해 두겠어. 그리곤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어. 걱정한다고 뭐가 되겠어?”

 

또 다른 일반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걱정의 형태는 누군가 뭐라고 말하거나 행동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화를 내는 어리석음이다.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하게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이 우리에게 아무 중요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했다 해도 열 중에 아홉은 결코 의도적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가 그런 문제로 괴로워해야 하는가? 설령 그 말이 고의적으로 무례하고 악의에 찬 경우라 할지라도 그 때문에 기분 나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만일 그의 말에 악의가 있었다면 그는 매우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정의의 법칙 아래 그는 반드시 그 바보짓의 대가로 고통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어떤 식으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설사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해도 진정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말은 우리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 감정을 해치지 않는 한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 때문에 평정을 잃어야 하는가? 만일 그 말에 대해 듣지 않았다면 그래도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기분 상하게 한 것은 분명 그의 말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들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이 한 말에 대해 신경 쓴다면 아스트랄체에 혼란을 일으킨 책임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한테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그 때문에 아스트랄체에 혼란이 생긴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아직까지 아스트랄체를 통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아갈 정도의 고요함을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지만 백에 한 명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다. 사실 오컬트 학도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결코 어떤 상황하에서도 기분 상해 하는 개인적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개인적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무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기를 잊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어떤 것에도 괘념치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면 당신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음과 같은 병적 상태들은 비교적 덜 개인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만큼 비난받을 여지도 적은 것들이다. 그러나 진화에 이롭지 못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업이나 가정의 하찮은 문제들로 안절부절하는 버릇이다. 그것은 항상 분별심, 통찰력의 부족 등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가사(家事)와 사업이 질서 정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시간에 맞춰 정확히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를 성취하는 길은 높은 이상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지 끊임없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모든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질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 불행한 사람은 단호히 그것에 맞서 싸워나가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극복할 때까지 그는 언제나 마찰을 일으키고 평화를 깨뜨리는 원천으로서 세상에서 거의 쓸모없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증상은 개인적인 일로 걱정하는 사람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의 경우 아스트랄체에 종기 와동(渦動, 소용돌이)은 비교적 적지만 만성적인 떨림이 있다. 즉, 전체 아스트랄체가 동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불안을 전달하여 그들의 기쁨을 파괴한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지배하기를 배워야 한다.

 

감정의 혼란은 이성적 존재에게 합당치 않으며 신성의 불꽃인 그가 욕망 엘리멘탈의 지배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미 이 비참한 아스트랄 혼란 상태가 육체적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진리의 길의 노정에서 그것은 단순히 해롭다는 정도를 넘어서 지극히 치명적이다.

 

구도의 길에서 첫째로 배워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완벽한 자기 통제와 근심하지 않기이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아스트랄체의 질료가 표면에 있는 와동 속으로 재빨리 쓸려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것들을 확실히 지워버리고 우리의 진아가 바라는 안정된 감정의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완전히 신성한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 언제나 동료들에게 그 사랑을 방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스트랄체에 쓸데없는 와동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삶을 로고스에 대한 봉사와 세계의 진화를 돕는데 헌신한다면 사사로운 문제들을 가지고 걱정하며 보낼 시간이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진화코자 하고 사역을 하고자 하는 자는 저급한 것을 버리고 고급한 것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세속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로고스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통해 화합을 전달해야만 한다.

 

 

 

욕망 죽이기

 

우리는 종종 욕망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점진적인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급하고 거친 욕망(산스크리트어로 카마 kama라 한다)은 어느 정도의 발전에 도달하기 전에 완전히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러나 영어가 의미하는 바의 욕망이라고 할 때 우리들 모두는 아직도 어떤 욕망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래 동안 그것을 갖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마스터들에게 봉사코자 하고 그들의 제자가 되고자 하며 인류를 돕고자 하는 강한 바램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 또한 욕망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죽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저급한 욕망을 죽이고 고급한 것을 향해 상승하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을 순화시켜 열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면 후에 그것은 또 다른 형태로 변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지금 진화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에게는 그러한 바램마저 버려야 함을 알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는 항상 우리에게 가능한 만큼의 속도로 진행돼 나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우리 자신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욕망은 결심으로 변형된다. 그 시점에서는 더 이상 어떤 것에 대한 회한이 없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면 그 대가로 최선의 것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에너지를 소망하고 바라는데 낭비하지 말라. 대신 그렇게 되도록 의지하라.

 

우리는 월형체(lunar form, 月型体), 즉 아스트랄체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이 말은 아스트랄체를 파괴시키라거나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타인에 대한 자비도 이해심도 없어질 것이다. 그 말의 의미는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월형체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함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비이기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야망은 욕망의 보편적 형태이다. 그러나 그것 안에는 항상 자기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다.

 

아데프트는 결코 야심적이지 않다. 그의 의지는 로고스의 의지와 일치하며 진화를 위해 의지의 힘을 행사한다. 우리는 모두 로고스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는 로고스의 의지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자신만의 분리된 노선으로 욕망을 세우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뿐이다. 부처는 우리 인생의 계율을 짧은 4행의 시구로 훌륭히 요약하였다.

 

모든 악행을 그치고

만족하기를 배우며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라

이것이 부처들의 종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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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삽화 XXiii

 

진보된 인간의 아스트랄체이다.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삽화 x

일반인의 아스트랄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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