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 대의 28. 내 원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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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28. 내 원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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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 이웃추가 | 2012.01.06.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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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의 중심

 

구도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장애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근원적이며, 따라서 가장 심각한 것은 자기중심성이다. 내가 자기중심성이라고 말할 때 이는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골적이며 추한 이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이기성은 오래 전에 극복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기성을 뒤에 놓고 온 사람들 가운데도 아직 여전히 그와 유사한 악덕 주위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너무 미묘하고 뿌리깊은 것이라 그들은 그것이 악덕인 줄도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고 정직하게 자기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상념이 자기 중심적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항상 자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많은 공상 드라마를 지어낸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항상 주인공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작은 무대에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따라 다니고 있다.

 

만일 그가 중심의 위치에 있지 않다면 그는 당장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며 그 순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 질투를 느낀다. 그러한 본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뿌리를 바꾸는 것이고 자기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잠시도 그런 급진적 변화의 가능성과 마주할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은 그러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자기 중심적 태도는 진화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 그것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지만 그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한 악순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그것은 바로 사랑의 길이다.

 

사랑은 보통사람의 삶에서 이러한 변화를 만드는 유일한 힘이다. 사랑은 강한 손으로 그를 사로잡아 당분간 그의 마음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적어도 한동안,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에 빠지게 되면 연인이 그의 원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닌 그녀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그녀를 여신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녀는 그저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그녀는 우아함과 미(美)의 화신이다. 그는 그녀 안에서 신성을 본다. 그러나 평상시에 보지 못할 뿐이지 우리들 모두 안에는 신성이 잠재해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열정은 사라지고 그는 또 다른 대상을 향해 그것을 옮겨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만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있으며 보다 넓은 시각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오컬트 학도는 그것을 반드시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삶이라는 원의 중심에서 자신을 내치고 그 자리에 대신 마스터를 앉혀야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일을 어떻게 하면 자기한테 맞출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기를 이익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마스터가 보시기에 어떠한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마스터는 오로지 인류의 진화를 돕기 위해서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진화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이것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 본능적으로 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어느 마스터의 말씀을 인용해 말하면, 우리는 반드시 자기를 잊고 오로지 타인의 이익만을 생각해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거나 미묘한 형태로 옛날의 자기중심성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극히 주의해야만 한다.

 

그동안, 선하고 열성적인 신지학회의 사역자들이 바로 그러한 실수를 저질러 왔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신지학회의 일과 동일시하여 자기의 사상이나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마치 무슨 적 대하듯이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고 자기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자들은 배반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성이 교묘히 슬그머니 다시 옛날의 그 자리로 기어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다시 그것을 물리치는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제자가 바라야 하는 유일한 힘은 그가 사람들의 눈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원의 중심 자리에 그가 있을 때도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스터가 원의 중심 자리에 있게 되면, 그는 단순히 그렇게 해야 되기 때문에 일을 할 것이다. 일은 일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지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자기의 일은 마치 다른 누군가의 일처럼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일은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기를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의 성취이다. 그 일을 누가 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제자는 자신의 일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부당하게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위선적으로 자기 일의 가치를 하락시켜서도 안 된다.

 

예술에 대한 러스킨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제자는 조용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든 당신의 일이든 또는 그 밖의 누구의 것이든 아무려나 좋은 것이다.”

 

신지학회의 사역자들에게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가 세상의 여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너무 빨리 자랑스러워하는 위험이다. 신지학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히 우리는 우리의 자세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분명한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는 어떤 나쁜 점도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멤버들 중 일부가 자신이 신지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지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길을 따라 자신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 있을 수도 있다. 비록 그 길이 우리의 것보다 부족한 점이 있을지 모름에도 말이다.

 

아데프트는 모든 가능한 길을 따라 자신을 완전히 발전시킨 완벽한 인간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많은 것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아직 신지학의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거나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도 우리는 자신을 원의 중심에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원의 중심으로 다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당신이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의 상징으로서 내가 앞서 혹성들의 궤도와 영향에 대한 오컬트적 관점에 대해 설명한 것을 상기하라. 각 혹성은 한 타원에서의 부초점이며 주초점은 태양 안에 있다.

 

당신은 그 부초점과 같아서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며 궤도를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당신은 주초점의 한 반영에 불과하고 당신 의식은 태양 안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을 감싸고 있는 마스터는 위대한 하이어라키의 일원으로서 로고스의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라는 원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의 원에 있어서도 자기가 중심의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속에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를 겨냥해 대화의 초점을 맞추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고 있다. 그들은 타인들도 자신한테 완전히 몰입해 있고 타인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사람들은 스스로 전혀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물을 제 정신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사람들이 걸핏하면 좌절하는 것도 그 자신이 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좌절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만일 마스터가 우리 원의 중심에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마스터에게 헌신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절망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그러한 경향에 빠질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일할 수 있기를 너무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베산트 여사가 그녀의 자서전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다. 해야 할 일거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보통사람들처럼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래, 그건 좋은 일이지. 누군가 해야만 될 일이야. 그런데 왜 하필 내가 해야지?”

 

대신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해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진화해 감에 따라 우리의 원은 차츰 넓어질 것이고 결국 그것이 무한으로 확장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의미로 다시 그 원의 중심에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원의 잠재된 중심인 로고스와 합일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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